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브랜드를 말한다] 네파(NEPA)_유럽에서 브랜드 숙성, 한국에서 초고속 성장

글·박정원 부장대우 2011. 10. 4.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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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즐기는 젊고 강한 브랜드..5년 만에 매출 50배 올려

↑ [월간산]프랑스 산악전문지 < 그림퍼 > 가 매년 평가하는 암벽화 평가에서 세계적인 브랜드를 제치고 네파 암벽화가 최고 점수를 받았다. 중간 줄 가운데 부분에 네파란 이름이 보인다.

아웃도어 브랜드 업체 중에 가장 후발주자이면서 가장 빠른 성장을 보인 기업이 평안L & C(앨엔씨·Lifestyle & Culture)다.평안L & C는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1967년부터 캐주얼웨어와 독립문 메리야스를 생산 판매하던 44년의 역사를 가진 기업이다.

이 기업이 아웃도어 브랜드인 '네파(NEPA ·Nature Ecology Protection Area)'를 인수한 뒤 매년 폭발적인 성장세를 거듭하고 있다. 2006년 인수 첫 해 36억 원에 불과하던 아웃도어 매출이 매년 수백 % 이상의 성장을 기록, 2010년에는 급기야 인수 5년 만에 무려 50배에 달하는 1,550억 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올해는 국내 아웃도어 업계 서열 5위권 진입을 노리며 매출 3,000억 원 달성을 목표로 맹렬히 달리고 있다.

정말 '괄목상대'하게 하는 아웃도어 브랜드다. 평안L & C는 모르지만 네파는 아는, 즉 네파를 통해 모기업인 평안L & C를 알게 되는 '브랜드파워'를 가진 효자 브랜드가 됐다.

지난 7월에는 '알피니즘의 메카' 프랑스 샤모니에 국내 브랜드로는 처음으로 매장을 내면서 세계 유수의 아웃도어 브랜드들에 본격 도전장까지 던진 상태다. 어깨를 한번 겨뤄보자며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굴에 들어간' 격이다. 성공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대단한 기세가 아닐 수 없다. 물론 김형섭 대표는 "유럽 시장조사를 위해서 개점한 것"이라고 했지만 그 이면에는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하기 위한 의지가 숨어 있다고 할 것이다.

'네파'란 브랜드는 원래 1996년 3월 이탈리아인 조르지오 베르톨리(Giorgio Bertoli)에 의해 이탈리아 베르가모에서 암벽화 전문회사로 법인 등록한 데서 역사가 시작된다. 대표는 베르톨리가 맡았고, '네파(NEPA)'란 이름은 한국인 조정대씨가 만들었다.

조씨와 베르톨리의 인연은 1993년 미국 유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뉴욕 세인존스대학 포스터닥터(Post-doctoral research·박사 후 과정)에 입학하면서 두 사람은 처음 만났다. 조씨는 정치학, 베르톨리는 디자인이 전공이었지만 이국생활에 대한 향수를 이국인끼리 만나며 서로 해소했다.

조씨의 당시 관심은 캠핑과 자연이었다. 둘의 대화는 자연스레 아웃도어 분야로 흘러갔고, 급기야 "훌륭한 암벽화 브랜드를 만들어 크게 키워보자"는 데까지 의기투합했다. 베르톨리는 브랜드 이름을 공룡을 연상케 하는 'DINO(디노)'로 하려고 했다. 조씨도 나름대로 브랜드 이름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 고민하다 'NEPA'를 떠올렸다. 당시 유럽에서는 자연생태보호에 많은 관심을 기울일 시기여서 그 분위기와 맞아떨어졌다.

베르톨리도 흔쾌히 'NEPA'를 받아들였다. 네파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됐다.이탈리아 법인 대표는 베르톨리가 맡으면서 상품기획과 총괄운영까지 했다. 조씨는 생산과 영업, 판매를 총괄하면서 한국의 법인 대표로 동시에 등록했다. 한국에 법인 등록을 한 것은 조씨가 암벽화 생산과 판매를 위해 부산의 공장과 전담계약을 맺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인 베르톨리와 조정대씨 합작 설립

초기 제품개발은 베르톨리와 스페인 디자이너 알바로 카르페나(Alvaro Carpena)가 전담했다.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신규 브랜드 디자인 지원금을 받아 개발비용의 70%를 충당했다.

