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기자들의 제작거부와 편집권 독립

김주언 전 한국기자협회장 2012. 1. 30.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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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자협회 온라인칼럼 [김주언의 미디어거울]

▲ 김주언 전 한국기자협회장 왜 또다시 '편집권 독립'인가. 설 연휴 직후부터 시작된 MBC 기자들의 제작거부는 본질적으로 편집권 독립을 위한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친정부 편향뉴스에 저항해 뉴스의 공정성 회복을 주장하며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의 사퇴 및 인적쇄신을 촉구해온 MBC 기자들이 전면 제작거부에 들어간 것은 사측이 일방적으로 휘둘러온 편집·편성권을 기자 전체의 품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동안 '큰 집에서 조인트 까진' 김재철 사장의 부임이후 '공영방송'의 책무를 저버린 데 대한 죄책감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방송의 기본인 MBC의 뉴스보도가 차질을 빚고 있다. MBC '뉴스데스크'는 50분 가까이에서 15~20분으로 대폭 축소하고, 아침 '뉴스투데이'도 10분으로 줄어들었다. 저녁뉴스와 마감뉴스는 아예 폐지됐다. 라디오뉴스는 앵커 없이 5분씩 방송됐다. '930뉴스'와 '뉴스매거진', '뉴스24'를 비롯한 기자들이 제작하는 대부분의 뉴스 프로그램은 편성에서 제외되거나 대폭 축소됐다. 방송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뉴스가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기자들이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환경감시'라는 기본적인 책무마저 포기할 만큼 이들을 취재현장에서 길거리로 내몬 데는 편집권을 독점적으로 행사해온 경영진의 책임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측은 기자들의 요구를 외면한 채 협의에 나서지 않고 있다. 김재철 사장은 아예 일본으로 출국해 '나 몰라라' 했다. 방송의 주인인 시청자들에게는 "기자들의 제작거부로 뉴스 방송시간이 단축됐다"며 "이른 시일 안에 정상화되도록 노력하겠다"고 간단하게 사과했을 뿐, 정작 기자들의 제작거부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공영방송으로서의 책무에 소홀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부분이다. 반면 MBC 기자회는 "뉴스 파행을 보며 참담함을 느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민과 시청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며 "정론직필, 공정한 뉴스, 국민의 알 권리와 인권존중, 보도의 자율과 독립이라는 상식을 회복시키겠다"고 다짐했다.

MBC 기자들의 제작거부에 대해 언론계 및 시민단체의 지지와 연대가 잇따랐다. 언론노조는 "우리 사회는 다소의 희생이 있더라도 김재철 체제로 총선을 맞지 않겠다는 암묵적 합의가 있다"면서 "공영방송에 대한 터럭만큼의 책임감이 있다면 시청자, MBC 구성원, 전문가, 기자들의 이런 평가와 행동에 겸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도 "김재철 사장 취임 이후 MBC가 처한 가장 큰 불행은 신뢰의 상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언론시민연합도 "MBC 기자들은 공정보도 쟁취를 위해 어떠한 탄압에도 굴하지 말고 끝까지 싸워 달라"고 당부했다. MBC 내부에서도 PD협회와 전국기자회 등이 "부문의 벽을 넘어, 공영방송 MBC의 구성원으로 보도부문 구성원들의 결단을 지지하며 함께 할 것"이라고 밝혔다.

MBC뉴스의 계속됐던 침묵

MBC는 김 사장 취임이후 공영방송을 포기하고 'MB씨 방송'으로 전락했다는 비아냥을 들을 만큼 시청자들로부터 불신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MBC 기자들의 자성처럼 숱한 이슈를 다룰 때마다 MBC 뉴스는 일관되게 비정상적인 길을 걸어왔다. "4.27 재보궐 선거 편파, 장관 인사청문회 의혹 축소, KBS 도청 의혹 보도통제, PD수첩 대법원 판결 왜곡, 내곡동 사저 편파, 10.26 재보선 불공정, 한미 FTA 반대 집회 누락과 편파, 미국법원의 BBK 판결문 특종 홀대, 김문수 경기지사의 119 논란 외면까지" 역사의 시계를 87년 민주화 이전으로 되돌렸다고 해야 할 정도의 침묵과 왜곡의 연속이었다.

