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보고 | 아이거북벽] 하얀 눈에 덮여 버린 아이거 북벽을 향한 뜨거운 열정

글 한필석 부장 2011. 8. 1.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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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히 등정 뒤 나선 북벽 등반 중 악천후 예보에 포기

↑ [월간산]아이거 북벽은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클라이네샤이데크에서 처음 보았을 때는 검은 벽에 군데군데 눈이 얹혀 있는 정도였다. 그러나 폭설이 내리자 전혀 다른, 험악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유동진 대원이 눈과 얼음이 살짝 덮인 하단 벽을 등반하고 있다.

"저게 무슨 산이지? 맞다 융프라우다!" 숙소 문을 열고 빌더스빌역 주변을 산책하는 사이 숲 우거진 골짜기 사이로 하얀 산이 마주 보인다. '순백의 산' 융프라우(Jungfrau·4,158m)다. 빛나는 융프라우는 우리의 아이거 북벽 방문을 반기는 분위기다. 올해 63세인 유동진(한등회) 선배뿐 아니라 32년 전 한국 최초로 아이거 북벽 등반에 성공한 허욱(58·악우회) 선배 역시 얼굴빛이 환해진다.

항공기를 세 차례 바꿔 타고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열차를 두 번 갈아탄 끝에 첫날 숙박지인 빌더스빌에 새벽 1시에 도착해 무척 피곤한 상태인데도 조금이라도 빨리 아이거를 마주하고픈 마음에 아침 일찍 서둘러 그린델발트(1,034m)로 이동한다. 그린델발트에서 식량과 가스를 구입하고 산악보험을 든 다음 일기예보를 확인한 결과 5월 28일부터 30일까지 날씨가 좋고, 31일 오후 날씨가 나빠지는 것으로 나와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나흘 뒤인 5월 28일 북벽 등반을 시작하는 게 가장 좋다.

등산열차를 타고 클라이네샤이데크(2,061m)로 이동해 우리의 목표인 아이거 북벽이 정면으로 보이는 초원 언덕마루에 캠프를 설치했다.

표고차 1,800m 높이의 아이거 북벽은 이제 한 해에 여러 팀이 오르는 벽이지만 오랜 세월 알프스를 대표하는 거벽이다. 1935년 첫 도전 이후 1991년까지 사고를 당한 클라이머가 55명에 이른다는 기록과 이탈리아의 유명 산악인 발터 보나티가 단독으로 아이거 북벽을 등반하던 중 제1설원과 제2설원을 연결하는 아이스호스에서 엄청난 양의 낙석에 맞아 늑골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한 이후 등반을 영영 포기했다는 사실만 하더라도 얼마나 험난한 벽인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험난한 아이거 북벽을 등반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지난 겨울 실버팀의 토왕빙폭 등반 직후였다. 여러 명의 실버 선배들 가운데 유동진 선배는 더 높고 더 험한 산에 대한 등반 열정이 엿보였다. 아이거 북벽 한국 초등을 이룩한 허욱 선배의 열정 또한 뜨거웠다. 거기에 고무되어 기자도 동참을 결심한 것이다.

"저기 갱도 입구 보이지? 그 왼쪽이 힘든 크랙이야. 그 왼쪽이 힌터슈토이셔 트래버스이고. 맨 위쪽 설원도 보이지? 그게 하얀 거미야. 거미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야."

허욱 선배가 군데군데 눈이 얹혀 있는 아이거 북벽을 바라보며 우리가 등반할 헤크마이어 루트에 대해 설명하면 그동안 사진과 개념도를 통해 익힌 루트를 오버랩시키려 애를 쓰지만 워낙 벽이 크다 보니 헷갈린다. 그래도 국내에서 조사한 대로 5월 말 날씨가 맑다는 데에 힘이 생기고, 또 내일 뮌히(Mo˙˙nch·4,107m) 등반 후 이틀 쉬는 사이 날씨가 한 차례 나빠지기는 하지만 이후 날이 좋다는 예보에 마음을 편하게 먹을 수 있었다.

뮌히 정상서 아이거 북벽 등반 의지 다져

이튿날 아침, 아이거와 뮌히를 관통하는 등산열차를 타고 올라선 융프라우요흐역(3,454m)에서 시작한 뮌히 등반은 어설픈 시도였다. 출발 전날 별 생각 없이 "바일 필요 없을 거예요"라고 한마디한 게 화근이었다. 혹시 하는 생각에 설상용 피켈을 딱 한 자루만 가져오고 네 명 모두 폴 두 자루씩 손에 들고 등반에 나섰다. 그러나 클라이네샤이데크의 초원캠프에서 오전 8시 출발하는 첫 열차를 타고 융프라우요흐에 도착했을 때 클라이머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누구나 배낭에 아이스바일을 두 자루씩 꽂고 있었다. 유난스레 기본에 신경 쓰는 알프스 지역 사람들의 타성에 젖은 습관이려니 했으나 그게 아니었다.

↑ [월간산]융푸라우를 등지고 뮌히로 향하는 대원들.

