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폭우에 고립됐던 진주 동지·안계마을
저지대 마을 진입도로 침수..물 빠지자 농경지 초토화
매년 피해 반복..둑ㆍ도로 정비 건의 무시당해
(진주=연합뉴스) 김재홍 기자 = "우엉과 마는 우리지역 특산품입니다. 그런데 이번 비로 농사가 망한 것이나 다름 없어요. 매년 침수피해 대책을 호소했는데, 그때 뿐입니다. 이젠 누구의 말도 안 믿을 겁니다."
경남지역에 내린 많은 비로 고립됐던 경남 진주시 지수면 용봉리 동지마을과 안계마을에 11일 비가 그치고 해가 떴건만 일대는 처참했다.
외부와 통하는 마을의 유일한 진입도로를 덮고 있던 물도 빠졌지만 주민들의 근심은 더 깊어졌다.
매년 반복되다싶이하는 침수ㆍ고립 피해를 겪지 않기 위해 수년째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지만 관계기관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올해도 여지없이 드넓은 들녘에서 애써 키운 농작물이 상품 가치를 잃어가고 있고 농심은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동지마을에 이르자 버스 정류장과 저지대 주택가 담벼락에 물이 차올랐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2㎞ 남짓한 콘크리트 진입도로는 마을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지난 1988년 6월에 만들었는데 비포장 도로를 방불케했다.
균열이 생긴 비포장 도로 곳곳에 흙탕물이 가득했다.
동지마을 한열규(54) 이장은 "9일 아침부터 비가 쏟아붓기 시작해 낮 12시부터 물이 차올랐고 오후 3시에 진입로가 잠기면서 오후 4시에는 완전히 고립됐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앞서 지난 7일부터 10일까지 진주시에 370㎜가 넘는 폭우가 내리면서 경남의 젖줄인 남강 옆에 나란히 자리잡은 두 마을 진입도로가 물에 잠겼다.
마을 진입도로를 바로 앞에 두고 있는 한 이장의 2층 주택 1층에는 물에 씻은 그릇, 농기계, 옷 등이 가득했고 방안에는 아직도 물기가 흥건했다.
진입도로가 잠기던 날, 높은 곳으로 대피했던 한 이장은 언제 그랬냐는듯 맑아진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이날 동지마을과 안계마을 주민들은 논에 물에 잠겼지만 아직 볍씨가 여물지 않은 시기여서 큰 피해는 없을 것이란 걸 유일한 위안으로 삼았다.
동진마을에서 차를 타고 5분 거리에 있는 안계마을에서는 우엉과 마 수확 작업이 한창이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밭에서는 주민 30~40여명이 일을 하고 있었다.
빠른 작업을 위해 투입됐던 굴착기 1대가 질퍽이는 밭에 빠져 작업은 더뎌보였다.
뿌리채소인 우엉과 마는 10월과 8월부터 수확을 시작하는데 한 번 물에 닿으면 썩기 시작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피해를 줄이려면 서둘러 수확해야 한다는 게 마을 주민들의 설명이다.
바로 옆 돈사의 돼지들은 숨이 턱턱 막힐 듯한 습도와 더위에 지친 탓인지 바닥에 누워 꿈쩍하지 않았다.
돼지 1천마리를 키우는 이승민(39.여)씨는 "돈사에 물이 찼는데 돼지들이 스트레스를 받아 줄줄이 유산을 할 것같다"며 "앞으로 어미 돼지 젖이 안나오고 전염병에도 취약해지는데 걱정이 태산"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동네에는 둑도 없고 도로도 제대로 된 게 없어 줄곧 대책 마련을 건의를 했는데도 그때마다 '알았다'는 대답이 전부였다"며 "한 번도 우리의 고충을 들어준 적이 없다. 이제는 누가 와서 무슨 말을 해도 거짓말로 들린다"고 답답해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이날 현장을 방문했던 한나라당 김재경 의원 일행이 문전박대를 당하고 발걸음을 돌려야했다.
안계마을 김성문(49) 이장은 "도로가 물에 잠기면서 농지 전체가 물에 잠겼고 마을 주민들이 밤새 잠 한 숨 못 자고 고립됐다. 장마철만 되면 반복되는 일"이라며 "이번에는 제발 도로와 강둑 문제가 해결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진주시 관계자는 "남강댐 방류량이 늘면서 침수피해가 컸다"며 "남강은 국가하천이기 때문에 부산지방국토관리청이 4.15㎞ 구간에 사업비 320억을 투입하는 둑 축조 등 사업계획을 수립, 2012년부터 추진할 계획이며 배수장 설치 등도 시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pitbul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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