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희영 칼럼] 뜨는 직업, 저무는 직업

송희영 논설주간 2012. 3. 9.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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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사법연수원 을 졸업한 신출내기 변호사 3명이 국가권익위원회 6급 공무원으로 채용됐다. 그동안 5급 간부로 채용되던 것에 비하면 대우가 급추락했다 해서 연수원 후배들이 권익위원회를 방문해 항의하는 광경이 벌어졌다. 이 소동 후 2명은 취업을 포기했지만, 1명은 출근하고 있다.

법률가는 1895년 국립법관양성소가 설립되면서 우리나라에 처음 등장한 직업이다. 이 신종 직업은 이준 열사 등 동기생 47명이 6개월 속성 코스를 거쳐 탄생했다. 법관양성소가 서울대 법대의 출발점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변호사라는 직업이 한국의 지배계층 형성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짐작될 것이다.

세리(稅吏)나 성매매 여성을 빼면 인간사회 대부분의 직업은 생로병사하는 순환과정을 거친다. 기업인도 수천 년 역사에서 400여년밖에 안 된 직업이고, 가마꾼과 물레방아 기술자는 사라지고 없다.

변호사는 의사와 함께 100년 이상 가장 귀한 대접을 받았던 직업이지만, 지금은 둘 다 시장가격이 하락하는 국면에 접어들었다. 의사들은 "3분의 1은 끼니 걱정을 한다"고 울상이고, 변호사들은 "고액 수임료를 받는 1% 때문에 모두가 매도당한다"고 하소연한다. '변호사 빈곤층' '의사 빈곤층'이 실제 존재하고, 이들이 변호사단체·의사단체의 내분을 촉발하는 불쏘시개가 되는 게 현실이다.

의사는 해마다 3300명, 변호사는 2000명 이상 쏟아진다. 현재 등록 변호사는 1만1400명인데, 올해만 사업연수원과 로스쿨 출신을 합해 2550명가량이 변호사 자격증을 딴다. 이처럼 공급이 20% 이상 단번에 늘면 자격증의 가격은 폭락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떤 직업이 열병을 앓을 때는 수요공급의 법칙만으로 설명하기 힘든 요인들이 작용한다. 변호사·의사들의 시장구조는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법률 시장은 '김광태(김앤장·광장·태평양)'와 '세율바(세종·율촌·바른)'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형 로펌들이 점유율을 높였다. 의료시장은 서울대병원 ·세브란스·아산·삼성·성모병원 등 '독수리 5형제'로 집중되고 있다. KTX로 2시간 이내 거리에 있는 대구 · 부산 의 종합병원들마저 환자를 이들 5강(强)에 빼앗겨 몰락한다고 야단이다.

소수의 강자(强者)가 시장을 과점해버리면 나머지 주변부는 폐허로 전락하는 현상을 우리는 TV나 반도체 시장에서 보았다. 법률·의료 시장에도 승자가 싹쓸이하는 원리가 작동하면서 개인병원 원장들과 개인변호사들은 '쥐꼬리 시장'을 자기들끼리 잘게 쪼개 먹느라 아귀다툼을 벌인다.

귀한 몸이던 의사·변호사가 '보통 직업'으로 바뀌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과거의 특별 대접이 지나쳤기 때문에 그 숫자를 해마다 조금씩 늘려 자격증 위에 얹혀 있던 버블을 걷어낼 수밖에 없다. 면허증에 대한 평가도 달라졌지 않은가. 웬만한 판례(判例)는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주치의(主治醫)보다 빨리 자기 병에 대한 새로운 처방약을 알아내는 환자가 적지 않다. 정보혁명이 전문가 직업인들이 설 땅을 조여드는 세상이다.

한국에는 1206개의 직업이 있다. 정부는 각 직업에서 밥벌이하는 인구 숫자를 알고 있고, 그들이 생산해내는 부(富)의 크기를 짐작해 평균소득을 계산해낼 수 있다. 변호사 숫자가 넘치고 몇 명의 강자(强者)가 이득을 독차지하는 상황도 벌써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아무 손을 쓰지 않았다.

덴마크 정부는 초등학교 8학년(한국의 중2) 아이들에게 일찌감치 장래 직업을 선택하도록 가이드북을 제공한다. '미용사; 초임 월 2만3000~2만5000크로네(546만~595만원 안팎), 직업 교육 기간 3~4년, 건강한 체력 필수.' 모든 직업에 대한 정보를 주고 1~2주일씩 관심 있는 직장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체험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정부는 장래의 직업 수요를 파악하고, 직업학교와 대학의 정원을 재조정하며, 의사부터 미용사·목수에 이르기까지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게 공급하고 있다. 매년 각종 자격증 숫자를 조절한 덕분에 덴마크는 실업자를 최소화하면서 세계에서 국민 행복도가 가장 높은 나라로 꼽힌다.

한국은 한때 무섭게 늘어나던 한의사나 공인중개사들이 공급 초과로 고생하는 반면, 간호사는 부족해 외국에서 수입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집단반발에 부닥쳐 자격증 숫자 조절에 실패한 결과다. 무작정 공무원 같은 인기 직업에만 몰리는 청년들 처지가 딱하긴 하다. 하지만 멀쩡한 자격증을 갖고도 일자리를 못 찾는 실업자들을 언제까지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190만 젊은이가 가수 직업을 갖겠다며 우르르 오디션에 몰려다니는 꼴을 그대로 둬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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