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완의 사이언스 카페] 튀밥과 팝콘을 연결한 물리학자

이영완 산업부 기자 2012. 2. 2. 23:1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함박눈이 온 하늘을 뒤덮은 날, 아이는 추운 줄도 모르고 뛰어다닌다. "하늘에서 팝콘이 내리는 것 같아요." 나 같으면 "하늘에서 튀밥이 내린다"고 했을 것이다. 설날을 앞둔 장터에서 "뻥이오" 하는 소리가 들리면 이내 우레 같은 폭음과 함께 눈송이처럼 하얀 옥수수 튀밥이 쏟아져 나왔다. 늘 배고팠던 그때는 정말로 튀밥이 하늘에서 눈처럼 내리는 꿈을 꾸기도 했다.

아이는 혀를 내밀고 진짜 팝콘을 맛보듯 눈을 음미한다. 그 모습을 보니 튀밥과 팝콘 이미지가 섞여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지난 2002년 심장병으로 마흔여섯이라는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고(故) 홍종한 교수다. 홍 교수는 미국 레하이대에서 우리네 팝콘 격인 튀밥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팝콘 크기를 키우는 과학적 방법을 개발한 물리학자다.

팝콘이 만들어지는 원리는 이렇다. 옥수수에 열을 가하면 그 안에 있는 수분이 수증기로 변하면서 내부 압력을 높인다. 이때 전분은 젤리처럼 흐물흐물해진다. 계속 열을 가하면 옥수수 내부 압력이 대기압의 9배까지 커진다. 옥수수 껍질이 더는 못 견디고 터지면, 수분이 일제히 밖으로 나가면서 젤리 상태의 전분을 면도 거품처럼 부풀어 오르게 한다.

1999년 연구를 시작할 때 홍 교수가 주목한 것은 압력이었다. 팝콘 크기는 옥수수 전분이 부풀어 오르는 시간에 비례한다. 전분은 껍질이 터지기 직전까지 유지되던 옥수수 내부의 고압이 주변 대기압과 같아질 때까지 부풀어 오른다. 그렇다면 옥수수 내부 압력을 더 높이거나 주변 압력을 낮추면 압력 차이가 벌어져 전분이 부풀어 오르는 시간이 늘어날 수 있지 않을까.

홍 교수는 어린 시절 보았던 튀밥을 떠올리며 압력 변화에 대해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일반적인 팝콘 기기는 영화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열을 가하면 옥수수가 터져 뚜껑 밖으로 튀어나오는 식이다. 뚜껑이 열려 있으니 압력은 옥수수 알갱이 안에서만 높아진다.

이와 달리 튀밥 기계는 밀폐된 용기 안에 옥수수나 쌀 등 곡식을 넣고 바깥에서 불을 때 용기 내부 압력까지 높이는 원리다. 압력이 적당히 높아지면 뚜껑을 열어 갑자기 압력을 낮춘다. 이러면 팝콘처럼 젤리 상태의 곡식 전분이 거품처럼 부풀어 오른다.

결국 우리네 튀밥 기계는 밀폐된 용기 자체를 가열하기 때문에 옥수수 안이나 옥수수가 든 용기 모두 압력이 높아진다. 덕분에 옥수수에 더 큰 압력을 가할 수 있다. 팝콘 만드는 데 쓰는 옥수수는 크기가 작아 열만 가해도 잘 터지지만, 그보다 크고 껍질이 두꺼운 찰옥수수는 튀밥 기계처럼 압력이 높아야 터지기 때문이다.

홍 교수는 튀밥처럼 용기 압력을 높이는 대신, 주변 압력을 낮추는 쪽을 택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년 뒤인 2004년, 홍 교수의 제자였던 쿠츠타운대의 폴 퀸, 스탠퍼드 의대 조지프 보스 교수는 '컨덴스드 매터(Condensed matter)'라는 물리학 저널에 스승 이름을 넣어 팝콘 크기를 두 배로 키우는 방법을 논문으로 발표했다. 두 제자는 홍 교수의 아이디어를 따라 팝콘 용기 내부 공기를 빼내 진공 상태로 만들었다. 공기가 없으니 압력은 자연 낮아진다. 그러자 팝콘 크기가 두 배가 됐고, 튀겨지지 않는 옥수수 양도 6분의 1로 줄어들었다.

홍 교수는 밀도와 크기가 다른 알갱이들이 섞여 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연구한 순수 물리학자였다. 서울대 물리학과를 나와 보스턴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책만 파고드는 성향은 아니었다. 평소 제자들에게 자연이나 실생활에서도 연구 아이디어를 얻으라고 강조했다. 팝콘 연구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는 '재미(在美) 한국인 물리학자 연합 뉴스'와 '한미(韓美) 과학기술 뉴스'의 편집자로도 활약했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사람들은 "홍 교수는 과학뿐 아니라 철학에서 종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뒀다"며 "특히 한국에 대한 사랑과 한국 문화에 대한 옹호가 그의 글에 담겨 있었다"고 추모했다. 그런 홍 교수가 어린 시절 골목을 대포 소리로 채우던 튀밥 기계를 잊었을 리 없다.

최근 농촌진흥청은 한 해 8000t을 수입하는 팝콘용 옥수수를 국산화하려고 올해 팝콘용 옥수수 재배 단지 100㏊(헥타르)를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이를 통해 2015년까지 팝콘 자급률을 30%까지 올린다는 계획이다. 그때쯤 국산 팝콘 옥수수를 튀밥 기계로 튀겨 홍 교수가 꿈꿨던 한국산 '왕'팝콘을 맛볼 수 있지 않을까.

  • 경비회사로 활동하는 조폭, 민간인 앞에선…
  • '나꼼수' 조롱하려는 남성, 女속옷 입고
  • "김 서방, 퇴근했나?" 계속 전화하는 장모 때문에 결국
  • 강용석, 군 면제받은 박원순 아들의 점프 영상 공개
  • TV드라마 미술의 제작과 비용 '드라마 미술, 때깔이 달라졌네'
  • "캄보디아 北식당서 사라진 미모의 종업원, 한국으로?"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