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 군침 도는 참한 조기, 생생한 굴

2011. 11. 24.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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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 굽고 시락국 끓이는..지금 목포·통영은 제철 먹거리의 바다

[한겨레] 선뜻 주말여행 나서기가 꺼려지는 을씨년스런 초겨울이다. 경치보다는 입맛 돋우는 음식, 제철 맞은 해산물들에 눈 돌려볼 때다. 2박3일간 전남 목포, 경남 통영을 돌아봤다. 두 도시엔 공통점이 있다. 남서해안의 다도해 여행 출발지라는 것, 풍부한 해산물을 바탕으로 다양한 음식문화가 발달한 고장이라는 것이다. 이맘때 두 도시 포구와 수협 어판장을 찾는다면, 풍어를 이룬 참조기 떼와, 본격 채취가 시작된 싱싱한 생굴 무리를 만날 수 있다.

목포→ 참조기떼가 점령한 목포항과 뒷골목 맛집들

지난 18일 목포 삼학도 선착장. 비가 흩뿌리는 가운데 주민 수십명이 '조기 떼기' 작업에 여념이 없다. 조기 떼를 가득 품고 선착장에 부려진 그물더미는 첩첩이 밀려온 흰 파도를 닮았다. 주민들은 날렵한 손길로 눈부신 파도 한자락씩을 끌어당겨, 점점이 박힌 참조기들을 떼내 상자에 담는다.

"잠 한숨 제대로 못 자고 조기 딴당게요. 하루에 열 몇시간썩 일해부러." 추위 속에 종일 서서 일하는 고된 작업인데도 주민들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9월부터 일하고 있다는 박정미(72·용당동)씨는 "작년엔 12월에 두어번 작업하고 말았는데, 올해는 밤낮이 따로 없다"며 즐거운 표정이다. "좋제라. 한 일주일 일허고 70만원썩은 번게로."

16년 만에 만난다는 참조기 대풍년이다.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며, 초가을부터 일찌감치 형성된 제주도 근해와 흑산도 앞바다의 참조기 어장이 지속되고 있다. 목포는 서남해안의 대표적인 참조기 집산지다. 북항(뒷개)이나 삼학도 포구에선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벌어지는 조기 떼기 작업이 장관을 이룬다.

요즘 잡히는 조기는 대개 15~30㎝ 크기. 길이 15~20㎝짜리를 8석, 20~25㎝는 7석, 25~30㎝는 6석으로 분류한다. 8석짜리 상자엔 280마리, 7석 상자엔 135마리, 6석 상자엔 100마리가량이 담긴다. 목포수협 어판장에선 요즘 하루 6000~8000상자가 거래된다. 어판장에서 조기 상자를 포장하던 일꾼이 팔뚝을 내밀며 말했다. "5석(1상자 70마리), 4석(1상자 55마리)짜린 팔뚝만헌디, 요즘엔 통 못 본당게. 크기 전에 싸그리 잡아부링게."

지난해보다 3배 이상 많이 잡힌다는 대풍년인데도 참조기 값은 그리 떨어지지 않았다. 품질이 지난해보다 좋아 가격이 높게 형성된데다, 중간도매상들이 대량 구입해 저장에 나섰기 때문이라고 한다. 목포수협 옆 도로변 도매상가에선 8석짜리 한 상자에 12만원, 7석은 20만원, 6석은 50만원 선에 팔았다. 한 상인은 "그래도 작년 이맘때보단 20~30% 내렸다"고 했다. 참조기가 풍어를 이루면서 한창 제철을 맞아야 할 갈치는 귀한 어종이 됐다. "갈치잡이에 나서야 할 어선들이 참조기잡이에 매달리고 있어서"다.

해물탕 간판 달고 생선찜·조림만 13년 전통

목포 여객선터미널에서 수협 가는 길가에 '맛길 회·구이'(061-242-5161)가 있다. 여기선 참조기를 푸짐하게 맛볼 수 있다. 30년간 조깃배를 운영해온 선주(김성희·56)가 주인. 조기매운탕백반(7000원)이나 조기구이(1인 1만3000원)를 시키면 크기는 작아도, 섭섭지 않게 참조기 맛을 즐길 수 있다. 6~7석짜리 큼직한 조기를 쓰는 조기매운탕(3만5000~5만원)은 따로 있다. 병어회·홍어회·오징어무침 등 밑반찬 해물들도 자연산만 쓴다.

죽동 목포극장 부근의 죽동해물탕(061-244-3399)은 해물탕 간판을 달고 문 열었지만, 13년째 생선찜·조림만을 내온 작은 식당.(그래서 앞에 새로 생긴 죽동생선찜집과 혼동하기도 한다.) 알음알음으로 단골들만 드나드는 곳이다. 조기구이백반 2인 1만5000원, 갈치찜·병어찜 각각 1인 1만2000원. 조미료나 설탕은 쓰지 않는다. 단맛은 매실액으로 낸다. 단골들은 대개, 먹고 싶은 제철 생선요리를 예약 주문해 먹는다. 더덕무침·깻잎·갈치조림·파래전 등 밑반찬도 직접 만든다.

목포 여객선터미널 앞길 건너 골목 안에도 허름한 별미집이 있다. 한일생태전문점(061-243-9040). 차림표엔 생태탕(1인 9000원), 청국장(7000원), 생태청국장(1인 9000원) 세 가지가 있다. 열에 아홉은 생태청국장을 주문한다. 집에서 직접 띄운 청국장을 쓰고, 조미료는 안 쓴다. 육수는 무·대파·양파·디포리(밴댕이)·다시마 등을 우려 만든다. 점심엔 예약 필수.