설상차가 뮌히산장(3,657m)까지 널찍하게 닦아놓은 눈길을 따라 40분쯤 걸어 오르자 앞서 간 외국 클라이머들이 뮌히 남릉 등반 기점에서 안전벨트와 아이젠을 차고 로프를 꺼내 서로 연결하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도 그들처럼 아이젠을 차고 로프를 연결한 다음 간간이 바위지대가 나타나는 설릉을 거슬러 올랐다.

설릉을 따르는 사이 융프라우(4,158m)와 그 왼쪽으로 융프라우 핀 빙하가 보석을 깔아놓은 듯 아름답게 반짝이고 등뒤로 설릉과 암릉을 날카롭게 뻗는 트루그버그(Trugberg·3,932.9m)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새삼 알프스에 와 있다는 흥분과 함께 며칠 뒤 시도할 아이거 북벽 등반에 대한 기대감에 마음이 뿌듯했다.

그렇게 2시간쯤 올랐을까, 지능선이 갈라지는 능선마루(3,887m)에 올라설 즈음 허욱 선배가 몹시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고무판이 없는 아이젠 바닥에 수시로 달라붙는 눈덩이를 떨어내느라 애를 먹던 허욱 선배는 설릉이 한층 가팔라지고 그 뒤로 정상까지 이어지는 칼날 같은 설릉이 눈에 들어오자 추락 위험이 높다며 세 사람만 오르는 게 어떻겠느냐 묻는다. 하지만 간식을 하며 잠시 쉬는 사이 함께 오르기로 마음을 바꾼다.

급경사 설릉을 오르는 사이 융프라우요흐에서 앞서 출발한 부부 클라이머가 내려서고, 또 잠시 후 1시간 전쯤 우리를 추월한 가이드 팀이 하산하며 "40분만 더 오르면 정상"이라며 우리를 격려한다. 전형적인 설릉은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면서도 한편으론 '이게 알프스 등반'이라는 생각에 즐겁기만 했다.

오후 2시경 오른 뮌히 정상은 커니스로 이뤄져 움직이는 데에 불안감은 있었지만 그래도 융프라우와 아이거뿐만 아니라 쉬렉호른(Schreckhorn·4,078m)과 라우터라르호른(Lauteraahorn·4,078m), 피셔호른(Fiescherhorn·4,048.8m) 등 베르너 오버랜드의 명봉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지고, 그린델발트를 중심으로 푸른 산록에 자리잡은 알프스의 작은 마을까지도 한눈에 들어온다. 아이거를 내려다보는 사이 모두들 각오를 다진다.

"며칠 뒤 저 아이거 꼭대기에서 기념촬영하는 거예요. 파이팅 한 번 외치죠, 파이팅!"

뮌히 산행 후 클라이네샤이데크 캠프로 내려선 일행은 고소적응과 현지적응 차 나선 등반이지만 첫 번째 목표가 무난히 달성되자 분위기가 한층 고조되었다. 특히 4년 전 융프라우요흐 부근의 눈밭에 텐트를 치고 뮌히를 등반하려다 고소증세가 심해 뜻을 이루지 못한 유동진 선배의 표정은 누구보다도 밝고 들떠 있었다.

다음날, 날씨가 너무도 맑다. 이런 날 캠프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답답해하자 허욱 선배는 이틀 뒤 등반할 때 필요한 장비와 식량을 북벽 밑에 옮겨놓자고 한다. 점심 식사 후 암빙벽 장비와 식량을 담은 배낭을 메고 벽 밑으로 다가서는 사이 산록에는 아름답게 피어 있는 할미꽃 등 온갖 야생화들이 내일모레 북벽을 등반한다는 생각을 잊게 하고, 굴속에서 머리를 비꼼 내밀다 눈이 마주치면 쏙 들어가는 마모트를 볼 때면 입가에 미소가 맴돌곤 했다.

↑ [월간산]뮌히 정상에 오른 대원들. 왼쪽부터 허욱, 유동진, 기자.

하지만 이튿날(5월 27일) 아침 눈을 뜨자 어제까지 반짝이던 설산과 초원은 먹구름이 집어삼키고 굵은 빗줄기에 이어 싸락눈이 내린다. 심란한 분위기를 바꾸고자 그린델발트에 내려가 스테이크 한 접시씩 해치우며 기분전환도 하고 그제 시간이 없어 들르지 못한 얼음궁전을 여유 있게 구경하자며 융프라우요흐에 올라 한국에서 여행 온 신혼부부에게 덕담을 나눈 뒤 오후 느지막이 클라이네샤이데크로 내려서자 온천지가 하얗고, 우리의 보금자리인 오렌지색 텐트는 이글루로 변해 있다.

"괜찮을까요?"

두텁게 덮인 눈을 떨어내고 저녁도 맛있게 먹었지만 누군가 내일 날씨를 걱정할 때면 "그래도 스위스 일기예본데 틀림없겠지" 하고, 그러면 '맞겠지' 하다가 소리 없이 내리는 눈이 텐트를 눌러댈 때면 표정이 어두워진다. 자정이 넘어서면서 싸락눈이 텐트를 두드리는 소리에 내일 등반이 어렵겠다 걱정하면서도 스르르 잠이 들고 만다.

