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빛을 찾아간 고조선 유민, 아기 예수를 만나다

한윤정 기자 2011. 12. 23. 21:0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90000리이병천 지음 | 다산북스 | 302쪽 | 1만3000원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 지라. …(박사들이)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마태복음 2장 1~12절)

장편소설 < 90000리 > 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경배하러 온 동방박사들의 여정을 상상해 본 작품이다. 작가는 그들이 나라 잃은 고조선 유민들이었다고 가정한다. 9만리는 당시 고조선을 쓰러뜨린 한(漢)의 수도 장안에서 베들레헴까지의 거리다. 이들은 별을 본 뒤 실크로드를 따라 스물한 달 보름을 여행해 아기 예수와 마리아, 요셉을 만났다.

동서양을 관통하는 역사적 상상력은 몇 가지 근거를 갖는다.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었던 것처럼 환인 역시 하느님의 아들이었다. 세상을 구원할 아기의 탄생은 고조선을 다시 일으킬 신인(神人)을 기다리던 고조선 유민들에게도 계시로 여겨졌다. 누구보다 먼저 아기 예수에게 경배한 동방박사들의 덕행은 훗날 고조선의 후손들에게 보상을 가져온다. 고조선을 따라 국호를 정한 조선의 태조 이성계는 꿈에서 금척(金尺)을 받는데 이는 요셉이 자를 많이 사용하는 목수였던 것과 관련이 있다. 세계사에 유례 없이 스스로 받아들인 조선 천주교의 배경에도 2000년 전 동방박사들의 전도 여행이 있었다는 것이다. 작가 이병천씨(55)는 "천손(天孫)임을 믿어 의심치 않다가 그 하늘의 나라가 멸망당하는 일을 겪어야 했던 고조선 유민들의 열망이 동방박사로 거듭 태어나는 일이 과연 불가능할까"라고 묻는다.

첫 장면에서 달하, 성기, 에데사 세 사람은 허름한 집으로 들어가 아기 예수를 만난다. 멀리서 귀한 선물을 들고 찾아온 이들에게 요셉은 자신이 쓰던 곱자를 건네는데, 거무튀튀하던 쇠 곱자가 금척으로 바뀌는 기적이 연출된다. 이들을 포함한 고조선 유민들의 여정은 기원전 1년 장안에서 시작된다. 당시 유라시아 대륙을 평정한 한은 여러 부족을 불러들여 가악제전을 열고 있다. 이 행사 중 동호족이 황제를 죽이려다 실패하자 고조선 유민들은 소수민족에 대한 핍박을 피해 서둘러 장안을 떠난다. 마침 서역 하늘에 유성이 쏟아지는 심상치 않은 징조가 나타난다.

유민 무리에는 족장인 부르암을 비롯해 그의 딸이자 무녀인 달하와 양아들인 그리메, 쇠불, 불사위와 불모루 형제, 아홉, 한붑 등이 있다. 또 흉노족 여성인 칼리도 따른다. 한때 칼리와 연인이던 융커는 한의 장수 왕망에게 충성을 바치면서 이들을 쫓는다. 융커의 표적은 비단 동이족이 아니다. 그들이 찾아나선 새로운 권력의 조짐을 제거하는 게 그의 목적이다.

고구려 유민들은 장안에서 옥문관, 누란, 타클라마칸 사막, 파미르 고원을 향해 나아간다. 족장 부르암이 한족 병사들의 칼에 숨지고, 옥문관에서 실크로드를 잘 아는 상인 에데사를 만난다. 누란에서는 고조선 부흥운동을 벌이다 추방된 그리메의 친부 성기가 합류한다. 어느덧 달하와 그리메는 의남매가 아닌 부부가 되고, 달하는 댕기를 싹둑 자르면서 중앙아시아 유목민의 모습으로 변한다.

이 소설은 고대사에 대한 고고학적 단서와 실크로드 연구 성과, 고대 종교와 성경 지식을 섞어놓은 모험극이 된다. 일행은 더러 죽거나 흩어졌다가 재회하면서 유대왕국에 도착한다. 그리고 아기 예수와 마리아, 요셉을 만난다. 융커와 그리메의 대결은 그리메의 승리로 끝나지만, 그는 성(聖)가족이 배를 타고 유대왕국을 떠나도록 지켜주다가 로마 병사의 손에 희생된다.

별의 인도로 아기 예수를 만난 달하 일행은 다시 동방으로 떠난다. 이후 그들의 행로는 알 수 없다. 단 에필로그는 2000년이 지난 뒤 달하의 흔적을 보여주는 물건이 베들레헴에서 나타났다고 전한다. 별의 움직임을 보여주던 달하의 동경(銅鏡)이 그것이다. 베들레헴에 도착한 뒤 달하는 동경을 우물에 빠트렸다. 그리고 2000년 후 발굴단에 의해 그 거울이 나타남으로써 '금척의 전설'이 드디어 완성된다.

< 한윤정 기자 yjhan@kyunghyang.com >

경향신문 '오늘의 핫뉴스'

▶ 배우 윤은혜, 세입자에 승소

▶ '정봉주' 들썩… 공지영 "나도 구속하라"

▶ 나꼼수 김어준 "출연진…"

▶ 女탤런트, 땅콩보트 사고로 억대 배상

▶ 北, 김정일 장례식에 女마술사 초대… 왜?

모바일 경향 [New 아이폰 App 다운받기!]| 공식 SNS 계정 [경향 트위터][미투데이][페이스북][세상과 경향의 소통 Khross]-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