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대지진 1년> ⑤텅빈 마을엔 까마귀만 날고

이충원 2012. 2. 29.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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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테현 가마이시·오후나토·리쿠젠타카타 르포

이와테현 가마이시·오후나토·리쿠젠타카타 르포

(가마이시·리쿠젠타카타 < 日이와테현 > =연합뉴스) 이충원 특파원 = 지진과 쓰나미가 쓸고 간 마을엔 여전히 상처가 깊었다. 일본 대지진 발생 1년이 지난 피해지역에서는 하지만 조금씩 희망이 움트고 있었다.

일본 이와테(岩手)현을 찾은 건 지난 22일. 이와테현은 진원지에서도 꽤 떨어진 지역인 만큼 복구 작업이 어지간히 진척됐으리라 예상하며 신칸센에 몸을 실었다.

일본인들의 특성상 청소는 말끔히 끝냈으리라는 생각은 처음 도착한 가마이시(釜石)시부터 빗나갔다.

중심가의 가장 큰 건물인 '선루트(SUNROUTE)가마이시' 호텔은 지난해 12월1일 겨우 영업을 재개했지만, 주변 건물은 창과 문이 부서지거나 벽 한쪽이 없어진 채였다. 호텔 옆 '가마이시 길모퉁이 정보관 피포포'라는 시립 시설에는 쓰나미(지진해일) 쓰레기가 가득 차 있었다.

중심가를 약간 벗어나자 지역 전체가 쓰레기가 뒤덮인 곳도 있었다. 항구를 내려다보는 48.5m 높이의 대관음상을 약간 지난 곳에 있는 가마이시 수산기술센터 주변은 거대한 쓰레기장으로 변한 지 오래였다. 대형 고분처럼 쌓아올린 뒤 천으로 덮어놓은 쓰레기 더미가 V자형 해안 지역의 절반을 점령했다.

쓰레기가 넘쳐 나는 이유는 자체 처리시설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고, 도쿄도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방사능에 대한 우려로 도호쿠(東北)지방의 쓰레기를 나눠서 처리하길 꺼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복구가 지연되는 가마이시에는 흉흉한 소문이 떠돌고 있었다. 선루트가마이시 호텔 맞은편 로손 편의점은 재해로 가게 주인이 바뀌었다. 주민들 설명으로는 지진 당시 주인 부부가 변을 당한 뒤 가게 물건을 훔쳐가는 약탈이 끊이지 않았다고 했다.

미야기(宮城)현 센다이(仙台)시처럼 지켜보는 이들이 많은 대도시와 이와테현의 작은 도시는 사정이 달랐던 셈이다. 하긴 고립된 도시에 남아 배고픈 사람들이 편의점에 굴러다니는 통조림을 그냥 놔뒀으리라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리라. 한 60대 주민은 "외국인들이 쓰나미로 변을 당한 이들의 손가락을 잘라 반지를 훔쳐갔다"는 끔찍한 소문을 전하기도 했다.

피해는 남쪽으로 갈수록 커졌다. 태평양변을 따라 남하하는 국도 45호선을 타고 40분쯤 차를 달려서 도착한 오후나토(大船渡)시는 시내 전철역까지 쓰나미에 휩쓸려가고 없었다. 바다와 가까운 지역은 듬성듬성 이가 빠진 것처럼 건물이 무너진 게 한눈에도 확연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서론에 불과했다. 오후나토에서 다시 45호선을 이용해 남쪽으로 달리길 20분쯤. 미야기현 접경 지역에 이르렀는가 싶더니 눈앞에 허허벌판이 나타났다. 리쿠젠타카타(陸前高田)였다. 한쪽은 바다, 다른 쪽은 산으로 둘러싸인 드넓은 지역에 남아있는 거라곤 불과 건물 십수채 뿐 나머지는 흔적조차 없었다.