새벽녘 거짓말처럼 눈이 그치고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드러났다. 그러나 이틀 전까지 여름 바위로 느껴졌던 아이거 북벽은 흰 눈을 뒤집어쓴 채 한겨울 산으로 변해 버렸다. 그래도 계획대로 등반할 수 있다는 생각에 모두 표정이 밝다.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장비를 챙기는 사이 예비 장갑과 양말을 배낭에 넣었다 뺐다 반복하고 카메라도 넣을까 말까 망설인다. 옆에서 허욱 선배의 눈빛은 뺄 때면 부드러워지다 배낭에 넣는 듯하면 날카롭게 변한다. 북벽 등반에서 '무게는 적'이기 때문이다.

체력 소모를 덜기 위해 등산열차를 타고 아이거글레처(Eigergletscher·2,320m) 역에 내려선 우리를 역무원이 힐끗 쳐다보며 아이거 트레일은 어제 내린 눈 때문에 막혀 있다고 하더니 우리의 차림이 예사롭지 않다 생각했는지 들머리를 가르쳐준다.

이틀 전 온갖 야생화로 반짝이던 초원 길은 하얗게 변해 버렸다. 정강이나 무릎까지 빠지는 눈을 헤치며 걷자니 북벽에 닿기도 전에 허벅지가 뻐근해 온다. 짐을 눌러놓았던 돌멩이를 거둬내자 마모트가 건드리면 어쩌나 우려했던 식량이 그대로 있다. 우유에 빵으로 뱃속을 어느 정도 다진 다음 오전 11시 등반에 나선다.

"죽었어, 능선 너머로 떨어졌어. 죽었어"

선등은 사진기자인 염동우. 체격은 작지만 탈레이사가르(6,904m) 북벽과 로체(8,516m) 남벽 등 히말라야에서도 최고난도로 꼽히는 혼합거벽을 등반한 바 있는 클라이머다.

↑ [월간산]설상차로 밀어놓아 널찍한 눈길은 뮌히 산장으로 이어진다.

"갱도 입구까지는 얼레벌레 올라가는 코스야. 32년 전에는 퍼스트 필라 왼쪽으로 올랐는데 요즘은 거의 다 필라 오른쪽으로 오른다는군. 우리는 T설계를 가로질러 퍼스트 필라 우측 쿨와르로 접근한 다음 새터드 필라(Shattered Pillar) 우측의 갱도 입구까지 올라 오늘 등반을 마무리할 거야. 한 다섯 시간 걸릴 거야."

허욱 선배는 아이거 북벽 터널 공사 중 잡석을 버리기 위해 뚫은 갱도 입구(Gallery Window)에서 오늘 밤 묵을 거라면서 다른 한편으로 힘든 크랙(Difficult Crack)과 힌터슈토이셔 트래버스를 지나 제비의 집(Swallow's Nest)까지 올라갔으면 한다. 그렇다면 이튿날 하얀 거미와 엑시트 크랙을 지나 두 번째 비박을 하고, 그러면 다음날 일찍 정상에 선 다음 서릉을 거쳐 정오경이면 클라이네샤이데크로 내려올 수 있으리라는 복안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그림에 불과했다.

"아니 무슨 얼레벌레 길이 이렇게 위험해요. 확보할 데도 없잖아요."

앞장선 염동우는 한 피치를 끊을 때마다 확보에 신경이 곤두선다. 프렌드를 넣을 만한 크랙도 마땅치 않다. 어렵사리 프렌드를 크랙에 끼워 넣었다 하더라도 후등자가 도착해 흔들면 맥없이 빠져나오곤 한다. 염동우는 이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으나 그래도 심리적인 안정을 얻기 위해 확보물 설치에 최선을 다했다.

T설계는 바위절벽 하단에 가로로 형성된 약 200m 길이의 눈밭을 말한다. 어제 내린 눈은 푹푹 빠져 체력적으로 힘들게 할 뿐만 아니라 눈 상태가 안정되지 않아 불안하게 한다. 그래도 등반을 시작하니 아이거글레처 역에서 북벽으로 접어들 때 가슴을 죄어오는 듯한 긴장감이 사라지고 마음이 차분해진다.

"32년 전엔 새벽에 한 번, 해지기 전에 한 번 등 하루에 딱 두 번 해가 비쳤는데…. 하긴 그땐 발아래가 늘 구름이었으니까."

이틀 전 기슭을 따라 알피글렌(Alpiglen Stn.·1,615m)으로 내려갈 때 따뜻하게 보이던 북벽은 11시경 접근할 즈음 차가운 동굴로 들어선 듯 냉랭했다. 하지만 햇살이 내리쬐자 그래도 따스한 기운이 느껴진다. 사진과 개념도를 통해 루트에 대해 공부한다고 했는데도 바짝 다가서니 수시로 헷갈린다.

두 시간 넘게 T설계를 가로질러 약 400m 높이의 퍼스트 필라 오른쪽의 쿨와르로 들어섰다. 32년 전 다른 등반대의 족적을 좇아 로프도 없이 올랐다는 하단벽은 눈이 덮여 어디로 올라야 좋을지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염동우는 피크를 걸 만한 크랙이나 턱을 찾기 위해 피크로 눈을 거둬내 보지만 적당한 홀드가 눈에 띄지도 않고 설사 보인다 해도 밑으로 흐르는 크랙이다 보니 피크를 걸 수도 없다.

