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홍길의 명사산행] 고두심, "연예계는 히말라야 8,000미터 같은 곳, 그래도 살당보민 살아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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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산]제주 올레 10코스 길을 따라 송악산으로 향하는 탤런트 고두심과 엄홍길 대장. 두 사람의 환한 미소와 제주 해안의 절경이 잘 어울린다. |
처음 만났는데도 마치 어머니인 양 며느리인 양 친근한 느낌이 드는 사람이 있다. 브라운관의 영원한 맏며느리이자 어머니인 탤런트 고두심(60)씨다. 1972년 데뷔한 그녀는 내년이면 연기인생 40년을 맞는다. 한국적인 여성상을 깊이 있는 연기로 풀어내 긴 세월 시청자들에게 사랑 받아온 그녀를 엄홍길 대장이 만났다.
두 사람이 만난 곳은 산이 아닌 김포공항. 제주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다. 제주 고씨이자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그녀를 위해 산행 목적지를 그리 잡은 것이다. 제주공항에 내린 이들은 서귀포 방면으로 향한다. 올레 10코스에 포함되면서 특유의 아름다움이 더 빛을 발하고 있는 송악산으로 간다. 차창 밖으로 제주 특유의 깨끗하고 수려한 풍경들이 평범하다는 듯 널려 있다. 엄 대장과 고두심씨가 소소한 얘기로 조심스레 말을 연다.
"평창동에 산 지 16년 됐어요. 강남에 가면 왠지 내가 안 어울리는 거 같은 거예요. 정서적으로 안 맞아요. 평창동 북한산 자락이 잘 맞고 좋아요. 부모님이 살아계실 땐 제주에 자주 왔죠. 7남매 중에 다섯째였어요. 구 제주시에 살았는데 우리집은 대단했어요. 한 집에서 49년을 살았고 4대가 같이 살았으니까요. 제가 30대에 고모할머니 소릴 들었어요."
지나치는 제주 풍경에 대해 연기자 고두심은 애정이 담긴 아쉬움을 표한다. 예전에 비해 도로가 지나치게 많이 생기고 넓어졌다는 것이다. 개발을 하더라도 제주의 자연 경관을 우선으로 개발해야 하는데, 여느 도시와 비교해도 차별성이 없는 일률적이고 편의적인 개발로 일관되고 있다는 것이다. 고향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서울에서 살아보니 제주도가 얼마나 좋은지 알게 됐다고 한다.
"구멍 숭숭난 우리 할망 같은 현무암으로 쌓은 담, 거길 뚫고 자라는 풀뿌리. 그런 소소한 게 얼마나 아름다운지 제주에 살 땐 몰랐어요. 늘 제주도를 사랑한다고 말하다가 행동으로 옮기고 싶어서 옛 일주도로 204km를 걸은 적 있어요. 그때 느꼈어요. 자연 그대로 두는 것이 아름답다는 걸 말이죠. 사람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비비고 사는 제주 특유의 모습도 아름답고요." 엄 대장이 어릴 적 추억이 담긴 장소를 묻자 바닷가를 꼽는다.
"김장 담글 때 배추를 바닷물에 그대로 절였어요. 그만큼 물이 깨끗했어요. 성게, 소라, 해삼 바닷가에서 그대로 캐서 먹는 게 얼마나 좋은지 아세요? 해산물 뚝배기에 끓여 먹는 걸 좋아했어요. 제주도는 토질이 안 좋아서 논농사는 안 됐어요. 대신 잡곡이 잘 되어서 메밀을 많이 먹었어요. 쌀밥은 아버지 밥상에 조금 올라왔는데 혹시 아버지가 남길까봐 눈치보고 그랬죠. 남아도 내 차례는 없었어요."
엄 대장도 제주도에서의 추억이 있다. 특수부대인 UDT 출신인 그는 1982년 두 달 동안 여기 와서 훈련했다. 수중폭파, 수중침투, 심해잠수 등 물에 관한 모든 걸 마스터했다고 한다. 혹독한 훈련이어서 기억에 제주도가 아름다운 곳으로만 남아 있진 않단다.
