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뛰어 발굴한 숨은 맛집 (34) 서울 서대문구 냉천동 '어! 국수'

'월간외식경영' 2011. 7. 26.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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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내 실컷 먹었던 아버지 땀내 짙게 밴 국수

우리 식구는 모두 밀가루 음식을 좋아했다. 그래서 밀이 익는 첫여름이면 아버지의 일손은 더 바빴다. 정적인 시골 선비였던 아버지가 드물게 동적인 모습을 보이는 날이었다. 날을 잡아 밀을 베고 단으로 묶어서 말려둔다. 웬만큼 마르면 지게로 져서 마당에 쌓아놓았다가 맑은 날 타작을 하였다. 땡볕 아래에서 수건을 목에 두르고 절구통에 태질을 치는 아버지의 얼굴에는 굵직한 땀줄기가 흘렀다. 나중에는 거치적거리는 땀에 전 러닝셔츠도 벗어버렸다.

땀도 땀이지만 밀 타작을 할 때는 밀 이삭의 수염이 빠져나와 바늘처럼 사람 살갗을 파고든다. 자잘한 먼지들이 땀구멍을 막는다. 밀 타작을 한 번 하려면 간지럽고 따갑고 가렵기가 그지없다. 한 쪽 그늘에서 잔심부름을 하던 나도 덥고 온 몸이 따가웠다. 어린 마음에 '아버지는 얼마나 덥고 따가우실까'하는 안쓰러움이 일곤 하였다. 지금도 더위와 따가움을 참으면서 태양을 등진 채 밧줄로 밀단을 휘감아 억센 두 팔로 태질을 치던 아버지의 실루엣이 젊은 날의 아버지 이미지로 선명하게 남아있다.

불볕이 조금 누그러지고 바람기가 살짝 비치는 해거름이 되어서야 아버지의 타작은 끝이 났다. 어머니와 함께 풍구질을 하고 키로 까부르면 어느새 어둠이 밀려왔다. 밀 알곡은 가마니에 서둘러 담고 나머지 까래기는 갈퀴로 긁어모아 허섭스레기와 함께 모닥불을 놓았다. 모닥불이 어둠 속에서 매캐한 연기를 올리면 배가 고팠다. 그렇지만 이제부터 국수를 실컷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무척 흐뭇하기도 했다.

수확한 밀은 잘 씻어서 멍석에 며칠을 말렸다가 동네 방앗간에서 가루로 빻았다. 이 밀가루의 일부분을 어머니가 머리에 이고 산 너머 국수 기계가 있는 집에 가지고 갔다. 그 집 앞마당은 말리기 위해 널어놓은 국수발이 장관을 이루었다. 며칠 후 누런 포대 종이에 둘둘 말린 국수 다발들이 도착하면 집안에는 아연 화색이 돌았다. 삶아 먹고, 비벼 먹고, 어떻게 먹어도 국수는 맛있었다. 여름 내 실컷 먹을 수 있었다. 어른들은 배탈 난다고 나무랐지만 그냥 날 것으로 과자 삼아 먹어도 좋았다.

이열치열 실감하는 시원한 어묵국수 국물

친구가 알려준 국숫집, '어! 국수'는 찾기가 쉽지 않았다. 서대문 육교를 건너 몇 번을 오르락내리락 하다가 물놀이용 어린이 튜브만큼 작고 동그란 간판을 어렵게 발견하고서야 입구로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 집 밀 국수'는 아버지의 청춘과 함께 사라졌지만 국수를 좋아하는 내 식성은 변함이 없다. 비가 내리면 더 국수 생각이 간절하다. 비가 올 적마다 국수를 삶았던 어머니의 영향 때문이리라. 이 비가 그치기 전에 국숫집에 들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하필 국숫집에 가기로 한 날, 장마 끝에 오랜만에 햇볕이 쨍쨍 내리쬐었다. 그러나 날씨 탓에 국수 맛이 반감되리라 우려했던 내 걱정은 기우였다.

'어! 국수'의 기둥 메뉴는 역시 어묵국수(4500원)다. 비린내를 제거하고 잡내를 없애기 위해 내장과 똥을 제거한 남해 멸치를 보름동안 말렸다가 기본 국물을 내는데, 가다랑어포로 맛의 깊이를 보강하였다. 잘 우러난 감칠맛이 얼핏 우동국물 같다. 대학생과 젊은 직장인들에게 인기를 끌만한 맛이다. 국물과 함께 입 안에 넣은 중면의 면발에서 묵직한 중량감이 느껴진다. 소면을 씹을 때와는 또 다른 식감이다. 삼키기도 전에 입 안이 먼저 든든해진다.

