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작품 그 도시] 영화 '미스틱 리버'_ 보스턴

2011. 10. 22.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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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공포란 내면의 괴물과 만나는 것이다

'살인자들의 섬'이 영화화됐을 때, 나는 데니스 루헤인의 동명 소설을 한 번 더 읽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그것이 마틴 스콜세지라는 거장 감독에 의해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실망했다. 같은 작가의 '미스틱 리버'가 영화화됐다는 걸 알았을 때 역시 큰 기대를 갖지 않고 영화를 봤다. 이것이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거장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걸 아는 게 영화에 대한 기대를 더 높여주진 못했다. 내가 보기에 '데니스 루헤인'이 그리는 내면의 트라우마를 영화로 시각화시키는 건 거의 기적에 가까워보였다.

지미, 데이브, 숀은 미국 보스턴 외곽의 한 동네에서 함께 자란 친구들이다. 동네에서 하키를 치며 마르지 않은 시멘트 위에 각자의 이름을 쓰는 장난을 치던 친구들. 그러나 마지막으로 '데이브'의 이름이 반쯤 쓰여졌을 때 소년들은 낯선 남자의 모습을 목격한다. 경찰을 가장한 이 남자는 데이브를 차에 태워 유괴하고 며칠 동안 그를 성폭행한다. 사건 이후, 이들은 서로를 멀리한 채 각자의 삶을 살게 되고 25년 뒤, 지미의 열아홉 살 난 딸 케이티의 살인사건으로 뜻하지 않게 재회하게 된다.

형사가 된 숀은 케이티의 살인사건을 수사하게 되고, 강도사건으로 2년을 복역한 뒤 식료품점을 운영하던 지미는 경찰보다 기필코 딸을 죽인 살인자를 먼저 찾아 복수하겠다고 다짐한다. 살인사건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면서 뜻밖에도 케이티가 죽던 날, 클럽에서 그녀를 마지막으로 목격한 데이브가 용의자로 지목되고, 비밀처럼 봉인되어 있던 데이브의 과거가 드러나며 이들 세 남자의 일상을 서서히 파괴하기 시작한다.

영화 속 보스턴은 살인사건쯤은 대수롭지 않게 일어날 것 같은 불길한 범죄의 냄새와 기운이 가득하다. 만약 '미스틱 리버'로 보스턴을 처음 만난 사람이라면 그곳이 나다니엘 호손이나 헨리 롱펠로, 헨리 데이빗 소로 같은 예술가들의 도시이며 '하버드 대학'이 있는 학문의 도시라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미스틱 리버는 '과거가 당신의 미래를 지배할 것이다'란 분명한 메시지를 남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더 정확한 질문은 이런 것이다. 당신의 과거가 당신 이외의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번져나가는가? 어릴 적 단짝이었던 세 사람의 삶은 데이브가 당한 성폭행사건 이후 왜곡되기 시작한다. 지미는 범죄자가 되어 감방에 들어가게 되고, 데이브는 평생 어두운 상처를 안고 살아가다 살해범으로 지목당하며, 숀은 가출한 아내와 대화가 아닌 독백으로 일관된 소통구조에 매몰되어 있다.

"그때 데이브가 아니라 우리가 그 차를 탔더라면 어땠을까? 나는 십중팔구 미쳤을 테고, 결혼도 못했을 거고, 아이도 없었을 거고, 그럼 내 딸이 죽지도 않았을 텐데."

지미의 말처럼 데이브가 납치된 것은 그저 우연이었다. 나흘 동안 더러운 지하실에 갇혀 성폭행을 당하고 도망 나온 것은 데이브였지만 남아 있던 두 친구에게도 성폭행의 짐승 같은 낙인은 고스란히 찍혔다. 그들에게 '죄책감'이라는 특별한 징벌이 가해진 것이다. 그리고 이 죄책감이 이 세 사람의 삶을 흔들어놓은 방식이란 잔인하고, 다양하다.

세 친구에게 벌어진 비극의 계보를 서서히 좇다 보면 거기에 어린 데이브가 어린 시절 아직 굳지 않은 시멘트 위에 쓰다만 'DA'라는, 채 완성되지 않은 자기 이름의 스펠링이 있다. 마무리되지 못한 이름은 그의 삶에 거대한 공백을 남긴 채 시체가 되어 강물 속에 잠겨버린다. 이런 영화를 보고 있으면, 삶이라는 거대한 강물 속에 꼼짝없이 수장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 때문에 간담이 서늘하다. 개인의 상처가 관계 안에서 어떤 식으로 확대되고 피어나가는지 그 운동방향을 종잡을 수 없어 불안하다.

공포란 눈에 보이는 괴물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내 안의 진짜 괴물과 만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미스틱 리버의 공포와 폭력은 외면과 내면 모두의 괴물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더욱 끔찍하다. 데이브가 수장된 미스틱 강의 표면은 얼마나 서정적인가. 마지막 카니발 장면엔 어둠이 아닌 얼마나 많은 햇볕이 스며들었는가. 아이들은 웃고 있고, 아빠와 엄마라는 이름의 가족들은 그 아이들에게 환하게 웃으며 열렬히 손을 흔든다.

수직 하강하는 카메라는 미스틱 강의 유장함과 아름다움을 서사적으로 훑어 내려간다. 아무것도 모를 때 삶은 아름다울지도 모른다. 삶을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자신의 삶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러므로 죽을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하는 버지니아 울프의 유서가 자꾸 떠오르는 건 영화의 잔상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데니스 루헤인을 좋아하는 나 같은 열혈 팬은 언제나 그가 미칠듯한 영감에 사로잡혀 '스티븐 킹' 만큼 많은 소설들을 써주길 바랐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오던 밤, 한 가지 간절한 소망 하나가 더 생겼다. 1930년생인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서 더 많은 영화를 만들어 주기를 말이다. 다행히 올해 여든둘이 된 이스트우드는 여전히 건재하고 의욕에 넘쳐, 엄청난 영화들을 거침없이 만들어내고 있다.

●미스틱 리버: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2003년 작품. 숀 펜, 케빈 베이컨, 팀 로빈스, 로렌스 피쉬번 같은 당대 최고의 연기파 배우들이 열연했다. 미국의 장르 작가 '데니스 루헤인'의 원작이다. 작가 닉 혼비는 '런던 스타일의 책읽기'에서 데니스 루헤인의 이 작품을 획기적인 스릴러라 추켜세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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