"매일 북한산 오르지 않으면 다리 후들거려요"
송악산 입구인 마라도 유람선선착장에서 배낭을 울러 멘다. 올레 10코스가 지나는 송악산은 주말이라 관광객들의 웃음소리가 넘친다. 두런두런 얘길 나누며 올레객들 사이로 스며든다. 고두심씨는 매일 새벽 북한산을 오른다. 아침 운동차원에서 하는 것이기에 능선을 타고 돌진 못하고 일선사까지 다녀오는데 1시간 45분이 걸린다. 매일 북한산을 다니지 않으면 "스튜디오에 섰다가도 다리가 휘청휘청 한다"는 설명이다. 북한산을 매일 오르는 것과 달리 관절이 좋지 않다.
"지금 무릎 보호대를 했어요.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항상 다리 여기를 싸매시더라고요. 그러면서 뼈 속으로 바람이 들어온다고 하시더라고요. 아니, 아버지 어떻게 바람이 뼈 속으로 들어와요, 하고 매번 물었거든요. 근데 그걸 이제야 알겠는 거예요. 차가워요. 그래서 에어컨 바람을 못 쐬요. 여름에도 항상 무릎 덮개를 하고 있어야 돼요. 여름에 남의 차 얻어 타면 에어컨을 꺼 달랠 수도 없고 난처해요."
과거 산후조리를 잘 못해서 그리됐는데, 산에서 내려올 때 무릎에 무리가 가는 게 가끔 느껴진다. 그래서 내려올 때는 스틱을 사용하며 조심해서 걷는다. 엄 대장은 소문난 스틱 예찬론자다. 그는 안나푸르나 원정 때 발목이 부러지고 나서부터는 산행할 때 꼭 스틱을 사용한다. 스틱이 "무릎과 발목 관절 보호에 참 좋다"고 한다. 그녀는 집 뒷산인 북한산과 고향산인 한라산을 많이 올랐다. 한라산은 겨울에 자주 왔는데 설경이 워낙 아름답기도 하고 눈이 다져진 뒤에 걸으면 관절에 무리도 안가서 좋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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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산]화려한 해안 절경을 배경으로 선 고두심과 엄홍길. 제주에서 태어나 자란 고두심씨는 고향에 대한 애착과 사랑을 숨기지 않는다. |
엄 대장은 "연예계가 8,000m 히말라야만큼이나 살아남기 힘든 곳인데 그런 곳에서 40년을 버텼다는 건 대단하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고두심은 고향이 제주도였다는 것과 부모님 영향을 원동력으로 꼽는다.
"이런 표현을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부모님은 정말 토양이 좋은 분들이었어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굉장히 건강하신 분들 밑에서 자란 게 지금의 저를 있게 한 토양이죠."
과거 제주도 사람들은 "3집 걸러 1집은 밀항을 나간다든지 친척이 있어 간다든지 어떤 방법으로든 외국으로 다 나가 돈을 벌었다"고 한다. 그의 부친 고명녀(1999년 작고)씨는 미개척지인 태평양 남양군도로 갔다. 작은 섬이었고 원주민들과 물물교환을 하며 정착했는데 손재주가 뛰어나고 수완이 뛰어나 추장 역할을 했다고 한다. 부친은 10년을 남양군도에서 살다 제주도에 돌아와 어머니 홍정희(2004년 작고)씨와 결혼한 뒤 다시 남양군도로 나가 제2차 세계대전이 나기 전까지 10년을 더 살다 제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녀가 1990년 KBS 연기대상을 타고 상금으로 부모님과 함께 남양군도를 다시 찾기 위해 사이판에 갔다. 경비행기로 섬에 가려 했지만 폭풍으로 갈 수 없었고 제2차 세계대전 때 폭격이 심해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다고 했다. 마침 사이판의 호텔 종업원이 그 섬에서 살다 나온 사람이었는데 "옛날에 한국인 추장이 있었다는 얘길 들었다"며 "그가 낙후된 섬에 와서 슈퍼와 병원을 만들었다"고 얘기했다. 그녀는 "아버지 살아계실 때 그 섬을 한번 더 갔어야 하는데 그게 제일 후회스럽다"고 했다.