드디어 1997년 암벽화를 포함한 15종의 등산화가 첫 출시됐다. 시장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독특한 디자인과 우수한 품질을 가진 제품으로 평가를 받았다. 주로 독일과 미국의 아웃도어쇼를 중심으로 판로를 개척했다. 동시에, 이탈리아의 중저가 브랜드인 '안데(ANDE)'에 마케팅을 맡겼다. 제품은 나쁘지 않았지만 판로 개척은 기대에 못 미쳤다. 계속된 투자에도 수익이 생기지 않자 베르톨리와 의견 충돌이 생겼고, 결국 베르톨리는 본업인 가구 디자이너로 돌아갔다. 이에 조정대씨가 이탈리아 네파까지 맡기에 이르렀다.

↑ [월간산]네파 장비를 지원받은 그린란드 종단 원정대가 만년설 위에 텐트를 치고 있다.

조씨가 이탈리아와 한국 법인대표를 맡은 후 본인의 판단 하에서 직접 생산과 판매를 확대해 나갔다. 독일과 미국의 아웃도어쇼에서 만나는 업체들과 직접 계약을 맺기도 하고, 판매 에이전트 계약도 체결했다. 1998년에 스웨덴 JKK International(제이케이케이 인터내셔널)사와 터키 AYAN(에이얀)사와 판매 에이전트 계약을 체결했고, 그 해 9월엔 독일의 FELDTMANN KG(펠트만 케이지)사와 독점판매권도 계약했다. 1999년엔 덴마크 BBC(비비씨)사, 20001년엔 호주 MOUNTAIN DESIGN(마운틴 디자인)사, 2002년엔 캐나다·스위스·이탈리아·독일 등의 아웃도어 업체와 독점판매권 계약도 성사시켰다.

순풍에 돛 단 듯 판로가 확대됐지만 네파는 항상 자금난에 허덕였다. 그러다 2005년 독일 아웃도어 전시회에 시장조사차 방문한 평안L & C 임원이 네파의 발전 가능성에 이끌려 조씨와 투자를 논의하게 된다. 서로 의견 조정이 끝난 2005년 하반기 평안L & C는 조정대씨가 보유하고 있던 이탈리아 네파 지분 51%를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이로써 이탈리아 법인 '네파'가 한국의 평안L & C에 넘어오는 동시에 현재의 '네파 코리아'의 역사가 시작됐다.

이탈리아 법인은 평안L & C의 투자를 시작으로 제품개발을 강화하고 2005년 연말 마모트(Marmot) 출신의 전문 클라이머 겸 영업맨인 엠마누엘 펠리차리를 영입, 공격적인 영업을 전개했다.

공격적 투자로 제품 디자인과 품질을 더욱 세련되게 만든 결과, 2006년 프랑스 산악전문지 < 그림퍼(Grimper) > 가 매년 실시하는 세계 유수 브랜드의 암벽화 비교 분석에서 유연성(Flexion)과 뒤틀림 방지(Torsion), 가격대비 품질 등 모든 부문에서 최고 평점을 받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당시 클라이머들 사이에 최고의 암벽화로 꼽히는 '라 스포르티바'나 '5.10'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네파'란 이름은 조정대씨가 지어

그 여세를 몰아 암벽화는 독일·프랑스·이탈리아·호주·덴마크·일본 등 세계 각국에 유통망을 구축하게 됐고, 프랑스와 독일에서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이를테면 네파는 유럽에서 나름의 브랜드 숙성기간을 거쳤던 것이다.

