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시조 동지의 전통과 파격 '네 사람의 노래'

글·사진 한윤정 기자 2012. 2. 6.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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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금초·박시교·이우걸·유재영 합동시조집

윤금초(70), 박시교(67), 이우걸(66), 유재영(64). 네 시조시인이 합동시조집 < 네 사람의 노래 > (문학과지성사·사진)를 펴냈다. 1983년 합동시조집 < 네 사람의 얼굴 > 을 같은 출판사에서 낸 지 29년 만이다.

"문지(문학과지성사)의 김현 선생이 살아계실 때 '문지에서도 정형시에 관심이 있다'고 해서 < 네 사람의 얼굴 > 이 나오게 됐죠. 오규원 시인이 해설을 썼고요. 그 책이 젊은 시조시인들 사이에 교과서처럼 꾸준히 읽혔고, 1995년에는 증보판을 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많이 흐르다 보니 각자 새로운 작품이 쌓이고, 경향도 달라져 이번에 선집을 다시 묶게 되었습니다."(이우걸)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 사이에 등단해 40년 안팎의 작품활동을 해온 이들은 한국 시조의 현대화에 대해 많은 고민을 나눠온 사이다.

29년 만에 두 번째 합동시조집을 낸 유재영, 윤금초, 이우걸, 박시교 시인(왼쪽부터)이 한자리에 모였다.

자유시라는 시대적 흐름 앞에서 윤금초, 박시교 시인은 사설시조나 엇시조 형식을 적극 도입하면서 파격을 꾀한 데 비해 이우걸, 유재영 시인은 시조의 정체성인 율격을 엄격히 지키는 쪽으로 나갔다. 산업화와 민주화가 급속히 진행되던 시절, 시조가 어떻게 현실을 수용하면서 전통을 지켜나갈지 탐구하기도 했다. 각자 입장과 개성이 달랐음에도 1970년대 후반부터 '오늘의 시조학회'를 만들어 함께 토론하고 활동해온 평생 동지들이다.

각자 25편씩 100편의 시조가 실린 < 네 사람의 노래 > 는 제목 그대로 네 사람의 개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윤금초 시인의 작품은 형식과 내용의 실험성이 돋보인다. '바람 불면 바람 소리 속에, 바당 불면 바당 울음 속에/ 웅웅웅 신음 같은, 한숨 같은 노랫가락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아련히 바닷바람에 실려오고 실려가고.' 이청준 소설 < 이어도 > 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는 평시조·사설시조·엇시조 등 여러 시조 형식을 섞은 '옴니버스 시조'로 풍성한 분량과 다채로움을 갖췄다. 1970년대부터 실험하기 시작한 옴니버스 형식은 "시조 한 편에 자체의 서사구조를 갖추기 위해 다양한 형식을 끌어모은 것"이다.

박시교 시인은 일상사에서 느낄 수 있는 여러 감정을 섬세하게 시화한다. "서정성이 없으면 밑바탕이 없는 것"이란 지론에 따른 것이다. '얼마큼 황홀해야 갇혔다 하겠느냐// 이미 나는 네 안에서 봄날 아지랑이처럼 가물가물/ 피어나는 가뿐 숨결일 뿐인 것을// 무엇을 더 바라겠느냐/ 이만하면 꽃이다'('더불어 꽃' 전문)

"자유시들이 너무 난삽해지고 율격을 잃어가면서 원래 시가 갖는 품위가 사라졌습니다. 현대시조는 사설시조나 엇시조를 이용해 어느 정도 형식의 자유를 누리면서도 시의 바탕을 지키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박시교)

이우걸 시인과 유재영 시인이 겪었던 변화도 뚜렷하다. 이우걸 시인은 "과거에는 서정성과 미감에 온 신경을 쏟았는데 지금은 우리 사회의 문제를 어떻게 노래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고 했고, 유재영 시인은 반대로 "초창기에는 시국이나 노동현장을 시로 썼지만 민주화가 이뤄진 다음부터는 이미지와 상징 같은 시의 본래 기능에 집중한다"고 말했다.

'이 비누를 마지막으로 쓰고 김 씨는 오늘 죽었다./ 헐벗은 노동의 하늘을 보살피던/ 영혼의 거울과 같은/ 조그마한 비누 하나.' 이우걸 시인의 시 '비누'는 세상을 떠난 노동자의 집을 방문했다가 얇은 비누 한 장으로 남은 고인의 자취를 보고 쓴 작품이다. "그 사람 집을 나와서 언덕길을 오르는데 희미하게 떠있는 낮달이 비누 같더라. 비누와 겹쳐진 낮달이 우리 사회에서 존재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자를 연상시켰다"는 게 이우걸 시인의 설명이다.

한편 유재영 시인의 시는 조선옹기, 연잎, 쌀독, 오동꽃, 분청사기, 홍시, 모과 등 전통 미감이 두드러진다. '이 나라 지극한 인심이며 햇빛이며/ 봉숭아 꽃물에다 우리 누님 울음까지/ 잘 구운 질흙 대장경 오디 빛 저 항아리'('조선 옹기를 주제로 한 세 가지의 시적 변용' 일부) 유재영 시인은 "우리 정서와 밀착된 세계를 보여주되 낡은 언어와 이미지를 깨트린 참신함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해방 전후에 태어나 첫 한글세대의 대표적 시조시인이 된 이들은 시조의 현대화를 위해 많은 고민을 해왔다. 시조의 소재도 다채로워졌고 형식 역시 종장의 첫 세 글자만 지키면 시조로 인정할 만큼 관대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민은 적지 않다.

"현재 시조시인이 2000여명 되는데 노인들이 많고, 그러다 보니 현실과 첨예하게 맞서기보다 관념으로 흐르게 되죠. 젊은 세대를 끌어들이는 것, 이를 위해 대학에서 시조를 가르치고 창작하는 게 저희의 바람입니다."(유재영)

< 글·사진 한윤정 기자 yjhan@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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