통영→ 제철 맞은 생굴과 맛의 보물창고 서호시장

'남자는 여자를 위해! 여자는 남자를 위해!' 통영굴수협이 내세운 표어다. 남녀 몸에 두루 좋고, 맛은 더 좋은 굴이 제철을 맞았다. "우리나라는 세계 2위의 굴 생산국이죠. 전국 굴 생산량의 70%는 통영수협을 통해 거래되고요." 통영굴수협 경매사 김성현(42)씨는 "통영수협 어판장에서 하루 12억원어치의 양식 굴이 거래된다"고 했다. 통영·고성·거제 연안의 수하식 양식 굴은 잔잔한 내해 물속에서 번식한 풍부한 플랑크톤을 먹고 자라, 알이 굵고 향이 진한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통영 음식문화에 밝은 박정욱(통영 여행기획가)씨는 "굴은 두말 필요 없이 제철에 생굴로 먹어야 제맛"이라고 말했다. "익히고 튀긴 굴 요리는 장기 보관이 어려워서 나온 것"이라는 주장이다. 통영에서 굴을 비롯한 제철 해산물을 싼값에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곳은 어딜까? 박씨는 '다찌'집을 꼽았다. '다찌'는 '서서 마신다'는 뜻의 일본말 '다치노미'에서 유래한 선술집. 통영에선 술값만 내면 푸짐한 안주가 그냥 따라 나오는 술집 문화의 한 양태로 자리잡았다. 대개 아침에 준비한 재료가 떨어지면 문을 닫고, 남으면 막판 손님상에 다 올린다고 한다. 다음날 신선한 재료를 새로 장만하기 위해서다.

시락국·졸복국 한 그릇에 웬만한 숙취는 말끔

박씨가 추천한 '대추나무 다찌'는 안팎이 두루 허름한 작은 주점. 하지만 "통영의 맛깔스런 제철 해산물을 골고루 가감없이 맛볼 수 있는 곳"이었다. 기본인 소주 3병(3만원)을 주문하자 얼음을 채운 플라스틱 들통에 담긴 술병이 먼저 나왔다. 미역·파래 무침 등 기본 밑반찬들이 깔리고, 잔질을 하는 동안 볼락·전갱이 구이, 곰장어 수육, 싱싱한 굴과 멍게·해삼, 전복·개불·방어 회, 쥐치 구이와 말린 꼴뚜기 등이 차례로 상에 올랐다. 통영 시내엔 이런 선술집이 10집 가까이 된다. 항남동 대추나무 다찌 (055)641-3877, 정량동 강변실비 다찌(기본 소주 3병 5만원) (055)641-3225.

선술집들의 신선한 해산물 공급원은 '아침시장'(저녁시장은 중앙시장)인 서호시장이다. 시장의 식당들은 새벽 3~4시면 영업을 시작한다. 서호시장은 '통영 맛집의 보물창고'라 불린다. 수십년씩 한자리에서 통영의 향토 음식을 팔아온 식당들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시락국(시래깃국)이다.(봄엔 물론 도다리쑥국이 먼저다.) 말린 시래기에 된장을 풀고 장어 머리나 디포리 등을 넣어 푹 고아낸 해장국이다. 시장 안에 원조시락국, 가마솥시락국, 통영시락국 등 5~6집이 있다.

통영 술꾼들이 사랑하는 해장국은 뭐니뭐니 해도 졸복국이다. 통통한 졸복 네댓마리에 콩나물을 듬뿍 넣어 맑게 끓인 졸복국 한 그릇에 어지간한 숙취는 말끔하게 가신다. 만성복집·분소식당·풍만복국·부일식당 등이 유명하다. 시장의 이름난 먹을거리 중에 팥밀장국도 있다. 팥죽에 밀가루 반죽을 길게 잘라 넣은 일종의 팥수제비다. 팥밀장국과 호박죽·녹두죽 등을 내는 새터죽집, 뻬때기(말린 고구마)죽과 우동에 짜장을 얹어주는 '우짜'로 이름난 우짜집 등에 손님이 많다.

목포·통영=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목포·통영 여행쪽지

유적 탐방 맛만큼 만만찮아

목포 가는 길 |

수도권에서 서해안고속도로를 이용해 끝까지 가거나, 중부권에서 호남고속도로 타고 가다 광주에서 광주~무안 고속도로~서해안고속도로 이용해 목포까지 간다. 목포여객선터미널과 목포수협은 차로 2~3분 거리.

목포 근대문화유산 탐방 |

목포는 근대문화유산의 도시다. 특히 일제강점기 흔적들이 짙게 남아 있다. 일제의 수탈을 알려주는 옛 건물들과 골목을 걸어서 탐방하는 여행을 해볼 만하다. 목포시 관광기획과(061-270-8430)에 연락하면, 해설사의 안내를 받을 수 있다. 무료.

통영 가는 길 |

중부권에서 대전~통영 고속도로 이용해 통영나들목에서 나간다. 통영대교 쪽으로 가다, 내항인 강구안이나 서호시장으로 간다.

통영 시티투어 |

'한국의 나폴리'로 불리는 통영은 다도해의 고장이자, 이순신 장군의 숨결이 생생한 유적도시. 항남동의 시티투어를 통해 문화유적과 섬 경치를 둘러볼 수 있다. 하루 10시간(08시40분~18시40분) 투어에 1인당 3만2000원(입장료·승선료·삭도탑승료 포함). 최소출발인원 5명. 월요일 쉼. (055)644-5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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