해외에서의 성장은 자연스레 국내로 연결됐다. 김형섭 대표는 "네파의 성장은 전부 직원들의 노력 덕분"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김 대표의 칭찬을 아는지 직원들도 네파 코리아의 역사가 일천한 것과 비례해 젊고 생동감 넘치게 일하고 있다. 암벽화에 이어 일반 등산화, 재킷 등 의류에까지 신선한 젊은 감각을 입혀 갔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이를 그대로 제품에 반영하는 디자인과 원색 등산복은 '아웃도어룩'이라는 패션용어까지 등장시키기에 이르렀고, 많은 등산객들의 호평을 받으며 시장을 점유해 왔다.

이들의 젊고 신선한 감각은 '선(先)기획 선(先)생산'이라는 다소 모험인 듯한 운용으로 이어졌으나 성장 시장과 맞물려 폭발적인 상승폭을 이끄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비수기에 다가올 시장의 트렌드와 패션을 정확히 분석, 미리 생산해 놓으면 성수기 물량공급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점주와 산악구조대·전문산악인 등으로 이루어진 자문그룹이나 일반인들의 제품에 대한 반응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그대로 제품에 반영하는 형식을 취했다.

예를 들어 혹한의 날씨에 원정대가 등반을 할 때, 솜으로 만든 재킷만으로 추위를 이기기엔 한계가 있다며 '뭐 더 좋은 옷이 없을까'라는 아이디어를 누군가 떠올리면 논의를 거듭한 끝에 결국 자체적으로 열을 내는 '발열패딩'을 만들자는 생각까지 이끌어낸다. 물론 제품생산으로 연결시킨다. 이 제품은 올 가을과 겨울 신상품으로 출시될 예정이며, 남극 세종기지 연구원들에게도 지원될 것이라고 한다.

아토피 환자들이 부담 없이 입을 수 있는 옷이 없을까라는 아이디어를 누군가 냈을 때도 마찬가지. 천연 양모로부터 실을 뽑아내면 아토피 환자들도 전혀 문제없이 입을 수 있을 것이라며 제품생산으로 연결시켰다. 네파는 이렇게 즐겁게 일하다 떠오르는 아이디어와 실제 대리점주와 산악인들이 내는 아이디어를 고스란히 제품에 반영해서 성공시키고 있다. 초경량 방수·방풍재킷도 이렇게 나왔다.

↑ [월간산]네파가 매년 큰 액수를 지원하는 서울시연맹주최 네파컵익스트림대회. 한국 최고의 산악인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눈과 얼음에서 미끄러지지 않는 등산화가 없을까', '물에서 미끄러지지 않는 신발이 없을까'라는 아이디어에서 아이스논슬립(Ice-Nonslip) 등산화와 아쿠아논슬립(Aqua-Nonslip) 신발을 생산해 냈다. 지금은 등산객과 산악인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권성기 용품부문장은 "아쿠아논슬립 신발은 많은 관계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워터파크의 물미끄럼틀에서 역으로 올라가는 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쳐 호평을 받았다"고 뛰어난 기능을 자랑했다. 홍인숙 사업부장은 "네파는 젊은 만큼 결재라인도 짧아 업무 추진속도가 매우 빠르다"며 "요즘과 같이 종잡을 수 없는 날씨와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에 대응하기 위해 전체 물량 중에 '선기획 선생산'으로 80% 정도 공급하고 나머지 20%는 '스팟(spot)생산, 즉 80대 20으로 나눠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공급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선기획 선생산'이나 '스팟생산'은 위험부담을 안고 시장상황을 주도면밀하게 관찰해야 한다는 전제하에서 가능한 생산방식이다. 그리고 예측한 시장이 현실과 맞아떨어져야 성장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네파는 현재까지 잘 맞물려 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네파의 제품 피드백(feedback) 기능 못지않게 마케팅 전략도 매출성장에 한몫했다. 다른 아웃도어 기업들이 외국인을 모델로 광고할 때 네파는 처음으로 국내 연예인을 기용,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며 인지도를 크게 높이는 데 성공했다. 이후 국내 연예인들이 다른 아웃도어 업체의 광고모델로 잇달아 등장하고 있다.