↑ [월간산]양옆이 낭떠러지를 이룬 설릉을 따라 뮌히 정상으로 향하는 대원들. 뮌히와 이어지는 트루그버그 산릉과 그 왼쪽으로 발처호른 산릉이 바라보인다.

그나마 첫 번째 피치에서 크랙에 박힌 녹슨 하켄을 발견하자 길을 제대로 가고 있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으나, 이번에는 눈이 녹아 형성된 물줄기를 가로지르느라 애를 먹는다. 낙수를 제대로 맞는 날이면 앞으로 사나흘간 젖은 상태로 지내야 한다는 생각에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다.

아슬아슬한 혼합벽을 세 피치 오른 다음 오른쪽 설벽을 따라 등반, 염동우는 오버행 아래 길다란 눈턱 위로 올라선다. 벌써 오후 5시가 지나고 있다. 아직 제1필라 정상 아래다. 허욱 선배는 모처럼 편안한 자리에 모였으니 차라도 한 잔 끓여 마시고 가자면서도 "이러다가 해지기 전에 갱도 입구까지 갈지 모르겠다"며 걱정스런 표정을 짓는다.

"저 아래 사람이 올라와요."

눈썹처럼 생긴 바위 밑에서 차 한 잔과 간식으로 허기를 달랜 뒤 다시 등반에 나설 즈음 밑에서 2인조 팀이 매우 빠른 속도로 따라붙고 있다. 우리보다 두어 시간 늦게 등반을 시작한 오스트리아 클라이머들이었다. 이들은 눈썹바위를 출발해 한 피치를 오를 즈음 우리를 추월하며, 이틀 뒤 정오경 낙뢰가 심하게 치기 때문에 오늘 헤드랜턴 불빛을 이용해 최대한 높이 오른 다음 내일까지 등반을 마칠 계획이라 한다.

우리가 나흘 계산한 루트를 이틀 만에 마치겠다니 자존심 상하는 일이긴 하지만 체력이 좋고 알프스 경험이 많은 그들과 견준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하기야 아이거 북벽 당일등반은 벌써 오래 전에 이루어졌고, 두어 달 전에는 2시간20분대에 북벽을 주파해 낸 클라이머가 나올 정도니까. 오스트리아 친구들을 샘내거나 부러워할 일이 아니라 지금은 어둡기 전에 갱도 입구에 무사히 도착하는 게 우리의 당면과제인 것이다.

우리가 앞장서 등반한 덕에 예까지 쉽게 올라올 수 있어 고맙다는 인사에 "이제부터 앞장서 눈길을 내달라" 부탁하며, "혹 헷갈릴지 모르니 갱도 입구가 보이면 설사면에 'X'자 표시를 해달라" 부탁했다.

어쨌든 그래도 길을 잘 알고 있을 것 같은 로컬 클라이머들이 앞장서 등반하니 길 잃을 염려가 없어 안심이 된다. 허욱 선배의 기억이 워낙 또렷하지만 32년 전 등반 때와 달리 벽이 온통 흰 눈에 덮여 있기 때문에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었다.

퍼스트 필라 꼭대기와 높이가 엇비슷해질 즈음 우측을 약 40m 트래버스한 다음 서벽을 타고 네 피치 더 오르자 염동우가 "갱도 입구가 보인다"며 환한 표정을 짓는다. 아직은 날이 환한 오후 8시30분. 9시까지는 등반을 마칠 수 있으리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진다. 한참 앞선 간 줄 알았던 오스트리아 클라이머들은 바로 위쪽 암벽에서 등반하고 있다. 1956년 독일 클라이머 두 명이 추락사한 '힘든 크랙'(Difficult Crack)이다. 아직 저기밖에 못 갔다면 오늘은 제비의 집 정도에서 등반을 마쳐야 하리라 생각하고 가파른 설벽을 가로질러 갱도 입구 테라스에 다 왔다 싶어 마음을 놓는데 염동우가 비명을 지른다.

↑ [월간산]T설계를 따라 트래버스하는 대원들. 아이거 북벽 하단에 T자형으로 형성된 눈밭이다.

"악! 오스트리아 사람이 떨어졌어요."

"죽었어, 능선 너머로 떨어졌어. 죽었어."

갱도 입구로 다가가는 사이 확보를 보던 염동우가 오스트리아 클라이머가 추락했다고 외치고, 허욱 선배는 "죽었다"고 소리친다. 뒤돌아보는 순간 힘든 크랙을 오르던 오스트리아 클라이머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사고당한 오스트리아 팀, 이틀 뒤 낙뢰 예고 알려줘

갱도 입구는 엊저녁 내린 눈이 말끔히 치워지고 반듯하게 다듬어져 있다. 폭설 직후면 철도회사 직원들이 이렇게 정비해 놓는 듯했다. 첫날 비박지에 무사히 도착했는데 마음이 무겁다. 불과 몇 시간 전 우리와 얘기를 나누면서 북벽에 우리 외에도 따스한 피가 흐르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했는데 그들이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착잡하다. 잠시 후 동료 클라이머의 확보를 받으며 다친 클라이머가 내려서는 모습이 보인다. 다행이다 싶어 마음이 놓인다. "도와줄 일이 있냐?" 큰소리로 제의하는데도 괜찮다고 대답하는 것을 보면 큰 부상을 당한 것 같지는 않다. 그렇지만 걱정스런 마음에 그들에게서 눈을 뗄 수 없다.

