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지리산이여~

2011. 8. 1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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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매거진 esc] 밥스토리-밥알! 톡톡!

1985년 8월. 우와~ 26년 전이네. 스물여덟 여고 동창 셋은 겁도 없이 지리산 종주를 한다며 밤기차에 올랐다. 들뜬 마음과 불편한 잠자리로 자는 둥 마는 둥 새벽 구례 화엄사에 도착해 멍하고 띵한 상태로 노고단에 올랐다. 계곡의 맑은 물도 푸르른 나무도 볼 여유 없이 그저 힘들기만 했다. 그렇게 1박을 하고 또 2박을 하고 3일째 되는 날. 우리는 무작정 오르기만 하는데 일부 등산객들이 서둘러 짐을 싸며 내려갈 준비를 하는 게 보였다. 남쪽에서 태풍이 온단다. 우리는 픽 웃었다. 이렇게 날씨가 쾌청하고 뜨거운데 무슨 태풍? 또 무작정 올라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갑자기 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휘이익 안개인지 구름인지 구별되지 않는 비가 우리를 감싸고 산을 감싸고 사방을 감싸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앞이 안 보였다. 여자 셋은 겁에 질린 채 서로 지리산 가자고 충동질했던 것을 사과하며 울기 시작했다. 시계를 보니 오후 1시인데 공포영화에 나오는 밤 12시로 느껴졌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를 따라 천신만고 끝에 산장에 도착한 우리는 그곳에서 칼잠을 자며 하산 허락을 기다렸다. 밥을 할 수가 없어 8끼 정도를 초코파이로만 연명했다. 나중에는 초코파이만 봐도 토할 것 같고 입에 무는 순간 머리가 빙빙 돌았다. 그러나 살아야 한다는 절실함과 살아서 집에 내려가면 부모님과 동생들에게 착한 사람이 되겠다는 결심을 굳히며 초콜릿은 잡곡으로, 흰 크림은 하얀 쌀밥으로 생각하며 한입 한입 삼켰다. 사흘째, 빗줄기가 약해지니 우리처럼 휴가 일정이 빠듯한 사람들이 하산을 시작했다. 우리도 그 속에 끼어 최대한 빨리 산을 뛰어 내려갔다. 정말 정신없이, 아니 정신도 버리고 그저 뛰고 또 뛰었다.

어느덧 마을이 저만치 보이고 너른 들판에 다다랐다. 곡성이랬다. 마을 주민들이 다니고 소달구지가 건너는 다리가 있는 개울물을 보자 모두들 흙탕물인 개울 속으로 뛰어들어 갔다. 옷 입은 채 목욕을 하면서 지리산의 맑고 차가운 청정 그 자체의 계곡물을 여유 있게 만져보지 못한 걸 후회했다. 그리고 우리는 흙탕물로 쌀을 씻어 부랴부랴 코펠을 꺼내 밥을 지었다. 뜸들일 시간을 기다릴 수 없었던 우리는 쌀이 익은 것만 확인하고 두 손으로 밥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입으로 가져갔다.

입언저리에 닿아 떨어지는 밥 반, 입안으로 들어가는 밥 반.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었는데…. 아, 지리산이 눈앞에 웅장하게 서 있는 게 아닌가. 지리산은 비구름은 다 걷고 산중턱에만 눈보다 더 흰 구름을 길게 걸친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리는 또 누가 시작이라 할 것도 없이 엉엉 울기 시작했다. 다 큰 처녀애 셋이 두 손과 얼굴에 밥풀을 붙인 채 엉엉 울고 있는 모습을 보며 지리산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김혜영/서울시 도봉구 도봉2동

주제 밥에 얽힌 추억담, 밥과 관련한 통쾌, 상쾌, 유쾌한 이야기

분량 200자 원고지 8장 안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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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PN풍년 압력밥솥 '스타켄'(STARKEN) 시리즈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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