목조 건물은 모두 사라지고, 그나마 철골 콘크리트로 지은 호텔과 시청, 소방서 건물이 흉측한 몰골로 남아있을 뿐이었다. 쓰나미로 철제 셔터가 찌그러진 소방서 옥상 철탑엔 까마귀 서너 마리가 앉아있었고, 100m쯤 떨어진 곳엔 부서진 소방차 한 대가 외롭게 서 있었다. 부근을 지나는 오후나토선(線)은 역은 물론이고, 철로도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큰 항구 주변에 형성된 가마이시 등이 방파제 덕에 피해를 줄인 반면, 작은 어항과 해수욕장뿐인 리쿠젠타카타는 10m를 넘는 쓰나미가 곧바로 밀어닥친 탓에 피해가 커졌다. 이 도시 인구 약 2만4천명 중에서 1천800여명이 숨지거나 실종됐다. 드넓은 벌판에 건물 말고 남은 건 소나무 한그루뿐. 이마저도 사실은 생명이 끊어진 채 모습만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당국이 1년 동안 한 일이라곤 벌판에 흩어져 있던 쓰레기를 치운 게 고작인 듯했다. 도로변엔 쓰나미에 쓸려온 배 수십 척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간사이(關西) 지방 사투리를 쓰는 근로자는 "그나마 올들어 여기저기 흩어졌던 배를 모아 놓고 해체 작업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임시로 아스팔트를 깔아서 만든 도로엔 신호등도, 표지판도 없었다. 임시 건물로 옮겼다는 시청에 찾아가려고 전화를 걸자 직원 이시카와 마사에(石川聖惠) 씨는 설명하기 난감하다는 듯 "문 닫은 호텔 건물을 지나서 수십 미터 달리다가 사거리가 나오면 우회전하세요. 계속 달리면 왼쪽에 임시 청사가 보일 겁니다"라고 설명하며 "스미마센(죄송합니다)"이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래도 사람들이 모인 곳에선 온기와 희망이 움터나고 있었다.

산속으로 피한 주민들을 찾아 북쪽으로 향하는 국도 340호선을 타고 가자 얼마 못 가서 임시 주택이 가득 들어선 계곡에 이르렀다. 이런 임시 주택이 2천 채를 넘는다고 한다.

인상적인 건 도로변 임시 건물에 들어선 '임시 상가'. 일상 잡화는 물론, 옷이나 채소를 파는 상점에다 100엔숍, 레코드 가게까지 들어섰다. 버스에 차려놓은 우동(가락국수) 가게는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었지만, 간판만 설치해놓은 채 문을 닫은 술집은 누군가 차를 몰고 와서 술을 마시길 바라기보다는 보상을 노리고 차려놓은 곳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임시 시 청사 안에서는 새로운 도시계획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쓰나미로 아내를 잃은 도바 후토시(戶羽太) 시장은 바다에 12m 높이의 방조제를 쌓고, 해변 지역에는 땅을 쌓아올린 뒤 상가를 조성할 계획이라고 했다. 주택은 평지가 아니라 산 쪽으로 모두 옮길 예정이다.

문제는 토지 소유관계를 정리하는 일. 도시는 사라졌지만, 주민들의 재산 관계는 남아있는 만큼 산속에 새로 조성한 주택가를 어떤 비율로 분배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직장을 잃은 주민의 일자리를 만들고, 부모를 잃은 고아를 보살피는 일도 과제다.

그래도 도바 시장은 "새로 만드는 도시는 장애인도, 노인도 차별받지 않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일본인들의 고질적인 약점을 의식한 말인듯했다.

하긴 60여 년 전 전쟁을 겪은 한국 지방도시의 모습도 이와 비슷했으리라. 폭격으로 사라진 벌판에 고아들이 넘쳐나던 땅에서 힘든 삶을 개척한 한국인들처럼 '쓰나미의 폭격'으로 사라진 리쿠젠타카타에서 살아야 할 주민들도 10년 후에는 멋진 도시를 새로 만들어낼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으며 도쿄로 돌아왔다.

chungw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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