내일 새벽 6시부터 시작해야 할 등반을 생각하면 서둘러 저녁밥을 먹고 잠을 자야 할 테지만 누구도 그들을 못 본 체하지 못했다. 결국 갱도 입구로 안전하게 내려설 수 있도록 로프를 설치해 주어야 한다는 허욱 선배의 말에 염동우는 지친 몸에도 불구하고 설사면 위쪽으로 70m가량 로프를 깔아주고, 그 사이 다른 사람들은 눈을 녹여 뜨거운 물을 만든다.

밤 11시경 갱도 입구로 내려선 오스트리아 클라이머에게 뜨거운 커피를 가져다주자 너무도 고마워한다. 이어 한 시간쯤 지나 두 번째로 내려온 클라이머에게 또 한 잔을 가져다주자 우리의 친절에 어쩔 줄 몰라 한다. 갱도 안으로 들어와 다친 부위를 들쳐보았다. 사고자는 20m 가까이 허공을 날아 설벽에 패대기치는 순간 허벅지 살이 터져 버렸다.

유동진 선배는 배낭에 넣어두었던 진통제와 연고를 건네주면서 안쓰러운 표정을 짓는다. 사고자는 허벅지가 아파 쩔쩔매고 동료가 약을 발라줄 때는 너무도 쓰라려 고통스런 표정을 짓다가도 서로 눈이 마주칠 때면 멋쩍은 웃음을 짓곤 했다. 산꾼들이 행동하는 모습은 동양이든 서양이든 엇비슷한가보다.

↑ [월간산]힘든크랙에서 추락 후 갱도로 내려와 치료를 하고 있는 오스트리아 클라이머들.

사고를 당한 클라이머는 이번이 네 번째 아이거 북벽 도전이라고 한다. 두 번은 등반 도중 날씨가 나빠 포기했고 또 한 번은 앞 팀 사고로 포기해야 했다. 네 번째 도전은 역시 이렇듯 추락사고로 접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들은 사고를 당했음에도 우리의 등반을 우려하는 눈치였다. 무엇보다 이틀 뒤 정오경 낙뢰가 친다는 게 문제였다.

아이거는 알프스의 어떤 벽보다 낙뢰사고로 악명이 높다. 1981년 대학산악연맹 팀 대원 2명이 서릉에서 낙뢰에 맞아 사망하는가 하면 1986년 동국대 팀 대원 1명 또한 낙뢰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허욱 선배는 한동안 고민하던 끝에 다음 기회를 노리자 대원들을 설득하고 철수를 결정한다.

오스트리아 클라이머들을 도와주기 위해 깔아놓았던 로프를 회수하면서 그들이 끌고 내려올 수 없어 설사면에 버려둔 로프를 거둬다 주자 아예 감격스런 표정을 짓는다. 오스트리아 클라이머들은 부상 정도가 심해 아침 첫 열차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린다 하여 우리 네 사람만 아이거 북벽을 관통한 철길을 따라 클라이네샤이데크로 향한다.

어둡고 가파른 터널을 터덜터덜 걸어 내려간다는 정말로 지루한 일이다. 무엇보다 등반을 포기하고 캠프로 돌아가는 길이라 마음이 착잡할 수밖에 없다. 과연 나흘 뒤 날씨가 좋아질까. 아이거글레처역을 거쳐 캠프에 도착한 시각이 새벽 3시. 두어 시간 자고 나자 눈이 떠진다. 날씨가 너무도 좋다. 그냥 밀어붙일 걸…. 별별 생각이 다 든다.

허욱 선배는 분위기를 살려줄 생각에 물국수에 이어 비빔국수를 만들어 아침상을 차려주고 점심때는 파스타까지 만들어 내놓는다. 허욱 선배는 등반 리더이기도 하지만 주방장이기도 하다. 반면 염동우 대원은 사진기자 겸 톱쟁이에 선배들 나이에 비해 20~30년 차이나는 막내인지라 설거지 담당까지 맡아해야 했다. 아무튼 캠프를 치고 식량을 정리할 때는 대원 모두 "이걸 어떻게 다 먹느냐?"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지만 허욱 선배가 끼니때마다 한 번도 겹치지 않는 다양한 메뉴로 밥상을 차려주고, 대원들은 식욕을 조금도 잃지 않다 보니 1주일쯤 지나자 급속냉동 건조식품과 양념 정도만 남고 다 떨어져 가고 있었다.