고명으로 넣은 파, 팽이버섯, 김 가루도 면이나 국물과 잘 어울린다. 자칫 구운 김의 기름 냄새가 강해 조화를 깨트리는 경우가 많은데 김 가루와 파가 따로 놀지 않았다. 아마도 그것은 어묵국수의 하이라이트 요소인 어묵 때문인 듯하다. 꼬치에 모둠으로 푸짐하게 꿴 다양한 어묵이 국수 위에 한 꼬치 얹혀 나온다. 국수의 양도 많지만 여기에 푸짐한 어묵이 더해 한 끼 식사로 충분하다. 바로 이 어묵이 입 안에서 씹히면서 파와 김과 팽이버섯 맛을 서로 사이좋게 정리해준다. 냉방 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 어묵국수 국물의 따끈함이 다 먹을 때까지 유지되지 않은 점은 아쉬웠다. 그래도 마지막 한 방울의 국물까지 모조리 마셨다. 밖에는 폭염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개운하고 시원했다.

뜨거운 맛을 보기 싫다면 차게 먹을 수 있는 비빔국수(4500원)나 김치말이냉국수(4500원)가 좋다. 비빔국수는 고추장과 조미료를 넣지 않고 주인장이 개발한 비빔장을 넣었는데 구수한 매운 맛이 특징이다. 매운 맛이 강렬하지 않아 어린이들도 먹을 수 있다. 김치말이국수는 차가운 얼음육수에 신 김치를 잘게 썰어 넣고 김치국물과 무싹으로 매콤한 맛을 냈다. 얼음육수를 한 모금 들이키면 금방 소름이 돋는다.

이열치열을 느끼고 싶으면 어묵국수를, 이냉치열(?)을 체험하고 싶다면 김치말이국수를 주문하면 된다. 국수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삶은 계란을 따뜻하게 데워서 내오는데, 오랜 만에 계란 껍데기를 깨고 소금에 찍어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게리맨더링? 개미집? 재미있는 내부 구조

이 집에 처음 들어서면 희한한 실내구조에 손님들이 조금 어리둥절해 한다. 들어가는 입구 통로에 달랑 두 개의 식탁이 있는데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면 동그마니 작은 네 개의 식탁이 있다. 이 객실의 끝에서 왼쪽으로 꺽어 들어가야 비로소 주방과 또 다른 객실이 보인다. 이 객실의 오른 쪽으로 가면 좀 더 넓은 객실이 또 나온다.

그러니까 역 N자 모양으로 고만고만한 객실이 모두 4개가 붙어있는 셈이다. 마지막 객실은 가장 넓고 조명도 분위기가 있다. 저녁에 막걸리와 전을 시켜 즐기는 술손님들이 주로 차지하는 공간이다. 이 집의 유일한 흡연 가능 공간이기도 하다.

2007년 6월, 주인장 윤정호(34) 사장과 그의 모친 백경숙(60) 씨는 처음 13.22㎡(4평)의 좁은 공간에 식당을 열었다. 차츰 국수 맛이 알려지고 손님이 늘어나면서 형편 되는 대로 조금씩 공간을 넓혀나가다 보니 지금과 같은 특이한 공간이 되었다. 마치 예전 사회 교과서에 나와 있던 게리맨더링이나 자연 교과서에서 본 개미집의 구조를 닮아 있다. 손님들은 오히려 이런 구조를 재미있어 한다. 특히 연인들은 약속시간에 그들만의 '숨바꼭질'을 은근히 즐기기도 한다.

윤씨는 20대 때부터 장사가 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름대로 잘 할 자신이 있었다. 그의 장사 데뷔 무대는 노점이었다. 노점에서 벨트도 팔아보고 네일아트 용품도 팔았다. 그렇지만 그의 최종 목표는 번듯한 외식업체 사장님이었다. 그 전초전으로 야심차게 시작한 것이 떡볶이 노점. 그러나 그가 만든 떡볶이를 사먹는 사람이 없어서 3개월 만에 길거리 떡볶이 매장은 철수했다. 외식업을 좀 더 배워서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규모가 큰 외식 전문 업체에 들어가 매니저 생활을 하였다. 그곳에서 몇 년 내공을 쌓고 나와 모친과 동업으로 외식업에 재도전을 한 것이 바로 이 집이다.

그때는 지금처럼 성장하리라고는 예상을 못했다. 전 직장에서 배운 대로 '맛있고 푸짐하게 주는 식당'을 차리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6개월 쯤 지나자 대여섯 명만 들어와도 꽉 차는 식당에 만석이 되는 날이 많아지더니 점점 고객 수가 늘어났다. 처음 네 평짜리 식당이 지금은 79.34㎡(24평) 정도로 6배나 크게 자랐다. 식당 개업과 운영을 주도한 아들 윤씨가 어머니 백경숙 씨는 무척 장하고 대견스럽다.

해가 진 뒤 들판에서 돌아와 서둘러 국수를 삶아 늦은 저녁을 차렸던 어머니. 두세 그릇씩 먹고 나면 배가 잔뜩 불러 금방 졸음이 왔고, 밥상머리에서 잠이 든 내게 부채질로 모기를 쫒아가며 국수를 들었던 어머니의 구수한 땀내와 국수 냄새가 삼삼하다. 그때의 국수 맛을 다시 볼 수야 없겠지만 이 집 모자의 국수 맛도 만만치는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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