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주택정책 해부]①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길잃은 정책
마포구 대흥동에 살던 김모(59)씨는 최근 20년을 넘게 살던 전셋집에서 나와 은평구로 이사를 했다. 방 2칸 다가구 주택에 6000만원 전세금을 주고 살고 있었지만 재계약을 앞두고 집주인이 3000만원을 올려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어렵다며 오랫동안 같이 지낸 집주인에게 하소연도 해봤지만 집주인 역시 결혼한 아들의 전세금이 부족해 올릴 수밖에 없다는 말을 듣고 이사를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일하는 곳이 근처라 떠나기 싫었지만 보증금 6000만원으로는 근처에서 변변한 전셋집을 구할 수 없었다"며 "그동안 정든 동네사람들과 헤어지는 것이 가장 아쉽다"고 말했다.
MB 정부 4년. 부동산 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라는 출범 당시의 예상과 달리 부동산 시장은 최악의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수도권 집값은 상대적으로 안정화됐지만, 지방 아파트가격은 하루가 멀다하고 올랐고 전세금은 수도권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폭등하면서 서민들의 삶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이런 이유로 MB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소비자는 물론 건설업체와 부동산업계에서도 동시에 비판을 받는 모습이다.
대형건설업체 한 관계자는 "건설사 CEO 출신의 대통령이라 기대가 큰 것도 사실이었다"며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서민주거안정, 거래활성화, 주택공급 등 무엇하나 제대로 된 게 없다"고 말했다.
◆ MB 정부 부동산 정책…"규제 완화에서 서민주거안정으로"
MB 정부는 시장 상황에 따라 수많은 대책을 쏟아냈다. 참여정부 5년간 종합대책은 8번에 불과했지만 현 정부는 지금까지 14차례에 걸쳐 대책을 발표했다. 이외에도 크고 작은 대책을 모두 포함하면 30여 차례를 훌쩍 넘는다.
그럼에도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하겠다는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목표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출범 초기부터 참여정부가 집중했던 신도시 정책을 폐기하고 도심 재개발·재건축 활성화를 통한 주택공급에 무게를 뒀다. 재건축 후분양제 폐지, 임대주택 비율 완화 등의 규제 완화 대책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시장 침체가 지속되면서 도심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사실상 중단되자 전세금 급등 문제가 MB 정부의 발목을 잡았다. 그리고 일부 지역의 집값이 상승할 조짐을 보이자 총부채상환비율(DTI)과 담보인정비율(LTV) 등 규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이 선회했다. 이 때문에 MB 정부의 후반기 주택 정책은 전반기와는 달리 대부분 서민 주거 안정에 초점이 맞춰지게 됐다.
이런 MB 정부에 대해 시장에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시장 상황에 따라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이라는 평가가 있지만 시장을 혼란스럽게 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김규정 부동산114 리서치센터본부장은 "지난 정부 때보다 부동산 시장을 둘러싼 대내·외 여건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며 "시장 상황에 따라 선제로 대응하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효과는 없었다고 평가된다"고 말했다.
◆ 수도권 집값은 잡았지만, 지방은 폭등
MB 정부의 집값 안정화 정책은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다. 무엇보다 서울 강남구 등 참여정부 시절 '버블 세븐'으로 주목받았던 지역의 집값이 현 정부 들어서는 맥을 추지 못했다.
실제로 서울 강남구 아파트 가격은 MB 정부 출범 전보다 더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국민은행의 주택가격 시계열자료를 보면 서울 강남구의 아파트 매매가격지수(2001년 6월=100)는 2008년 1월 102.6에서 2011년 11월 99.1로 3.5포인트 떨어졌다.
하지만 지방 아파트 가격은 MB 정부 4년 남짓 동안 폭등했다. 5개 지방 광역시의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2008년 1월 78.9였지만 올해 11월에는 106.6으로 28.7포인트나 상승했다. 특히 부산은 같은 기간 67.5에서 105.8로 38.8포인트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팀장은 "지방은 수도권과 달리 실수요 중심의 시장으로 투기적 수요가 많지 않은 편"이라며 "지방은 수도권과는 차별화된 정책을 썼어야 했지만 현 정부는 그렇게 하지 못했고 이는 지방 집값 급등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 서민 주거 안정은 낙제…전·월세난 더 키워
송파구 가락동의 한 아파트에 사는 장모(36) 씨는 1년 전 자신이 살던 아파트 전세를 '반(半) 전세'로 바꿔 임대 계약을 연장했다. 집주인이 1억3000만원이었던 전세금을 5000만원가량 더 올려달라는 말에 목돈을 구할 수 없어 보증금 1억에 월세 70만원으로 계약 조건을 바꾼 것.
그 후 1년 동안 장씨는 씀씀이를 크게 줄였다. 가족과의 외식도 덜하고 문화생활도 거의 하지 못했다. 최근 크리스마스에는 부인과 함께 영화 한 편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장씨는 "집값이 내려갔다고 하지만 전세금이 크게 올라 서민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졌다"며 "새해 재계약을 벌써 걱정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지표상으로는 집값이 안정화된 모습이지만 서민들의 삶은 더욱 힘겨워졌다. MB 정부 4년 동안 서울지역 전세금은 20% 이상 급등했다. 한 부동산정보업체의 조사에 따르면 서울의 100㎡(30평)형대 아파트 전세금(평균 2억8000만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5년이 넘는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아야 할 정도가 된 것.
이는 MB 정부가 전세난에 대해 초기부터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009년 말 전세금이 급등하기 시작할 당시 주무부처인 국토해양부 장관을 비롯한 고위 관료들은 '일시적인 상승', '계절적인 요인에 따른 상승' 등의 발언을 하면서 전세금 급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보금자리주택을 싼값에 공급하면서 전세 수요는 매매수요로 바뀌지 않고 전세 수요만 급증하게 됐다. 공공임대주택은 보금자리주택에 밀려 공급량이 크게 줄었다. 정부가 뒤늦게 상대적으로 단기간 공급할 수 있는 도시형 생활주택과 민간 임대사업 활성화를 통해 전·월세난을 타개하려고 했지만, 전세난의 원인이 된 3~4인 가구의 전세 수요를 해결할 방법은 결국 내놓지 못했다.
장성수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실장은 "도시형 생활주택은 1인 거주형으로 현재의 전·월세 문제에는 큰 도움이 안 된다"며 "MB 정부 출범 이후 도심에 공급돼야 할 다세대·다가구 주택의 공급이 줄었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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