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쿠라 사절단은 歐美서 무얼 보았을까

김태식 2011. 12. 28.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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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명전권대사 구미회람실기' 전5권 완역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에도 막부를 타도하고 천황에게 권력을 돌린 메이지 정부는 1871년 7월14일에는 폐번치현(廢藩置縣)을 통해 중앙집권 국가 건설을 향한 돛을 올리기 시작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대내적인 조치였다면, 대외적으로는 불평등조약을 개정해야 했다.

이에 메이지 정부는 이와쿠라 도모미(岩倉具視)를 대사(大使)로 하고,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야마구치 마스카(山口尙芳)를 부사(副使)로 하는 대규모 사절단을 미국으로 파견키로 했다.

이들이 주축을 이룬 공식 사절단 47명을 포함해 수행원과 유학생까지 포함해 107명에 달했다. 대규모 사절단이 불평등조약 개정을 협의하러 미국 수도 워싱턴을 향해 요코하마항을 출발한 것은 1871년 11월12일(음력. 이하 같음).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샌프란시스코에 안착한 이들은 다시 거기에서 철도로 로키산맥을 넘고 미시시피 대평원을 가로질러 시카고를 통과해 이듬해 1월21일 워싱턴에 입성했다.

워싱턴 체류 기간에 율리시스 그랜트 대통령을 면담하고 해밀턴 피시 국무장관도 만난 '특명전권대사' 이와쿠라 사절단에게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사절단 일원 중 한 명으로 나중에 저명한 역사학자로 등극하는 구메 구니다케(久米邦武. 1839-1931)는 1878년, 사절단 활동 내역과 견문 내용을 날짜별로 상세히 정리한 '특명전권대사 미구회람실기'(特命全權大使米歐回覽實記)라는 책자를 낸다. 전 5권 100편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제목은 '특명전권대사 이와쿠라가 이끄는 사절단이 미국과 유럽을 돌아본 실제의 기록'이라는 뜻이다.

이 기록의 1871년 2월12일 대목을 보면 "맑음. 바람이 참"이라는 날씨 정리에 뒤이어 "아침 6시 오쿠보 부사가 뉴욕을 경유하여 일본으로 귀국하였다"는 말이 보인다.

다른 기록을 종합할 때 오쿠보 뿐만 아니라 이토도 귀국길에 동행했다. 이들이 다시 워싱턴에 나타나 사절단에 합류한 것은 약 넉 달이 지난 뒤인 6월17일.

메이지 정부는 이와쿠라를 특명전권대사로 임명해 미국 정부를 상대로 1854년 강제 개국 당시 체결한 불평등조약을 개정하려 했지만, 미국 정부는 이와쿠라가 전권위임장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퇴짜를 놓았다.

이에 놀란 사절단에서는 허겁지겁 오쿠보를 다시 머나먼 귀국길에 오르게 해서 위임장을 받아와 협상에 임했지만 이번에도 결렬돼 버렸다. 애초의 사절단 파견 의미가 무색해진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이 사건은 이와쿠라 사절단, 나아가 이들을 파견한 일본정부에는 선진 문물의 실상을 파악하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했다.

사절단은 곧바로 귀국하지 않고 다시 대서양을 건너 영국으로 건너가 산업혁명의 심장부를 관람하고는 다시 대륙으로 건너가 프랑스와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러시아, 덴마크, 스웨덴, 이탈리아, 스위스를 돌았다.

다시 프랑스로 돌아와 마르세유를 출항한 사절단은 지중해를 거쳐 수에즈 운하를 통과해 동남아시아를 지나 1873년 9월13일에 다시 요코하마로 귀항하니 출발한 지 1년 9개월21일만이었다.

이 실기를 편찬한 목적을 구메 구니타케는 "우리 사절이 견문한 바를 가능한 한 널리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으며 이를 위해 "각국의 정치·교육·군사 등의 상황을 상세히 시찰"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구메는 "장차 지도적 자리에 서서 정부 기관에서 일을 하려면 이 사절단 파견의 목적을 인식하고 이 나라의 세력을 유지해 가야 한다. 일반 국민도 이 목적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나라의 전진을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이 실기가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하는 '학술명저번역총서' 중 '동양편'에 포함돼 최근 완역돼 나왔다. 정애영 고려대 강사와 방광석 인천대 일본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박삼헌 건국대 교수, 서민교 성신여대 강사, 정선태 국민대 교수가 각각 1권씩 분담해 옮겼다.

옮긴이들은 이 실기가 갖는 의미를 "근대일본이 19세기 후반 서양의 무엇에 주목하고 어떻게 받아들이려고 했는지 파악할 수 있는 생생한 자료"라는 점에서 찾는다.

소명출판 펴냄. 각권 384-444쪽. 권당 2만7천-3만1천원.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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