"아버님께서 소설 같은 삶을 사셨군요."
"어머니가 열여덟 살에 결혼해서 바로 가셨어요. 한 달 넘게 배 타고 남양군도로 간 거예요. 우리 아버지는 거기서 10년을 거칠게 살다가 결혼 하려고 제주도 들어와서 결혼하고 다시 가는 거였어요. 시커멓고 너무 거친 남자가 어린 여자하고 같이 가니까 미녀와 야수 같았는지 사람들이 보쌈해 가는 거 아니냐고 심각하게 물어보고 그랬대요." 당시에는 집에 딸이 여럿 있으면 "그냥 사위한테 줬다"고 한다. 밥만 굶지 않게 해달라고 하면서 말이다. 외할머니는 그렇게 막내딸을 보내놓고 며칠 동안 배 떠난 자리에서 식음 전폐하고 울었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외할머니는 인두로 밤을 구우면서 옛날 얘기를 맛있게 해주었다. 요즘 아이들이 책으로 읽는 동화를 모두 구전으로 들었다. '춤추는 가얏고'라는 TV 드라마에선 가야금 예인의 나이든 역할을 맡았는데, 어떻게 연기할까 고민하다 외할머니의 모습에서 답을 찾기도 했다. 그녀의 부친은 94세에 숨을 거뒀는데 장수할 수 있었던 것도 "어머니의 헌신 때문"이라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항상 아버지 드릴 달걀 푸는 소리가 들렸어요. 그걸 평생을 그렇게 하셨어요. 사시사철 아버지 드릴 과일주를 어머니가 담그셨죠. 아버지도 '니네 어멈 아니었으면 벌써 갔을 거야' 하셨죠. 예전에는 사진을 액자에 넣어 벽에 걸어뒀잖아요. 내 사진이 비뚤게 걸려 있다고 그걸 바로 잡으려고 의자를 놓고 올라갔다가 넘어져서 아버지가 대퇴부를 크게 다친 거예요. 그때부터 엄마가 수발하느라 힘들었죠. 힘들다고 해도 막상 아버지가 돌아가시니까 어머니가 힘이 빠지는 거예요. 할아방이 가고 나니까 어깨가 축 늘어져 계시더라고요."
고두심씨가 엄 대장의 부모님은 어땠는지 묻자, 그의 표정이 진지해진다. 그는 2남 2녀 중 장남이었다. 누나 한 명 있고 여동생과 남동생이 있었다. 아버지는 강직하고 정석대로 하는 엄한 분이었다고 한다. 반면 어머니는 모든 걸 이해해 주는 분이었고 방패 역할을 해주었다.
"산에 다닐 때 아버지가 특히 반대하셨죠. 온 가족이 집에서 장사하는데, 도봉산 원도봉 입구에서 음식 팔고 했거든요. 장남이란 놈이 산만 타러 다니고 집안일은 안 돕고 위험한 데로만 다니니 좋아하셨겠어요. 물론 어머니도 반대하셨지만 아버지 같진 않으셨죠. 아버지는 1999년에 돌아가셨으니까 내가 이렇게 된 걸 못 보고 돌아가신 거죠."
그는 큰 원정을 갈 때 늘 아버지께 다짐을 했다. '불효자식이라고 없는 자식이라 생각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제게 꿈이 있고 목표가 있습니다. 저는 꼭 해내고 말 겁니다. 그때가 되면 제가 이렇게 미쳐서 산에 다닌 걸 이해하시게 될 겁니다' 하고 속으로 자주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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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산]송악산을 내려오는 국민 엄마와 국민 대장. 고두심씨는 매일 북한산을 오르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라 말한다. |
"근데 못 보고 돌아가신 거죠. 어머니는 요즘 제가 이제 원정을 안 가니까 좋아하시죠. 제가 원정만 가면 어머니께선 항상 절에 가셔서 기도하고 계신 거예요. 어머니가 지극정성이었어요. 지금도 자나 깨나 자식 걱정이에요. 아직도 불효를 하고 있는 거죠."엄홍길과 고두심을 알아본 올레객들이 연신 인사를 하고 사인을 청한다. 해안선을 따르는 올레를 두고 송악산 정상으로 방향을 틀자 한결 조용하다.
