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불자·무슬림 '펜들힐 워십'서 영적체험 나눠

2011. 10. 12.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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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미국의 동양명상수행 현장을 가다 ②

퀘이커 공동체, 영성을 도자기·수예로 표현

간디 등에 영향 준 '월든'의 숲선 영적 순례

미국 보스턴은 하버드대와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인근 뉴헤이번의 예일대까지 명문대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국내에서 밀리언셀러가 된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를 쓴 미국인 현각 스님도 하버드대 출신이다. 최근 숨진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대학을 중퇴하고 인도로 영적 순례를 다녀온 뒤 일본 선불교 선사의 주례로 결혼을 하고, 현각 스님이 숭산 선사를 만나 출가했다고 해서, 미국의 지식인들이 동양의 명상수행을 환호한다고 보는 것은 환상이다. 하버드대는 목사가 설립해 오랫동안 주요 목사 양성소였던 곳이다. 미국으로 건너간 동양의 영적지도자들 대부분이 미국에서 결국 정착하지 못하고 겉돌다 마는 것은 착각이나 영적 우월주의의 당연한 결말인지 모른다.

미국에서 동양적 영성수행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62)를 빼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보스턴 인근엔 그가 <월든>을 쓴 콩코드숲이 나온다. 그가 졸업한 하버드대에서 차로 30~40분이면 도착하는 곳이다.

숲은 울창하고, 호수는 남태평양의 해변처럼 백사장과 어울려 푸른빛을 띠고 있다. 한국과 별 차이가 없는 가을 날씨인데도 100명가량이 맑은 햇살 속에서 수영을 하거나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호수에서 100여m 떨어진 숲엔 소로가 150여년 전 홀로 산 한평 남짓의 오두막이 있었다. 철학자이자 시인인 랠프 월도 에머슨의 집에 머물면서 콩고드 모임에 참여하며 생태 영성적 삶을 동경했던 소로는 이곳에 옮겨와 직접 밭을 갈고 먹을 것을 장만하는 은둔 수도자 같은 삶을 통해 노동과 자연 관찰이라는 극도로 단순한 삶을 실험했다. 산업화에 따른 물질문명주의와 소비주의를 정면으로 거스르며 그가 남긴 <월든>과 <시민의 반항> 등은 '또 하나의 성서'가 되었다. 발에 차일 만큼 신과 성자가 많다는 인도에서도 정신문명의 상징으로 추앙받는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저항운동에 실제 가장 큰 영향을 미쳤고,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와 미국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의 정신적 바탕이 된 것도 바로 소로의 저서였다.

"영민하고 건전한 정신을 지닌 사람들은 언젠가 태양이 환히 떠오른다는 걸 기억한다. 이제라도 근거 없는 편견을 포기해도 늦지 않다. 오래된 사고방식이나 행동방식이라도 증명되지 않은 것이면 무작정 신뢰할 필요가 없다. 오늘 모두가 진리라고 앵무새처럼 떠벌리거나 말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내일이면 잘못된 것으로 판명날 수 있다."

중세 암흑의 종교적 맹신을 이어가는 근본주의의 빙하에 번개를 내리쳐 정신세계에 폭풍을 몰아왔기에 월든 호수는 서양인뿐 아니라 동양인들에게도 영적 순례지로 여겨지는 성지가 되었다. 소로의 책과 기념품들을 판매하는 가게에서 사 입은 티셔츠에 쓰여진 소로의 글귀가 어딘지 익숙하다.

"만약 한 사람이 친구들과 보조를 맞추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가 혼자서 다른 드럼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듣고 있는 음악에 발을 맞추도록 내버려두라. 그가 보조를 맞추지 못하거나 더 멀어지게 될지라도."

스티브 잡스의 '다르게 생각하고, 제 길을 가게 하라'는 선(禪)적인 메시지는 150년 전 어록의 되풀이다. 소로가 명상했을 호수에서 일곱살 여자아이 메리 딘은 두 남동생과 함께 피라미들을 잡느라 여념이 없다. 젖먹이 아이를 안은 채 평화롭게 노는 세 아이를 지켜보던 메리의 어머니는 아이들과 자주 이곳을 찾아 주말을 보낸다고 했다. 이날은 그의 어머니와 아주머니까지 온 대가족이 이곳을 찾았다. 소로를 사랑한다는 그는 "우리에겐 명상보다 이렇게 여유를 즐기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미소지었다.

가부좌를 튼 어느 명상수행자보다도 평화로운 가족을 뒤로하고 향한 곳은 필라델피아의 펜들힐이었다. 무교회주의자인 퀘이커들의 공동체다. 공원 같은 숲 속에 띄엄띄엄 단층 건물들이 있는 펜들힐은 매일 아침 30분간의 침묵예배로 시작된다. 워십이라는 예배는 예배당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침묵의 고요 속에서 영적 체험을 한 이들이 일어나 증언을 하고, 증언이 끝나면 다시 침묵하는 식이다. 워십엔 가톨릭, 불자, 무슬림, 무신론자 등도 손쉽게 참석해 영적 체험을 나누고 있다.

한 건물엔 공동체 거주자와 방문자들이 24시간 어느 때고 자신의 영적 체험을 도자기와 그림, 수예 등 예술로 표현할 수 있는 창작룸이 있었다. 그 뒤편에선 공동체 유기농을 담당하는 조 페이스가 밭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식물엔 고유한 에너지가 있다"며, "식물과 교감하다 보면 이를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그가 동양적 기(氣)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는 "가공식품이 좋지 않은 것도 그 식물이 가진 기를 손상시키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침묵과 고요한 영성이 흐르는 퀘이커공동체는 간디와 함석헌이 머물러 많은 영향을 받았던 곳이다. 동양의 수행자들이 수행의 역사가 일천하다고 여기기 십상인 미국에도 오히려 동양의 영적 지도자들에게까지 깊은 영향을 끼친 영성의 토양이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보스턴·필라델피아/글·사진 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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