대신 MBC TV에는 새로운 스타일의 '뉴스 아닌 뉴스'가 자리잡았다. 걸핏하면 헬기를 타고 휴일나들이 스케치나 교통사정, 날씨 등을 전달하는 보도가 메인뉴스로 등장했다. 그래서 '조감도' 아닌 '오감도 저널리즘'이라는 용어가 탄생하기도 했다. 갑자기 '뷔페식당에서 잘 골라먹는 법'이나 '야구장에서 가장 좋은 자리잡는 법' 같은 기상천외의 정보가 시청자들에게 전달됐다. 철따라 등장하는 건강정보는 '뉴스 순환론'을 뒷받침해주는 필수 아이템이었다. 세상을 뒤흔든 권력층의 비리에 관한 뉴스는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는 MBC 기자들에 대한 취재거부로 나타나기도 했다. MBC의 한 기자는 "현장에서 취재원과 부딪치면서 몸으로 시민의 불신을 느꼈다"며 "10.26 재보궐선거 때는 박원순 후보를 취재 갔다가 시민들로부터 돌도 맞아봤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기자들이 집회에 들고 나온 팻말에 적힌 '현안외면 본질회피 신뢰추락 불러왔다' '조롱받는 우리 뉴스 더 이상 못 참겠다'는 구호는 이들의 절실함을 웅변으로 대변한다. 취재현장에서 취재거부를 당하는 기자들의 참담함을 겪어보지 않은 기자는 모른다. 지난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불타버린 광주MBC 건물이 떠올랐는지도 모를 일이다.

MBC 뉴스의 불공정성은 전문가들의 평가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MBC노조가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언론학과 교수 1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전화면접 조사 결과, 언론학자들의 70%가량은 특히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MB 내곡동 사저 의혹, 한미 FTA 날치기, MB 측근비리 의혹 보도에 대해 '문제 있었다'고 응답했다. 언론학자들은 MBC의 공정성과 신뢰도가 이전보다 못하거나 개선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친정부 성향의 간부들에 의한 보도통제'(70%)를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특히 김재철 사장 이후 'MBC보도가 공정성에서 후퇴했다'고 보는 응답자는 63%에 달했다. 68%의 응답자는 '신뢰도 역시 전보다 떨어졌다'고 답했다. 뉴스의 공정성에서도 하위를 기록했다. MBC는 YTN(43%), KBS(14%)에 이어 3위(9%)에 머물렀다.

▲ 제작거부에 돌입한 MBC 기자들이 13일 서울 여의도 MBC방송센터 1층 로비에서 뉴스 파행에 따른 쇄신 인사를 촉구하며 침묵 시위를 벌였다. (사진=MBC노조)

MBC뉴스에 대한 신뢰도 저하는 결국 시청률 급락으로 이어졌다. 김재철 사장은 보도국 간부들과의 끝장토론을 열고 이른바 뉴스개선안을 마련했으나 본질적 내용은 외면했다. 결론은 "뉴스데스크 시간대 이동과 대표 리포터제 도입 검토"였다. '잘못된 진단에 의한 즉흥적 처방'이었던 셈이다. 결국 토요일과 일요일의 메인뉴스 시간대를 오후 8시로 옮겼으나 뉴스 내용은 제자리를 맴돌았을 뿐이다. 김 사장은 국민의 생활시간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뉴스 시간대를 옮겨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했을 뿐, 뉴스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대책은 내놓지 않았다.

MBC 기자들의 제작거부와 뒤따를 파업에 대해 시청자들은 지지를 보내면서도 정권 말기의 레임덕으로 통제강도가 완화된 이후에야 행동에 나섰다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청와대의 '낙하산 사장 임명 강행' 등에 대해 몇차례 파업을 벌였으나 별다른 성과 없이 '생색내기 파업'에 그쳤다는 뼈아픈 평가도 이어졌다. 보수신문으로부터 '노영방송'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강력했던 MBC 맨들의 강력한 단결력이 낙하산 사장이 들어선 지 1년도 안 돼 소리없이 무너져 내린 데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절대로 기득권만은 포기할 수 없는 기득권 집단'이란 비아냥이 그것이다.

MBC 기자사회 내부의 자성도 이를 잘 말해준다. "내부의 문제제기는 무시당했고, 취재 현장의 목소리는 묵살됐다. 평기자들의 공정보도 감시기구인 민주방송실천위원회가 수십개의 보고서를 통해 불공정 보도를 지적했지만, 기자회가 직간접적으로 여러 차례 우려와 경고를 전달했지만 들으려 하지 않았다. 일 잘하고 바른 말 잘한다는 기자들은 소리 없이 한직으로 밀려났다. 소통이 생명인 언론사 내부에서, 언로의 숨통은 그렇게 죽어갔다." 김 사장과 보도본부 간부들은 자신들의 특권인 인사권을 남용해 기자사회를 순치시켰고, 기자들은 간부들의 눈치를 보며 순한 양처럼 길들여져 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MBC의 한 기자가 '미디어 오늘'에 고백한 얘기를 더 들어보자. "리포트가 하나씩 잘렸다. 이젠 상식적이고 비판적인 리포트를 하나 넣기도 힘들다. 보수적 성향의 어떤 집회는 참가자가 수십명에 불과한데도 뉴스데스크에서 두번씩이나 보도했지만 수천명 이상 참가한 한미 FTA 반대 집회는 뉴스 한 번 내보내기도 어려웠다. 위에서 내려주는 아이템은 '얘기 안 돼도 그냥 하나 하자'고 말하면서 밑에서 발제할 때는 '얘기가 되니 안 되니', '그림이 되니 안 되니', '참가자는 몇 명이고 충돌은 있니 없니' 등 별의별 조건을 다 들어가며 취재의지를 떨어뜨렸다. 기자들이 항의하면 회사는 1% 높아진 시청률을 보여주며 '이게 시청자가 원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편집권 독립은 MBC만의 문제 아니다