'혹은 살아보젠' 말 들으면 소름끼치도록 감동
"제주도에서 자라고 생활 한 게 40년 연기인생에 영향을 미쳤나요?"
"내가 느꼈든 안 느꼈든 몸에 스며들었을 거 아니에요. 그게 원천이에요. 해녀 어머니들의 강인함이랄지, 여기선 강인하지 않으면 살아남질 못해요. '혹은 살아보젠'이라는 말이 있어요. 이 말을 들으면 제주도에서 자란 사람들은 큰 뭔가가 속에서 타올라요. 어떻게든지! 누가 아무리 나를 못살게 굴더라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끈질김이 담긴 말이에요. 어떻게든 자식과 남편을 위해 헌신적으로 살아보려는 생명력이 있어요. 가끔 힘들 때 그 문구 하나만 생각해도 막 소름이 끼치면서 묘한 감정이 들어요."
고두심씨가 브라운관에서 누구보다 서민적이고 모성애 깊은 어머니 역할을 소화할 수 있었던 데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그 배경은 고향 제주와 가족에게서 나오는 한국적인 정서가 짙게 배어 있다. '혹은 살아보젠'처럼 힘들 때 읊조리는 말이 '살당보민 살아진다'다.
"엄마들이 딸들 시집보낼 때 어떤 일이 있어도 참고 살아내라고 '살당보민 살아진다'고 해요. 요즘 여자들은 목소리도 커지고 누리는 것도 많지만 우리 할머니들은 그런 걸 못 누리고 자기는 없이 살아온 거예요. 그런 사람들이 읊조리는 소리죠. 이렇게고 저렇게고 살다보면 어떻게든 살고 있더라 하는 끈질김을 얘기하는 거죠."
남아선호 사상이 가장 심한 곳이 제주도라고 말하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
"아들이라면 제주도에서 태어나야 돼요. 할망들, 엄마들이 아들이라면 신에 가깝게 모셔요. 딸은 두 명 있으면 누구 하나 줘도 괜찮을 정도인데. 아들은 뱃일을 하니까 바다에 나가서 안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이어도 환상의 섬에 살고 있지 않나 하는 노래가 나온 거예요."
엄 대장이 고두심씨에게 40년 연기생활에서 가장 기억 남는 작품을 물었다.
"전원일기 22년, 대한민국에 그만큼 오래한 드라마가 있나요. 김용건씨가 남편으로 나왔고 유인촌 장관이 시동생인데 다 한 식구 같은 거예요. 말하자면 식구들 얼굴 보는 것보다 출연진들하고 같이 있는 시간이 더 많은 거예요. 최불암씨와 김혜자씨는 시골 가면 사람들이 진짜 부부인줄 알았어요. 그리고 인기가 너무 좋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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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산]들꽃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두 사람. 그녀는 내년이면 연기인생 40년을 맞는다. |
오랫동안 국민적으로 사랑받은 드라마였기에 배우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연기했다고 한다.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마음 편하게 볼 수 있는 드라마는 전원일기 하나였다고 그녀는 으쓱하며 말한다. 우리나라의 전통과 향수, 시골 분위기를 잘 표현한 브라운관의 고전 같은 작품이 전원일기라고 한다. 전원일기에서 고두심은 맏며느리 역할을 맡아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맏며느리 이미지가 너무 굳어져 힘들 때도 많았다고 한다. '전원일기'로 굳어진 맏며느리 이미지 결국 못 벗어
"대한민국 맏며느리상 하면 고두심으로 낙인찍혀 있는 거예요. 사실 아닌데. 그게 무거웠어요. 그 범주에서 벗어나는 걸 용납하지 않는 시선이 부담이었죠. 나중에 전원일기가 22년쯤 되니까 시대가 변하는 게 느껴졌어요. 요즘 그런 며느리가 어디 있냐고 사람들이 그러고, 좀 참고 살지 말고 시댁에 항변 좀 하라고 그랬죠. 좋은 드라마였어요."
