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노'의 부활 , 한때 '폐족' 신세서 정치권 중심으로

장은교 기자 2011. 11. 11.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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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지방자치·야권통합에 빠짐없이 등장

방송인 김미화씨(47)는 자신을 '친노(親盧)좌파'로 표현한 한 인터넷 언론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해 최근 승소했다. '친노'나 '좌파'라고 표현한 것을 불법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각종 친노좌파 행각 속속 드러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허위사실을 보도하며 김씨를 특정 이미지로 몰고 갔다는 점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스스로 밝혔듯 김씨는 친노가 아니지만, 김씨가 겪은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한국 사회에서 친노가 어떤 범주로 해석되고, 풍파에 노출되는지 엿볼 수 있다.

유명 개그맨으로 봉사활동에 앞장서온 그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행사를 진행하고 참여정부 때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을 맡았다는 점만으로 '친노 방송인'으로 낙인찍힌 것이다. '친노=좌파'라거나 '친노=반미'라고 할 수 없음에도 한동안 친노라는 이름은 보수진영의 공격 구호가 됐다.

2007년 대선 패배 직후 안희정 충남지사(46)는 '폐족'이라는 말로 친노의 상황을 표현했다. 정권을 잃고, 민생의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진보진영의 위기를 가져온 친노가 심판대에 세워진 것이다.

4년여가 흐른 지금, 친노가 정치의 중심으로 복귀했다. 이해찬 전 총리(59)와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58)은 야권통합의 축인 '혁신과 통합'을 이끌고 있다. 국민의명령 문성근 대표(58)는 1년 넘게 전국을 돌며 18만명이 넘는 회원을 모아 야권통합 시민운동에 동력을 보탰다.

김두관 경남지사(52)와 안희정 지사는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 당선돼 꿈틀거리던 친노 부활의 전주를 울렸다. 이광재 전 강원지사(46)는 대법원 판결로 직을 상실하긴 했으나, '재판 중 당선'이라는 드문 승리 뒤 최문순 지사(55)까지 당선시키며 힘을 보여줬다. 한명숙 전 총리(67)도 지난해 검찰 수사 역풍을 딛고 6·2 서울시장 선거에서 0.6%포인트 차로 오세훈 전 시장(50)을 따라붙고, 최근 별건 재판까지 무죄 판결을 받아 정치적 족쇄가 풀렸다.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52)는 지난 4·27 지방선거 김해을에서 패배했으나, 진보·야권 통합의 보폭을 키워가고 있다.

이들은 차기 대선주자, 야권 통합정당의 당권주자로 거론된다. 중앙정치부터 지방자치, 통합까지 친노를 빼면 얘기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왜일까. 먼저 핵심 지지층이 있는 친노세력의 '절치부심'이 꼽힌다. 열린우리당이 간판을 내리고 정권까지 내주면서, 친노는 소수만 남았다. 친노에서 비노, 반노로 돌아선 사람들이 많아졌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친노의 족보, 바닥이 드러난 것이다. 남은 이들은 절치부심하며 훗날을 도모했다.

유시민 대표는 최근 팟캐스트 < 나는 꼼수다 > 에 출연해 "이번 판(지난 대선)은 넘어가는 판이니 죽더라도 우리의 가치를 들고 싸우다 멋있게 죽자. 시간이 지나면 우리를 알아줄 날이 올 것"이라고 당시 사람들을 설득했다고 말했다.

한 전 총리·안 충남지사 등은 민주당에 남고, 이 전 총리는 당 밖에서 활동하고, 유 대표는 창당하면서 갈라졌으나 저마다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반전을 모색한 셈이다.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그야말로 '친노 복권'의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대중은 '대통령 노무현' '인간 노무현'이 상징하는 가치를 그리워하게 됐고 친노는 그리움을 달래줄 유일한 대안처럼 떠올랐다. 집권 당시 진보진영으로부터 거센 비판에 직면했던 노 전 대통령의 정책과 행보까지 재조명돼 친노의 운신 폭은 더 넓어졌다.

노 전 대통령 사후 설립된 노무현재단에 월 1만원 이상의 회비를 내는 후원회원은 3만5000명을 넘었다. 홈페이지 회원은 20만명을 돌파한 지 오래다.

특히 부산·경남 지역에서 친노의 약진은 주목할 만하다. 야권이 내년 부산·경남 지역 총선에서 10석 이상을 목표로 삼은 것은 봉하마을과 문재인 이사장을 중심으로 한 친노의 힘에 기대를 걸고 있는 측면이 크다.

1980년대 부산 변호사 시절부터 노 전 대통령과 동행해온 문 이사장의 행보는 커지고 있고 책임과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한동안 독주에 가깝게 유력 대선주자로 거론돼온 유시민 대표가 주춤하면서, 오히려 세력으로서 친노의 다양한 가능성이 발견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당정치의 위기도 친노가 다시 주목받게 된 배경 중 하나다. 기성정당의 중심인물들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친노는 중앙정치에서 한동안 떨어져 있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정치와 인물을 원하는 국민의 주목을 받게 됐다. 정권교체의 가장 큰 변곡점으로 꼽힌 박원순 서울시장(55) 당선 과정에서도 친노는 지원군의 주요한 축이 됐다.

복권과 함께 견제도 돌아왔다. 민주당 정통 지지층에서는 '반성 없는 친노'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정권을 한나라당에 내어준 집권세력이 반성 없이 노 전 대통령 서거와 반한나라·반MB 정서를 등에 업고 '너무 쉽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처리를 두고 민주당 내에 이견이 계속되는 것은 참여정부 때 시작된 일이라는 원죄에서 비롯된다.

통합이 '더 큰 민주당'을 위한 과정이라고 설득하지만 친노가 중심이 된 외부세력이 민주당을 흔들고 있다는 거부감도 있다. 정치적 경쟁과 외연 확대가 여전히 친노에게 주어진 숙제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친노는 지난 5월 노 전 대통령 서거 2주기를 전후해 "더 이상 친노는 없다"는 말로 변화를 예고했다. 이제 친노는 노 전 대통령과의 친소관계가 아니라 그의 가치를 계승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들의 당면과제도 친노가 계승하는 가치가 2013년 이후 한국 정치·사회에 어떤 변화와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지 지금부터 증명해야 한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 장은교 기자 indi@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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