편집권 독립을 위해 제도적으로 마련된 민주방송실천위원회조차 유명무실해지고 만 셈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수차례의 파업과 수십명의 언론인들이 감옥에 가는 수난을 무릅쓰고 쟁취했던 편집권 독립이 하루아침에 무위로 그치고 말았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당시만 해도 '독재정권의 나팔수'라는 모욕적 별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내걸고 '민주언론'을 위해 싸웠던 선배 언론인들의 투쟁의지는 소멸돼버리고 만 것일까. 편집권 독립을 위한 제도적 장치는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경구가 현실로 나타난 것인가. 결국 편집권 독립은 언론종사자들의 내적 자유를 위한 투쟁으로만 쟁취할 수 있다는 점을 각인시켰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다면, 있는 것 보다 못한 법이다.

언론인에게 부여된 언론의 자유는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경영의 자유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공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사회적 엄명이며 따라서 경영의 사익 추구를 위한 도구로 동원되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 이를 위해 언론인에게는 헌법상 기본권인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독립성과 자율성이 부여되어야 한다. 그러나 외부적인 구속이나 언론사 내부의 문제로 편집의 자유가 침해된다. 편집권이란 "언론에 가해지는 간섭, 규제, 통제로부터 언론자유를 지키고 진실하고 공정한 보도와 논평을 통해 국민의 알 권리에 충실하고 올바른 여론 형성에 기여할 수 있도록 신문제작 과정의 자율성을 갖는 권리"라고 할 수 있다.

▲ 부산일보 기자들이 지난해 11월29일 오전 소집된 이정호 편집국장 징계위원회를 몸으로 막아 무산시켰다. (전국언론노조 부산일보지부 제공) 그러나 오늘날 언론계에서 편집권 독립이란 말이 사라졌다. MBC만의 문제는 아니다. 언론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최고의 목표로 여겨졌던 편집권 독립은 이제 빛바랜 용어가 되어버렸다. 우리사회가 민주화하면서 편집권 독립을 운위할 필요가 없어질 만큼 편집권이 독립돼 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편집권이 경영진에 귀속돼 있는가, 현장 언론인의 독립된 권리인가에 대한 고민도 사라졌다. 기자들은 회사의 경영방침을 잘 샐러리맨으로 전락했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편집권의 행사는 경영진의 고유 권리이며, 기자들은 회사 방침에 따라야 한다는 샐러리맨의 불문율이 언론사에도 적용되고 있는 것인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는 패배의식이 언론계에도 팽배해 있는 것인가. '절을 바꾸겠다'는 기개와 패기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편집권 독립 문제는 이미 지난해 말 부산일보에서 불거졌다. 부산일보 노조가 '제2의 편집권 독립운동'을 선포하고 정수재단의 사회 환원을 요구했다. 실질적 소유주인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의 입김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언론활동, 다시 말해 편집권 독립을 쟁취하겠다는 의지였다. 여당의 대통령 후보로 거의 확실시되는 박근혜 의원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정치적 독립을 쟁취하겠다는 언론사의 몸부림인 셈이다. 부산일보 제2의 편집권 독립운동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MBC 기자들의 제작거부는 편집권 독립을 위한 시발점일 뿐이다. MBC 노조는 기자들의 제작거부를 지원하기 위해 파업찬반 투표를 거치는 등 전면파업을 예고했다. KBS도 보도국 간부들에 대한 신임투표를 통해 불신임을 결의했다. 양대 공영방송의 공영성을 몰락시킨 이명박 정부에 대한 언론인들의 투쟁이 본격화할 태세다. 언론인들의 투쟁은 결국 '편집권 독립'으로 모아진다. 역시 '민주언론'의 근간은 편집권 독립임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시청자들과 국민은 양대 공영방송 언론인들의 움직임을 면밀하게 주시하고 있다. 방송의 신뢰성, 더 나아가 국민의 언론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느냐의 여부는 이들의 투쟁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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