이탈리아 법인을 2006년 평안L & C가 지분 51% 인수

홍인숙 사업부장은 "네파는 요즘 젊은 사람들의 감각에 맞추려는 사장님의 방침처럼 회사 분위기를 비즈니스 관계보다는 가족 같은 관계로 이뤄져 있다"며 "직원들은 전부 주인의식이 대단해, 사무실 기기를 사용할 때도 이면지를 사용하는 등 자발적으로 아껴 쓰고 있다"고 강조했다. 즉 모든 직원들이 '오너마인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김형섭 대표는 "직원들 수백 명이 1박2일 합숙을 했는데, 총 비용이 270만 원밖에 나오지 않았다"며 "어떻게, 어디에 이런 직원들이 있겠느냐"고 뿌듯해했다. 직원들의 오너마인드에 대한 보답으로 김 대표는 지난해 이익의 상당부분을 직원들에게 성과급 1,000% 이상의 형식으로 지급했다. 김 대표는 "'내가 노력한 만큼 회사는 보상한다'는 원칙을 직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강조해서 말했다.

권 부문장과 홍 부장은 "사장님이 평소 직원들에게 3개의 슬로건, 오픈(open), 플래시(flash), 태도(attitude)를 늘 강조하신다"며 "이 3가지가 네파를 젊고 신선한 감각을 유지시켜 성장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공통적으로 밝혔다.

'오픈'은 아무리 신참 직원이라도 참신한 아이디어 내는 걸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분위기를 말하며, 상사가 부하직원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일은 네파에서는 상상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플래시'는 다른 회사의 제품을 따라가지 않고 항상 신선한 감각과 아이디어를 떠올려 신상품을 개발하는 것을 말한다. '태도'는 직원들이 항상 자존감과 자신감을 가지고 근무한다는 원칙을 가리킨다.

이런 원칙을 지키면서 일하는 직원과 이런 원칙을 지켜주려는 대표로 인해 권·홍 두 부장은 "직원들의 복지와 급여도 업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신했다. 김 대표도 "나는 코치일 뿐이고, 선수들이 상대방 벽을 허물고 돌파해서 골을 넣는다"며 "코치는 선수들이 돌파를 잘하고 골을 넣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만 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 [월간산]위)네파 권성기 부문장 (가운데)이 직원들에게 제품들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아래)올해 네파가 지원한 파키스탄 라톡 원정대가 캠프를 치고 있는 모습.

네파는 2011년 올해를 해외 진출 원년으로 삼았다. 지난 4월엔 미국 진출을 위해 뉴욕연락사무소를 개설하고, 7월엔 프랑스 샤모니에 첫 직영점을 열었다.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일환이다. 샤모니를 시작으로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 밀라노, 영국 런던 등 유럽의 주요 거점도시에 매장을 지속적으로 오픈할 계획이다. 우선 유럽 및 미국에 중점을 두고 시장 확대를 꾀할 계획이며, 이후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권으로 진출할 방침이다.

현재 네파는 의류, 신발, 모자, 배낭, 침낭, 버너 등 아웃도어 전 부문에서 생산하는 제품이 450여 가지나 된다. 김형섭 대표를 비롯 네파 간부들 모두 "성장 한계는 있겠지만 산이 없어지지 않는 한 아웃도어 산업은 계속된다"며 "한계를 대비하면서 사업영역을 확장해 가는 일이 네파가 할 일"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벌써부터 캠핑시장이 커지고 있는 사실을 주목하고 이미 준비작업을 끝냈다는 의미로 들렸다.

현재 캠핑시장은 날로 커지고 있다. 지난해 2,000억 시장에서 올해는 3,000억까지 성장한다는 업계의 예상이다. 네파는 현재 캠핑부분에서 매출이 100억 원대 수준으로 미미하지만 등산 부문에서 보여주었듯이 큰 폭으로 성장할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네파는 자유다'라는 광고 문구처럼 자유와 재미를 동시에 제품에 연결해 성공시키고 있는 네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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