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문화人]돌아온 전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2011. 11. 21. 17:36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활을 잡습니다"내달 26일 9년만의 독주회

"완벽은 버렸어요. 음악 속으로 편안히 들어가려 합니다. 이제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활을 잡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63. 줄리아드 음악원 교수). 카랑카랑한 음성은 여전했지만 중간중간 목소리가 깊이 잠겼다.

한때 세계 무대를 호령했던 이 바이올린 여제는 6년 전 갑작스러운 손가락 부상으로 활을 놓은 뒤 한동안 쓰라린 시간의 연속이었다.

첫번째 아픔은 큰언니(정명소)의 죽음이다. 미국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플루트를 전공한 뒤 목사로 활동하다 지난 2007년 작고한 정명소는 형제 중 맏이였다. "땅이 꺼질 것 같은 슬픔이었어요. 일년 동안 사람들과 말도 잘 못했어요. 언니는 어머니 같은 존재였습니다. 명화 언니(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보다 세살, 저보다 일곱살 많았죠. 제가 열두살 되던 1960년 명화 언니하고 처음 미국으로 건너갔을 때가 생생해요. 2년 전 먼저 가 있던 명소언니는 그때부터 엄마처럼 우릴 챙겼어요. 언니는 믿음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제 삶에 최고의 멘토였어요."

그해 정경화는 피붙이나 다름없던 오랜 벗, 매니저도 잃었다. 1970년 데뷔 음반부터 줄곧 정경화의 녹음스튜디오를 지켰던 명 프로듀서 크리스토버 레이번이 세상을 뜬 것이다. 그리고 올해 5월 인생의 가장 큰 후원자인 어머니 이원숙 여사가 별세했다.

"차례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면서 인생에 정말 소중한 게 뭔지 명확해지더라고요. 사랑했던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뭘까, 아, 그건 내 음악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몸이 허락하는 한, 앞으로 무대에 많이 서려고 합니다."

다음 달 26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9년 만에 선보이는 바이올린 독주회는 그의 의지의 산물이다.

그는 지난해 5월 예술의전당에서 부상 후 5년 만의 내한무대를 통해 복귀 가능성을 타진했고 올여름 대관령국제음악제에서 트리오, 독주 무대를 통해 확실히 자신감을 얻었다. 독주회에 앞서 다음 달 13일엔 어머니 추모회 형식의 비공개 정트리오(첼로 정명화, 피아노 정명훈) 무대도 갖는다. 내년 1월엔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협연에 나서는 등 2013년까지 이미 여러 스케줄을 잡았다. 바흐 무반주 소나타, 모차르트 소나타 전곡 녹음도 유니버설뮤직과 추진 중이다.

"부상한 손가락은 완쾌된 듯한데 지금은 그 옆 손가락이 문제예요. 뭘 잘못 만져서 삐끗했어요. 그래도 연주엔 지장이 없을 겁니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상황에선 아무 일도 감행하지 않았을 텐데, 지금은 다르다. "그땐 완벽주의자였으니까요. 연주 중에 한 음이라도 틀리면 거의 히스테리를 일으킬 정도였어요. 연습 중에 실수를 한 날이면 집에 가서 스무시간 동안 같은 곡을 계속 연습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렇지 않아요. 음이 틀렸다고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습니다. 죽어라 매달리지 않아요. 그럴 수도 없고요. 기력이 안 되니까. 하하. 그러니 마음이 비워져요. 여유가 더 생겨요. 아무렇지 않습니다."

정경화는 자신의 인생을 3막으로 나눈다. 1막은 '현의 마녀'로 불리며 날 센 연주로 무대를 휘저었던 20대 시기다. 고국은 전쟁의 상흔을 딛고 경제개발에 여념이 없던 시절, 정경화는 게오르그 솔티, 사이먼 래틀, 클라우디오 아바도, 샤를 뒤투아, 리카르도 무티 등 거장 지휘자들의 무대에 올라 코리아 깃발을 드날렸다. 2막은 손을 벨 듯한 예리함으로 무장했던 연주 기풍이 서서히 부드러워지던 시기다. 1984년 서른 여섯 나이로 결혼하면서 그의 연주기법에도 변화가 일었다. 이 무렵 그는 터전을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겼지만 여전히 왕성한 연주력을 과시했다. 3막은 손가락 부상을 딛고 5년의 공백을 끝으로 다시 무대에 오르고 있는 지금이다.

"20대에 이탈리아 어느 미술관에서 티치아노의 그림을 본 적이 있어요. 젊었을 때부터 말년까지 그린 그림을 순서대로 보고 있었는데 맨 마지막 작품 앞에서 숨이 턱 막혔던 기억이 납니다. 예술이 무르익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내 바이올린 색채도 저렇게 변할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음악가들의 곡도 말년의 작품이 또 다릅니다. 브람스의 마지막 소나타를 켜고 있으면 브람스만의 깊은 가을이 가슴을 저며와요. 젊었을 때 아무리 내고 싶어도 못 내는 소리가 있어요. 나이가 드니 그 음이 절로 나오네요. 예술은 정말 한도 끝도 없이 길구나 그런 생각도 합니다."

독주회 무대는 그가 사랑했던 이들을 추억하는 곡으로 꾸민다.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 중 유일한 단조인 21번 마단조, 브람스 특유의 애수가 느껴지는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1번,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 가장조 네 곡이다. 모차르트가 1778년 어머니를 잃은 직후 작곡한 21번 소나타는 곡 전반에 그리움이 물씬 풍긴다. 브람스가 40대 중반에 작곡한 소나타 1번은 어머니 이원숙 여사가 생전 가장 좋아했던 곡이다.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는 아버지(1980년 작고)가 정경화의 연주로 마지막 들었던 곡이다. 반주는 올여름 대관령국제음악제에서 호흡을 맞췄던 피아니스트 케빈 커너가 맡는다.

깜짝 연주도 있다. 큰언니 정명소의 손주인 피아니스트 다니엘 킴이 정경화의 연주 중간 무대에 올라 리스트의 '탄식'을 들려준다.

/jins@fnnews.com 최진숙기자

▶ 결혼정보업체 여성 회원 등급표 들여다보니..

▶ '땀 씻으려다 땀 빼겠네' 몸짱 샤워기 화제

▶ [단독] 중국기업 '삼성 AMOLED' 기술 유출 시도

▶ 안쓰는 신용카드 해지할 때 알아두자

▶ 정두언 "강용석, 개그맨 고소는 한나라에 악재"

ⓒ 파이낸셜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First-Class경제신문 파이낸셜뉴스 구독신청하기]

Copyright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