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녀 뒤캐기..국민연금공단 직원들, 정보 무단조회 심각

2011. 9. 21.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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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대규모 개인 정보를 수집, 보유, 관리하는 정부와 공공기관에서 개인정보를 함부로 다루는 현실이 국정감사에서 속속 드러나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국가행정전산망의 개인정보(주민등록번호 전산자료)를 채권추심회사와 금융회사 등에 팔아온 사실이 드러났고, 국민연금공단 직원들의 가입자 정보 무단조회 사례도 또 밝혀졌다.

손숙미 한나라당 의원이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지난해와 올해 감사자료를 보면, 가입자들의 개인적인 정보가 공단 내부 직원들에 의해서 어떻게 조회되고 있는지 생생하다. 국민연금공단은 가입자의 주민등록번호와 주소, 전화번호는 물론, 소속한 직장과 소득 등 정보를 보유하고 있으며, 연금업무시스템(NPIS)를 통해 모든 가입자의 정보를 조회할 수 있다. 현재 국민연금 가입자는 1950만명으로, 사실상 경제활동을 하는 인구 전체에 해당한다. 특히 연금업무 시스템은 연금 납입액 기준이 되는 가입자의 월 소득 정보와 직장별 가입 기간 등을 알 수 있어, 주민번호와 이름 등의 정보가 집적되어 있는 여느 개인정보 파일과는 그 민감성의 차원이 다르다.

#1.

국민연금공단의 직원 아무개씨는 지난해 2월초 고모로부터 "충청남도에 사는 30대 중반의 ○○○를 소개시켜줄테니 만나보라"는 맞선 제의를 받고, 연금업무시스템에 접속해 맞선 상대의 정보를 검색했다. 이 직원은 맞선 상대를 알아보기 위해 ○○○라는 이름을 쓰는 1960~ 1999년에 태어난 여성들을 모두 검색했다. 그는 동명이인 중에서 맞선 상대의 정보를 찾아내기 위해 2월3일, 5일, 10일, 17일에 걸쳐 나흘 동안 집요한 검색을 했다.

#2.

공단의 한 여성상담원은 인터넷 와인동호회에 가입해 활동하던 2010년 2월, 동호회 회원이 이름과 나이, 직장, 거주지 등을 알려주면서 만나자는 쪽지를 여러 차례 받은 뒤, 상대가 제공한 정보가 과연 정확한지를 업무시스템을 통해 조회했다. 가입자의 소득도 조회할 수 있다. 이 상담원은 또 클럽에 놀러 갔다가 만나게 된 상대가 전화번호를 적어주면서 사업을 하고 있다고 말한 뒤 그 상대의 국민연금 가입 정보를 조회했다.

#3.

국민연금공단에서 근무하는 공익근무요원은 지난해 9월 연금 업무처리 보조를 하면서 여성 유명 연예인 고아무개씨 명의의 사업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이 연예인에 관한 정보를 조회했다. 인기 연예인들이 소속돼 있는 유명 기획사의 사업자 명부를 조회해 자신의 사업장을 갖고 있는 연예인들이 얼마나 되는지 알기 위해 이 명부를 817건이나 조회했다. 이 공익근무요원은 고교 3년때 담임교사의 연금 지급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모교와 이웃고교의 사업장별 가입자 명부를 63건 조회하기도 했다. 교사별 급여와 연금 수준을 파악할 수 있다. 그는 또 아버지가 운영하던 회사와 동료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회사의 정보를 찾기 위해 사업장 원부 또한 조회했다.

#4.

교육공무원인 여성가입자는 남편이 지난 2009년 숨진 뒤, 시집과의 불화로 연락을 끊었으나 국민연금공단에 근무하는 시동생이 형수와 조카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업무시스템을 통해 20번이나 조회했다. 사실상 '협박용'으로 가입자 정보를 조회한 것이다. 이 가입자는 "시집 식구들이 '남편 보험금 내놔라' '연금내놔라' 등으로 행패를 부려 결국 직장을 그만두고 자녀는 전학을 하게 됐다"며 잇단 개인정보 유출을 의심하다가 올해 3월 공단 부조리신고센터에 제보를 하게 되면서 무단 조회 사실이 비로소 밝혀졌다. 이 가입자는 "시동생이 평소 조회를 하면 다 알 수 있다"고 말해와, "불안에 떨며 살아왔다"고 신고했다.

#5.

올해 연금공단의 한 과장은 '단지 호기심에서' 공단의 직원 등 2260명의 정보를 반복해서 조회하고, 일부 정보는 출력까지 했으나, 공단은 해당 직원이 평소 우울증과 뇌경색을 앓아왔다는 이유로 문제삼지 않고 휴직처리시켰다.

국민연금공단이 지난해부터 올 9월까지 내부 감사를 통해 밝혀낸 개인정보 무단 조회는 21개월 동안 21건으로, 한달에 한번씩 가입자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열람해 온 것이 드러났다. 손숙미 의원은 "이는 내부 모니터링이나 외부 제보에 따른 자체감사를 통해 공개된 것으로, 밝혀지지 않은 개인정보 조회건은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실제로 동일한 무단열람을 수천건에 이를 정도로 반복적으로 조회하는데도 도중에 이를 적발해 중단시키지 못하고 제보 등으로 비로소 밝혀졌다는 점은 내부 감사로 적발된 것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수 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그동안 내부 직원들에 의한 가입자 정보 열람이 여러 차례 문제되어 왔는데도 뿌리뽑히지 않는 배경에는 공단의 관리감독과 교육이 철저하지 않은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손숙미 의원은 "공단은 잇단 개인정보 조회에도 대부분 최고 징계가 정직 1~3개월에 그치는 등 자기 직원 감싸기기 급급하다"고 지적했다. 내부 감사는 개인정보 무단 열람이 드러난 뒤 "조회와 열람만 했을 뿐 외부로 유출하지는 않았다"는 해당 직원의 소명을 받은 뒤 대부분 "외부 유출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판단을 내리고 추가 조사나 고발을 하지 않았다. 특히 공단은 상담원이 개인정보를 조회했을 경우엔 사직서를 받았으나, 정직원인 경우에는 불문에 그치거나 정직 1~3개월에 그쳐, 심각한 도덕적 해이를 드러냈다.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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