허욱 선배는 아침과 점심을 먹는 사이 여러 구상도 하고 여러 제안도 한다. 2차 등반은 갱도 입구에서 시작해 1박 2일에 끝내자, 그러려면 침낭도 줄여야 한다…. 하지만 결론은 원래 계획 그대로 돌아갔다. 무엇보다 하루에 20시간 가까이 등반을 하고 나서 이튿날 컨디션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끔찍한 결과가 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32세의 염동우를 제외한 세 대원의 평균 나이는 평균 58세(기자는 엄청 손해 보는 나이다). 힘든 산행에 퍼지더라도 담배 한 대 피면 멀쩡해지던 20대 때의 체력을 생각할 수 없는 나이인 것이다.

"기분 전환이나 하죠. 아이거 트레일도 걸어보고."

이튿날 아침, 날씨가 너무도 멀쩡하다. 착잡하다. 이 기분을 눈치 챘는지 먼 산에서 뻐꾹새가 울어댄다. 이틀 전 북벽 등반에 앞서 남겨놓았던 장비도 찾을 겸 아이거 북벽을 다시 찾았다. 클라이네샤이데크와 아이거글레처 사이의 산중 연못가에서 바윗돌에 글자를 새겨 넣는 일을 하는 까까머리 석수장이가 우리를 보더니 반겨준다. 그는 이틀 전 망원경을 통해 우리가 등반하는 모습을 눈여겨보았는데 어제 보이지 않아 걱정했다며, 모바일폰을 통해 일기 웹사이트를 띄워 놓곤 내일은 나빠도 모레는 날씨가 괜찮아지리라 귀띔해 준다.

↑ [월간산]눈썹바위 아래 베르그슈른트에서 쉬고 있는 대원들.

아이거는 그린델발트 도착 첫날 본 그 모습 그대로였다. 이틀 전 돌멩이로 눌러놓았던 장비를 찾고, 그 날 오후 내내 오른 등로를 복기(復碁)하면서 모레 다시 등반할 헤크마이어 루트를 북벽에 짜 맞추면서 머릿속에 그려 넣었다.

아이거 북벽 기슭의 초원을 가로질러 알피글렌역으로 내려선다. 알피글렌은 32년 전 허욱 형이 북벽 아래 텐트 쳐놓고 지내다 날씨가 나쁜 날이면 내려와 술 한 잔 하다 다시 캠프로 올라가곤 했던 곳이다. 산장식당에서 치즈로 덧씌운 고기 요리로 점심을 먹으며 옛 추억을 떠올리다가, 등산열차를 타고 그린델발트로 이동해 곤돌라를 타고 표고 1,000m 가까이 차이나는 피르스트(First·2,061m)에 올라 융프라우, 뮌히, 아이거, 쉬렉호른 등 베르너 오버랜드의 명봉들을 조망하다 다시 그린델발트로 내려섰다.그린델발트의 인포메이션센터에 들러 날씨를 알아보자 내일보다 모레 날씨가 더 나쁠 것 같다고 한다. 제기랄, 도대체 딱 맞아떨어지는 게 없다. 유럽에서도 최고 수준의 과학을 자랑하는 나라가 스위스인지라 믿었는데 일기예보는 별 볼 일 없나보다 싶어진다.

"피르스트 전망대에서 아이거 북벽에 먹구름이 수시로 몰려드는 것 봤지? 오스트리아 친구들 얘기가 맞는 것 같아."

밤 10시쯤 되자 산 아래 그린델발트 일원의 밤하늘에 번개가 Z자를 그리며 요동을 친다. 융프라우 일원에서는 눈사태 굉음이 요란하다. 아이거는 너무도 조용하다. 날씨를 걱정하다 깜빡 잠이 들었다 깨어나니 오전 7시30분. 모처럼 긴 잠을 잤다. 내일 새벽 갱도 입구로 이동해 잠시 쉬었다가 2박 3일간의 북벽 등반에 나선다. 일찍 일어나는 것보다도 억지로라도 눈을 감고 쉬는 게 좋다는 생각에 침낭 안에서 꼼짝하지 않는다.

"아이거는 늘 저기 그대로 있어요"

오전 9시경, 캠코더, 카메라, 모바일폰 배터리를 역 부근의 스포츠용품점에서 충전시키고, 장비를 다시 정리한다. 짐을 가볍게 하려 애를 써보지만 줄일 게 없다. 단지 하루치 식량만 줄었을 뿐이다.

오전 11시가 넘어 늦은 아침을 먹는 사이 빗줄기가 텐트를 툭툭 친다. 공사 중인 스포츠용품점에서 울려나오는 드릴 소리와 역에서 관광객들에게 열차시각을 알려주는 확성기 소리가 신경이 쓰인다. 등반을 앞두고 예민해지나보다.

오전 11시30분, 구름이 아이거를 완전히 삼켜 버리고 빗줄기는 좀더 굵어졌다. 등반이란 게 기다림이 아닌가 싶어진다. 우리 캠프에서뿐만 아니라 캠프 뒤쪽 산림도로를 따르면서도 보았고, 아이거 트레일을 따르면서도 보았다. 그러면서 적기를 기다렸다. 하단부 등반도 했다. 그러다 날씨 때문에 도중에 포기를 하고 나서 또다시 날씨가 좋아지기를 기다린다. 등반은 이렇듯 기다림의 연속인가보다.