'전원일기'가 끝나자 그녀는 KBS에서 맏며느리 이미지를 버리고 파격적인 변신을 시도한다. 그녀는 드라마 '사랑의 굴레'에서 남편을 닦달하는 정신질환자 역을 맡았다. 이 드라마에서 "잘났어, 정말~"이란 유행어를 만들며 그해 연기대상을 받았다. 심지어는 환자 연기를 너무 잘했다며 정신과 의사들이 상을 주기도 했다.
"사람들이 맏며느리가 저래도 되냐고 그랬죠. 근데 시청자들이 맏며느리니까 용서하더라니까요. 그러고 나선 악역은 안 해봤죠. 대부분 동정 가는 역할이거나 몸빼 입은 헌신적인 어머니 역할만 했죠."
어머니역이 아닌 다른 역할에 대한 목마름은 없는지 물었다. 고두심씨는 배역을 하고 싶다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한다. 연기자의 생리가 감독에게 뽑혀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젊을 적 잠깐 멜로 여주인공을 하고 싶었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얼마나 그 배역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까' 하는 것만 생각한다. 또 "헌신적인 어머니 연기에 안주하는 게 좋고, 이 어머니들도 서로 다른 면이 있다"고 한다.
산이라 불리지만 낮은 오름이라 쉬엄쉬엄 걸어도 정상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는다. 바람이 강하긴 하지만 제주 오름 특유의 분화구와 드넓은 바다, 풀 뜯는 말무리 모두 어울려 환상적인 풍경이다. 낮은 산이지만 정상 표지석에 머리를 대고 엄 대장은 기도를 한다.
"늘 산에 오를 때마다 산신령님에게 '저를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생각했던 건 아니에요. 제가 그동안 산을 다니면서 많은 과정을 겪었잖아요. 산에서 실패하기도 했고 성공하기도 했죠. 실패하는 과정에 사고도 있었고 동료가 죽기도 했어요. 히말라야 8,000m 산을 오른다는 것은 내 의지대로, 사람 의지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경험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산을 오를 땐 산과 하나가 되어야 겠다고 생각해요. 그래야지 산이 나를 받아주고 내가 또 정상에 오를 수 있고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거든요. 늘 평정심을 가지고 욕심을 부려선 안 된다는 걸 깨닫게 됐죠. 그런 걸 깨달으면서 산이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신적인 무언가 있다고 믿게 된 거죠."
고두심씨는 젊어 보이는 비결에 대해 산에서의 걷기를 꼽는다.
"다리가 조금 안 좋긴 해도 자다가도 '걷자'고 하면 벌떡 일어날 만큼 걷는 걸 좋아해요. 우리는 늘 사람들 많은 곳에 갈 일이 많잖아요. 그게 좀 피곤해요. 많은 사람들에게 내 감정과는 상관없이 대해야 하는 부분이 좀 그렇잖아요. 그에 반해 자연은 도움을 주면 줬지, 방해하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걸으면서 많은 걸 볼 수 있는 것도 좋고요. 사실 촬영 때문에 걷기 말고 다른 운동할 시간 여유도 없고요."
"40년을 연기했으니 드라마의 흐름이 보일 텐데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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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산]송악산 꼭대기에 선 연기자 고두심과 엄홍길 대장. 고두심씨는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22년을 출연한 전원일기를 꼽는다. 덕분에 국민 맏며느리 이미지가 생겼다. |
"드라마가요, 요즘에는 양심이 좀 없어요. 상업적이다 보니까 남는 게 없는 거 같아요. 소모성 일회용으로 끝나는 거죠. 예전에는 아름답고 아련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사람은 저렇게 살아야 돼, 하는 게 있었는데 그런 게 없어졌어요. 요즘은 작품이 좀 좋다 싶으면 사람들이 안 봐요. 감각적이고 자극적이지가 않으니까. 구태의연하다 루즈하다 그러는 거죠. 젊은 사람들이 채널권을 잡으니까 상업적으로 변해가는 것 같아요."
