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대지진 1년> ⑦후쿠시마는 오히려 담담했다(完)

이충원 2012. 2. 29.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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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정부보다 시골 촌장 믿는다"..후쿠시마현 르포

"중앙 정부보다 시골 촌장 믿는다"…후쿠시마현 르포

(가와우치·고리야마 < 日후쿠시마현 > =연합뉴스) 이충원 특파원 = 지난해 3월 동일본대지진 직후 쓰나미(지진해일) 피해에 방사능 유출 사고까지 겹쳐 사람이 못 사는 곳으로 변했을 것 같은 후쿠시마(福島)현은 1년이 지나는 동안 예상했던 것보다 안정을 찾은 상태였다.

후쿠시마현 고리야마(郡山)시와 가와우치무라(川內村.촌은 읍·면에 해당)를 찾은 건 지난 15일. 가와우치무라는 지난해 12월에 찾아간 히로노마치(廣野町)처럼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남서쪽으로 불과 10∼30㎞ 떨어진 동네이고, 고리야마는 가와우치무라 주민들이 피난한 도시다.

가와우치무라 주민 3천여명은 대지진 후 26개 도도부현(都道府縣·광역자치단체)으로 흩어졌지만, 대부분은 국도 288호선으로 연결된 고리야마 곳곳의 임시주택에 둥지를 마련한 상태였다.

임시 주택은 한결같이 1층 원룸 형태. 깔끔하긴 해도 당장 추위는 피하는 게 고작일 것 같은 공간이었다. 이곳에 사는 80대 할아버지는 "집이 좁고 낮에 할 일이 없는 게 문제"라고 토로했다.

젊은 사람들은 장래에 대한 불안이 더 컸다. 임시 주택 옆 일상용품 상점에서 일하는 40대 여성 점원 세키네 가이렌 씨는 "아이들 대학 보내려면 갈 길이 먼데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할지 불안하다"고 말했다.

고리야마보다 원전에 가까운 가와우치무라 쪽으로 차를 달리는 2시간 동안 간이 측정계에 나타난 방사선 수치는 높아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낮아졌다. 고리야마 시내의 방사선 수치가 시간당 1.4∼1.5 마이크로시버트(μ㏜)인 반면, 가와우치무라는 시간당 0.14∼0.53 μ㏜ 정도였다. 이는 풍향 등과 관계가 있는 듯했다.

그래도 불안감을 누르고 먼저 가와우치무라로 돌아간 주민 200명은 대부분 중장년층이나 노인들이었다. 여관을 운영하는 이데 시게루(井出茂·56) 씨나 한류 사극 팬이라는 연금 생활자 나카하라 쓰토무(中原力·66) 씨, 농기구 가게 주인 이가리 세이이치(猪狩誠一·62) 씨는 한결같이 "세슘 탓에 30년 후에 암에 걸린다 한들 겁날 게 없다"고 입을 모았다. 젊은 자녀나 손자는 도시에 남겨둔 상태였다.

그렇다고 해도 문제가 언제 재발할지 모르는 원전 주변 동네로 굳이 돌아간 이유는 뭘까. 이데 씨는 "다른 곳에 피난 가 보니 내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라며 "삶의 보람을 찾으려면 익숙하고, 할 일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 했다.

나카하라 씨는 특이한 사례다. 도쿄에서 유럽계 회사에 다니다 정년퇴직 후 태어나지도 않은 가와우치무라를 골라 정착했다는 그는 "지진 직후에 도쿄에 갔었는데, 역시 도시는 돈을 벌 때는 몰라도 노인이 가서 살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살 보람을 찾을 수 있는 곳이 가와우치무라 뿐이라는 건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젊은이들이 도쿄 등지로 떠난 뒤 일찌감치 '정년퇴직 후 귀농 인구 유치'를 내건 농촌 후쿠시마 지역이었기에 주민의 동요가 그나마 덜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가는 대목이었다.

아닌게아니라 다른 주민들도 귀향을 서두르고 있었다. 가와우치무라가 지난달 31일 '4월 귀향'을 선언하자 인근 히로노마치도 잇따라 '3월 귀향'을 선언하는 등 지자체 사무소와 주민들이 원전 주변 마을로 돌아갈 채비에 분주하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는데 왜 굳이 '선언' 같은 걸 하는 걸까. 가와우치무라에서 만난 주민들은 "보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적 쇼"라고 설명했다. 원전 주변 마을에 사는 고령의 농민들이 후쿠시마산 농산물을 사줄 이들이 없을 게 뻔한 만큼 살길이 막막하다. 한동안 정부가 주는 이재민 보상금에 의존해서 살아가야 하는데 일찍 돌아가면 그 금액이 줄어들까 걱정이라고 한다.

가와우치무라의 엔도 유코(遠藤雄幸·57) 촌장은 '귀향 선언'이라는 일종의 퍼포먼스로 사고 대책 마련에 고심하는 중앙 정부에 정치적인 선물을 안겨주고 '보상 연장'이라는 대가를 얻어냈다는 것이 주민들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엔도 촌장이 가장 먼저 귀향을 선언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어디에 있을까.

주민들은 지난해 3월 12일과 15일 후쿠시마 원전이 잇따라 수소 폭발을 일으켰을 때 주민들에게 피난 지시를 한 게 중앙 정부나 후쿠시마현이 아니라 엔도 촌장 등 기초단체장이라는 점을 거론했다. 엔도 촌장은 일본 정부가 국민의 혼란을 줄이겠다며 "원전 주변 20㎞ 밖은 괜찮다"는 말을 되풀이하던 지난해 3월 16일 주민들에게 피난을 지시했고, 마지막 순간에 자신도 빠져나갔다.

위기의 순간에 주민의 안전을 먼저 생각하는 촌장이기에 이번에도 남들보다 빨리 '나를 믿고 따르라'고 치고 나설 수 있었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원전 북서쪽 이타테무라(飯館村)가 풍향 탓에 방사능 피해가 컸는데도 그곳 촌장이 뒤늦게까지 피난을 지시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대지진을 계기로 엄청나게 성장한 이들도 있고, 망가진 이들도 있다"고 입을 모았다. 엔도 촌장은 올해 촌장 선거를 앞두고 있지만, 지난해 대지진을 계기로 그에 맞설 후보가 나서지 않는 독주 상태라고 한다.

이 말을 들으니 엔도 촌장이 고리야마에 있는 가와우치무라 임시 사무소 벽 곳곳에 붙여놓은 '기한(期限)이 없는 꿈은 실현되지 않는다'는 표어의 뜻이 어렴풋이 이해가 갔다. 막연한 '꿈'이라는 말 앞에 붙은 '기한'이라는 단어는 '책임감'의 동의어가 아닐까.

흔들리는 열도에 살며 태평양과 수천 년간 맞서온 일본 주민들이 정쟁에 골몰하는 중앙 정부보다 자신들 곁에 있는 '풀뿌리 지도자'를 더 믿는다는 점이나 정치인들만 보면 금방이라도 망할 것 같은 일본이 끈질기고 안정적인 점도 원전 주변 주민들의 말을 들어보니 조금은 이해가 갈듯했다.

chungw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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