↑ [월간산]클라이네샤이데크에서 바라본 아이거 북벽. 뭉게구름을 정수리에 얹은 채 평온한 풍광이다.

오후 3시를 넘어서자 비가 눈으로 바뀐다. 닷새 전과 똑같은 패턴이다. 수시로 떨어내지 않으면 텐트가 주저앉을 듯 눈이 점점 많이 내린다. 이대로 몇 시간 더 눈이 내린다면 등반은 불가능하다. 모두 말을 잃는다. 32년 만에 북벽 재등반에 나선 허욱 선배보다 유동진 선배가 더욱 착잡한 표정이다. 4년 내리 겨울이면 토왕빙폭을 오르면서 칼을 갈았고, 1주일에 두세 차례 바위와 싸우면서 더욱 높은 벽을 등반할 준비를 해왔는데.

저녁을 먹고 난 뒤 유동진 선배와 염동우가 클라이네샤이데크역을 다녀오더니 숨을 몰아쉬며 내일은 날씨가 더 나빠진다는 소식을 전한다. 망치로 얻어맞은 듯 머리가 멍해진다. 허욱 선배는 텐트 밖으로 나가 눈보라가 거세게 몰아치는 하늘을 쳐다본다.

급히 역으로 내려가 직원에게 날씨를 물으니 모바일폰 모니터를 통해 일기예보를 보여준다. 스위스 전역이 짙은 구름이다. 내일도, 모레도. 서부영화의 뒷골목 건맨처럼 생긴 철도 직원은 손바닥을 수평으로 펴더니 목을 스윽 긋는다. 오늘 같은 날 등반하면 목숨을 잃는다는 뜻이다. 그는 지난해 이맘때 스위스 클라이머 두 명이 아이거 북벽을 등반하다 오늘 같은 날씨를 만나 모바일폰으로 구조요청을 했으나 헬기 수색에 실패해 결국 두 사람 모두 목숨을 잃었다며 이번에는 다른 생각하지 말고 돌아가라 권한다. 어깨가 무겁다. 입도 바짝 말라붙었다. 날씨 때문에 이렇게 애를 먹을 줄 알았다면 애초 시작도 하지 않는 건데-.

"아무래도 틀렸네요."

"…. 나야 추억 찾으러 왔다 치더라도 다들 아쉬워서 어떡하지."

"식당에 가서 맥주나 한 잔 하시죠."

비가 뒤섞인 눈을 맞으며 텐트로 돌아가 유동진 선배와 허욱 선배에게 철도 직원 얘기를 건네주곤 이 정도에서 등반을 접는 게 어떻겠느냐 묻는다. 허욱 선배는 괜히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해하고, 유동진 선배는 "그래도 첫 번째 시도 때 물러섰기 때문에 우리 모두 이렇게 몸이 멀쩡한 게 아니냐"며 "철도 직원 말마따나 내년 겨울 다시 한 번 도전하자" 다짐한다.

클라이네샤이데크역과 한 건물에 있는 식당에 들어서자 까까머리 석수장이는 여직원 세 명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고, 자리에 앉자마자 좀 전에 날씨를 물었던 '건맨'이 여직원과 함께 들어오더니 옆자리에 앉는다. 이틀 전 갱도 입구에 쉽게 갈 생각에 아이거반트역(Eigerband·2,856m)에 내릴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냉정하게 안 된다고 했던 여직원이었다. 그녀는 힐끗 쳐다보더니 나에게 나이와 아이들이 있느냐 묻는다.

↑ [월간산]다섯 시간이면 끝나리라 예상했던 하단벽 등반은 아홉 시간으로 늘어났다. 그래도 대원들은 아무 소리 없이 갱도 입구를 향해 한 발 한 발 올랐다.

"딸 둘에 아들 하나-."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웃음 띤 얼굴에 차분한 어조로 충고한다.

"요즘 같은 시기에는 위험해요. 안전이 최고예요. 올 겨울에 오세요. 아이거 북벽은 겨울에 날씨도 좋고 가장 안전해요. 아이거는 늘 저기 그대로 있어요."

그녀의 충고를 충분히 알아들었음에도 갑갑해진다. 아이거 북벽을 처음 등반하기 위해 다가갈 때 가슴을 죄어오던 긴장감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제대로 등반도 못 해보고 돌아가야 한다는 데에서 오는 아쉬움이었다.

"여기 맥주 한 잔 더!"

허욱 선배는 위스키 한 잔을 입에 털어넣었다.

아이거 북벽 등반 정보

겨울 시즌이 등반 적기

↑ [월간산]갱도 입구로 향하는 대원들. 위쪽 붉은벽 아래에 갱도 입구가 있다.

스위스 베르너 오버랜드 산군에 위치한 아이거 북벽은 알프스의 여러 벽 중에서도 험난한 거벽이다. 해발 3,970m 높이로 알프스 4,000m급 봉 가이드북에도 수록되지 못하는 봉우리지만 수직고 1,800m 높이의 북벽은 알프스에서도 등반길이가 길고 험난한 거벽으로 꼽힌다.