"요즈음 드라마엔 양심도 뭣도 없고 자극만 있어요"
드라마 작가들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바뀌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시청률을 좇는 사이 부정적으로 변한 단면이 많다고 한다.
"문학과는 상관없이 다른 분야에 종사하다 자기 자전적인 작품 하나 써서 히트 치면 대단한 사람인 양 으쓱거리기도 해요. 김수현 작가 같은 분은 지금도 서점에 일주일에 한 번씩 들러서 다방면의 책을 섭렵하는데 요즘 젊은 작가는 깊이가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수명이 짧아요. 한두 작품으로 끝나고 오래가지 못하는 것 같아요."
언제부턴가 연기자들 사이에선 위계질서가 없어졌다고 한다.
"젊은 스타 연기자들의 출연료 때문이죠. 우리 같이 나이든 사람들이 40년을 넘게 연기했어도 그 사람들하고는 단위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출연료가 적어요. 거기에서 위계질서가 다 깨진 거예요. 한 작품 뜨면 완전히 으쓱해서 다 이룬 줄 알아요. 그때 잘 생각하지 않으면 수명이 짧죠. 우리가 끝까지 살아남아서 버티고 있는 건 고개 숙일 때 숙일 줄 알고 왔기 때문이에요."
드라마 촬영은 아침에 시작해 다음날 새벽까지 강행군 하는 경우가 많아 쉽지 않다. 그중에서도 힘든 건 제작을 느리게 이어가는 것이다.
"우리 시스템 자체가 군불 때는 스타일로, 불 지폈을 때 하고 싶거든요. 오랜 시간 불 지피고 있는 게 힘들잖아요. 연기라는 게 정말 미세하게 신경선을 건드리는 감동을 줘야 하잖아요. 시청자의 심장이 고동치게 만들어야 하는 게 배우잖아요. 그러니 얼마나 신경선이 날카로워 있어. 그 날카로운 시간을 오래 견디라는 건 형벌이죠. 감독들이 그걸 모르는 게 아니지만, 그렇게 못 하는 경우가 더러 있어요."
한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는 독특한 고두심이란 이름은 말 두(斗) 마음 심(心)을 쓴다. 한 되 두 되가 아니고 한 말 두 말, 큰 마음을 가지라는 뜻으로 아버지가 지어주었다고 한다. 연기자 생활을 시작할 때 예쁜 이름을 짓자고 어떤 감독님이 제의했는데 단번에 거절했다.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고집했던 게 지금은 잘된 것 같다고 한다.
국민 엄마라고 할 정도로 어머니 역할을 실감나게 잘할 수 있었던 건 친정어머니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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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산]고두심씨는 훌륭한 토양이 돼준 부모님 덕분에 좋은 연기자가 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
"정말 천상 여자면서 너그러운 사람이었어요. 옛날에 똥간에 빠져 죽은 사람이 있었대요. 수세식 화장실이 생기기 전에는 뒷간을 깊게 팠잖아요. 그렇게 죽은 사람이 있었는데 시신을 건져도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하는 거예요. 그걸 엄마가 손으로 다 닦아가지고 장례를 치렀어요. 정말 자기 식구가 죽은 것도 아니고 더러워서 못하잖아요. 남양군도에서도 그렇고 제주도에 있을 때도 주변에서 애 낳으면 다 도와줬어요. 밤중에 급하면 우리집에 와서 문을 막 두드리는 거예요. 그럼 엄마가 달려가는 걸 많이 봤어요. 그런 엄마였어요."
소나무 숲길을 지나 다시 마라도 유람선 선착장으로 이어진다. 너무도 한국적인, 헌신적인 어머니가 있어 고두심과 엄홍길은 비옥한 토양에 뿌릴 내렸고 자기 분야에서 시대의 거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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