[사회]새만금 향한 100번째 사랑 고백

2012. 3. 14.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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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9년째 매달 모여 갯벌 환경 연구 이어가

지난 3월 4일,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은 전북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의 옛 거전갯벌 지역을 찾았다. 발이 빠져서 걷기도 힘들었던 갯벌은 이제 자동차로 달려도 될 만큼 딱딱해졌다. 그러나 내비게이션은 차량이 지금 바닷속을 달리고 있다고 알려줬다. 운전을 하던 조사단원 조현두씨(28)는 "여기가 바다라면 이 차가 보트라는 말이네요"라고 농담을 던졌다. 다 같이 웃었지만, 곧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그곳이 바다였음을 알고 있는 내비게이션처럼 조사단원들 모두 뭇 생명으로 가득했던 갯벌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희귀한 새들이 적지 않게 찾아온다. 재두루미와 시베리아흰두루미가 중장비 주변에서 위태롭게 먹이를 구하고 있다.

다들 먹먹해진 가슴으로 이런 고백을 하고 있었으리라. "미안해. 또 찾아왔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널 잊지 않고 보러 오는 것밖에 없지만, 언젠간 꼭 되살려줄게. 여전히 널 사랑해."

희귀 조류 서식지로 가치 여전

새만금을 향한 100번째 프러포즈였다. 새만금을 아끼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임인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은 2003년부터 9년 동안 폭풍과 호우, 대설 경보 등 궂은 날씨에 아랑곳하지 않고 매달 첫 번째 주말이면 1박2일 일정으로 새만금을 찾았다. 꾸준하게 진행된 모임이 어느덧 100번째가 되었다.

지난 3~4일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은 100차 모니터링과 함께 그동안의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한·일 워크숍'도 군산청소년수련원에서 개최했다. 국내 연구자와 환경운동가는 물론 일본의 갯벌 전문가들도 참석한 이번 워크숍에서는 그 어떤 학자들보다 성실하고 꾸준한 노력으로 잊혀져가는 새만금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변화를 관찰한 시민 조사원들의 생생하고 진솔한 활동보고가 빛났다.

부안 해창 갯벌에서 서울까지 65일 동안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 등 종교인들을 중심으로 진행된 새만금 생명 살리기 3보1배(三步一拜)에 수많은 시민들이 응원을 보내고 동참했던 2003년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은 갯벌과 생명의 가치에 대한 국민적 인식과 간척사업 반대여론이 확산되었던 그해 말 시작됐다. 2003년 6월, 새만금 제4호 방조제 끝막이 공사가 완료되면서 급박하게 벌어질 생태계 대량학살과 주민 삶의 변화를 꾸준히 기록하며 갯벌 살리기 운동을 펼치기로 하고, 새만금을 사랑하는 시민이라면 누구라도 참여하는 열린 모임을 10년 동안 꾸준히 유지해보자고 약속을 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갯벌을 살리기 위해 싸우던 사람들은 하나둘 현장을 떠나기 시작했고 패배감이 짙어갔다. 주요 환경단체들은 새롭게 떠오른 다른 환경 파괴 이슈들에 대응하느라 새만금 문제에 예전처럼 집중하지 못했다. 그러나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은 10년 동안 변치 말자는 첫 마음을 잊지 않고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모니터링 결과를 정리한 백서도 4권 발행했다. 동화작가는 동화로, 대학원생은 논문으로 잊혀져가는 새만금 갯벌의 가치를 알리고 관심을 촉구해 왔다.

4일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은 세계적 희귀조류인 시베리아흰두루미 한 마리와 천연기념물 203호인 재두루미 12마리를 만경강 하구에서 관찰했다. 시베리아흰두루미는 멸종위기 2급으로 전 세계에 3000여마리만이 생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종이다. 재두루미는 세계적으로 5000마리 정도가 남아 있는 멸종위기종으로 우리 정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첫 번째 조사부터 100회까지 거의 한 번도 빠짐없이 조사에 참여해오며 '생물학 박사'가 다 된 오동필씨(37)는 "지난 1월에도 같은 장소에서 시베리아흰두루미 한 마리와 재두루미 4마리가 함께 있는 모습이 관찰되었다"면서 "새만금이 희귀조류들의 서식지로서 여전히 중요한 장소라는 것이 입증된 만큼 생태적 가치가 풍부한 중요 지역은 우선 보존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일본 이사하야만 방조제 수문 열게 돼

지난 3월 3일, 새만금 시민생태조사단은 100차 조사를 마쳤다. 조사를 마친 후 단체 사진.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과 함께 저서생물 조사를 진행한 갯벌 전문가 사토 신이치(佐藤愼一·43) 일본 도호쿠(東北)대학 교수는 "2000년부터 매년 새만금의 같은 장소를 찾아가 갯벌을 일정량 파내서 그 속에 사는 생물을 조사해 왔는데, 이제 거의 모든 장소가 사막화됐다"면서 "오염된 담수에 사는 실지렁이 종류와 깔따구 유충만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현재 일본의 이사하야 만도 같은 상태이며 여름이면 깔따구 떼가 거대한 기둥을 형성하며 한꺼번에 날아오르곤 한다"면서 "올 여름 새만금에도 곤충 떼가 어마어마하게 나타나게 될 텐데, 해수가 유통된다면 이 문제는 해소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간척사업이 진행된 일본의 이사하야 만과 한국의 새만금, 그리고 시화호를 10년 이상 비교연구해 오고 있다. 새만금보다 더 일찍 간척사업이 진행되었던 이사하야만은 결국 방조제 수문을 열어 해수를 유통하기로 지난해 결론이 났다. 법원이 어업에 대한 피해를 끈질기게 주장하고 증명해온 어민들의 손을 들어준 것. 그 소식은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과 새만금 지역 주민들에게도 큰 희망을 안겨줬다.

사토 신이치 교수는 "이사하야는 새만금의 미래"라고 말하며 지역 주민과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을 응원했다. "마음 아프겠지만 계속하는 것이 중요해요.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업을 포기하고 4대강 공사장 등 전국의 건설현장을 떠돌며 살고 있는 전직 어민 김현철씨(52)도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의 100번째 발걸음을 축하해 멀리서 찾아와 줬다. 그는 새만금 방조제를 허물고 해수를 유통시키길 바라면서도 당장의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방조제 보강공사 현장에서 일하다가 현재는 전남 여수에서 준설공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아직 어부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나는 당신들(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에게 듣는 얘기가 있응께 다시 바다가 살아날 것이라고 믿는당께. 그래서 배가 안 망가지게 잘 모셔두었당께. 내가 바라는 건 오직 하나뿐이여. 바다에서 고기 잡을 날만 기다린다구. 바다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바다로 돌아가고 싶은 어부가 꿈을 잃지 않는다면, 새만금의 부활을 믿는 시민들이 있는 한,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인터넷 카페 주소 http://cafe.daum.net/smglife)

글·정희정 < 에너지시민연대 사무처장 > 사진·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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