아이거 북벽에는 1938년 1938년 하인리히 하러의 오스트리아 팀과 안데를헤크마이어의 독일 팀이 합동으로 초등을 이룩하고, 1966년 존 할린의 미국 팀과 독일 팀이 합동으로 디렉티시마 루트를 개척하는 등, 현재까지 25개가 넘는 루트가 개척돼 있다. 그중 초등 루트인 헤크마이어 루트는 지금도 가장 인기 있는 루트로 산악인들의 끊임없는 도전을 받고 있다.

이렇게 오랜 세월 클라이머들의 도전이 끊이지 않는 아이거 북벽이 '죽음의 벽'이라 불리는 것은 무엇보다 북벽으로 푄현상을 일으키는 기류가 넘나들면서 예고 없이 국지적 폭풍을 유발시키고 그 결과 폭우와 눈 녹은 물로 젖은 암벽이 갑작스런 혹한에 의해 살얼음으로 뒤덮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폭설이 내릴 때는 물론 눈이 녹아내릴 때에도 끊임없는 낙석과 낙빙, 낙수가 쏟아져 내리고, 시도 때도 없이 낙뢰가 치면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러한 자연적인 험난함 때문에 1935년 첫 등반 이후 1991년에 이르기까지 이 벽에서 55명의 클라이머들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등반 요령

아이거 북벽은 등산열차를 타고 아이거글레처역까지 간다면 30분 이내에 등반 기점까지 다가설 수 있을 만큼 접근이 쉽다는 것 또한 등반가들에게는 매력적인 면이다. 알프스 등반을 통해 4,000m대 고소에 적응돼 있는 유럽권 클라이머들은 클라이네샤이데크의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룻밤 묵은 다음 이튿날 새벽 북벽에 접근해 1박2일이나 2박3일에 걸쳐 등반을 펼치고 있다. 반면 알프스 만년설이나 혼합벽에 익숙지 못한 국내 클라이머들은 뮌히나 융프라우 등반을 통해 고소에 적응한 다음 2박3일이나 3박4일 일정으로 북벽에 도전한다.

등반시기

현지인들의 말에 의하면 올해는 4, 5월이 가뭄이라고 할 만큼 비가 내리지 않아 등반하기에 좋았지만 이는 20년 만의 이상기온 때문이었다 말했다. 그러면서 아이거 북벽 등반은 대개 겨울, 특히 2월에 많이 이루어진다고 알려주었다. 특히 한국 산악인들이 주로 찾는 여름철에는 낙석과 낙빙, 낙수 때문에 등반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보험

아이거 북벽은 사고가 일어날 위험이 높은 벽이니 만큼 특히 외국인의 경우 보험을 들고 등반에 나서는 게 바람직하다. 그린델발트역 건너편 우체국 건물 2층 보험사무실(Mobilior)에서 단기보험을 받아준다. 사고 시 1만CHF(1스위스프랑≒131원·6월 말 현재 기준)를 보상해 주는 보험은 15일 기간은 123CHF, 30일은 198CHF이며, 2만CHF는 142CHF과 232CHF이며, 5만CHF 보상해 주는 보험은 168CHF과 278CHF 한다. 취재팀은 헬기 구조 시 비용이 많이 청구되기 때문에 5만CHF짜리 보험에 가입했다. 보험사무실에서 계약서를 작성한 다음 돈은 1층 우체국에 납부한다.

모바일 통신

스위스는 산악국가지만 데이터 통신이 어지간한 산악 지역에서는 다 이루어진다. 다만 국내에서 사용하던 모바일폰을 쓸 경우 사용료가 무한정 나오므로 조심하도록 한다. 특정 건물 내에서 이용이 가능한 무선인터넷(와이파이) 카드를 구입해 비밀번호를 입력해 데이터통신을 할 수 있으나 그보다는 스위스콤(swisscom)의 선불 유심카드인 '이지비프리(easy be free)'를 구입하도록 한다. 스위스 내에 어디서든 사용이 가능하며 1일 데이터무제한 사용료가 4CHF이다(SMS와 통화료는 별도). 19.90CHF짜리 이지비프리에는 5일간 사용할 수 있는 20CHF이 충전되어 있다. 1일 사용 기준은 23시 59분 59초까지이므로 첫날에는 일찍부터 사용하는 게 유리하다.

웹사이트

www.swisscom.ch/res/mobile/tarife/flat/easy-befree/index.htm

참조.

일기예보

등반 성패를 좌우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꼽을 수 있는 게 날씨다. 아이거 북벽을 등반하려면 클라이머의 능력에 따라 차이가 크지만 대개 나흘간 날씨가 좋아야 한다. 스위스에서는 'www.meteocentrale.ch'가 많이 이용하는 일기예보 웹사인트다. 메인 화면 상단 중앙의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영어' 단추 중 익숙한 언어를 클릭한 다음 스위스 전역 일기도 하단 우측 'Lowest temperatures' 란의 'Jungfraujoch'를 클릭하면 아이거를 비롯한 융프라우 일원의 3시간 간격 상세예보(당일 포함 5일)와 이후 3일치의 개략적인 예보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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