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를 위하여]주택정책 '집 없는 서민'에 맞추자
[이데일리 김동욱 기자] 정부 주택 정책의 기조는 집값 상승률이 물가상승률보다 소폭 높은 추세를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중장기적으로 공급이 원활해지고 서민 주거 안정도 가져올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런 입장에서 보면 최근 몇년새 주택 거래 시장이 침체돼있는 상황은 우려스러울만하다. 2011년 한 해동안 정부가 무려 6차례에 걸쳐 부동산 대책을 내놓은 것도 이런 다급한 마음이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발표 때마다 `서민`을 내세우는 것과 달리 강남 규제 완화로 대표되는 집값 떠받치기에 다름아니었다.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 완화가 대표적이다. 좁은 국토에서 개인이 여러 채의 집을 가지면 그만큼 집값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부는 돈 있는 사람들이 집을 여러 채 사서 임대주택으로 공급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다주택 임대사업자에 대한 규제 문턱을 낮추고 각종 세제 혜택을 확대했으며고 지난 12.7대책을 통해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 입장을 명확히 했다. 많이 가진 사람에게 더 걷는다는 조세 정의를 징벌적 규제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집값 떠받치기는 부동산 거품을 계속 가지고 가는 `폭탄 돌리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은행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서울 지역 평균 집값은 4억4646만원으로 중간 소득(연 3830만원)의 11.7배에 달한다. 번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도 서울에서 집 한 채 갖는데 12년 가까이 걸리는 셈이다. 소득의 3분의1을 저축하면 35년이 걸린다.
집 없는 서민들 입장에서 보면 과도하게 치솟은 집값이 내려가야 하는 것이다. 국민은행 주택가격지수를 보면 2000년대 들어 매년 평균 5% 가량씩 꾸준히 올랐다. 2004년을 제외하고는 계속 오름세였고 2002년과 2006년에는 각각 16.4%, 11.6%나 급등하기도 했다. 정부가 주택 경기 부양 필요성을 강조한 올해도 11월까지 6.7%나 올랐다.
무엇보다 2008년 금융위기를 맞으면서 세계적으로 자산 거품이 빠지는 현상이 나타났는데, 단기간에 이처럼 집값이 급등한 우리나라만 유독 거품이 낀 가격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이 급격한 가격 하락을 우려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정부가 내세우는 임대주택 공급 효과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집값 상승 기대감이 낮아진 상황에서 임대수입만 바라는 매매 수요가 얼마나 될 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이미 지나치게 올라 있는 집값도 걸림돌이다. 예를 들어 금리를 5%라 치고 10억원짜리 강남 아파트를 사서 적정 임대수익을 거두려면 연간 5000만원을 임대료로 받아야 한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소득에 비해 턱없이 가격이 높은 집을 사려면 과도한 레버리지(차입)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 가계부채가 900조원에 이를 정도로 포화 상태라는 점은 금융권과 가계경제의 심각한 걱정꺼리다.
정부는 이같은 점을 걱정해 비싼 집값을 계속 유지시켜야한다고 보는 것이다. 집값이 급락하면 이자 부담을 견디지 못한 집주인들이 대거 매물을 내놓고 이는 국가 경제의 위기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굴렁쇠처럼 멈추면 쓰러진다는 인식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집 가진 빈곤층, `하우스푸어`는 108만4000가구(374만4000명)에서 156만9000가구(549만1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 인구의 10% 가량이 은행 이자에 짓눌려 있는 상황이다. 그만큼 소비를 위축시키고 내수 경기를 악화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부동산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아있는 시한폭탄과 같다.
정부는 이 폭탄을 해체하고 피해를 최소화해야하는 절박한 과제보다는 터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들고 가는 방법을 택한 것 같다. 하지만 이는 책임성 있는 태도로 보기 어렵다. 비정상적으로 급등했다면 결국 정상적인 수준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폭탄은 결국 터진다.
비싼 집값의 가장 큰 폐해 중 하나는 근로의욕 상실이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집 한 채 장만할 수 없다는 사실은 절망케 한다. 결국 물려받은 재산의 유무가 주택 소유 여부와 연결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보면, 빈부 격차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대목이기도 하다.
또 비싼 집값의 가장 큰 피해자는 이제 갓 사회에 진출한 새내기부터 30~40대다. 하우스푸어의 대부분이 1990년대 학번이라는 점도 이를 방증한다. 이들은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역동성을 갖고 있으며 미래의 명운을 결정할 핵심 주체다. 주택 정책의 패러다임을 집 없는 서민으로 더 옮겨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한다.
김동욱 (kdw1280@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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