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리고 희망 - 2011 대한민국 리포트>"공로패는 뭘.. 그 돈으로 밀가루 사주면 호떡봉사 더 도움"

이상원기자 2011. 7. 6.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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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호떡' 나누는 부부 김영욱·김용자

6월29일 오전 10시 인천 서구 백석동 천사전문요양원 앞에는 이동 호떡차가 한 대 서 있었다. 1t 봉고III를 개조한 이동 호떡차 위에서는 김영욱(63)·김용자(61) 부부가 요양원에 계신 어르신, 인근 장애인복지시설에 수용 중인 장애인 등에게 나눠 줄 호떡을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남편 김씨는 덥고 후덥지근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와이셔츠와 갈색 줄무늬 넥타이 차림에 헌팅캡을 쓴 채 숟가락으로 밀가루 반죽 안에 설탕을 넣어 불판 위에서 호떡을 굽고 있었다. 아내는 옆에서 남편이 만든 호떡을 접시에 놓거나 종이컵에 일일이 담고 있었다. 이들이 탄 이동 호떡차에는 월별 호떡 봉사 스케줄이 빽빽이 적혀 있었다. 한 달에 평균 30곳 이상 봉사를 다니는 듯싶었다.

오전 10시30분 최금숙(여·94)씨를 포함한 할머니 6~7명이 걷거나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자 남편은 "사랑이 듬뿍 들어간 호떡을 어르신들께 무료로 드리니 실컷 드시라"고 말했다. 할머니들은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르겠다"며 컵에 담긴 호떡을 연방 입으로 가져갔다. 옆의 간호사들이 "뜨거우니 천천히 드시라"고 만류해도 소용이 없었다.

10여분이 지나자 이번에는 김모(32)씨를 포함한 장애인 5명이 직원 3~4명과 함께 나타나 왁자지껄 호떡을 먹기 시작했다. 남편은 개구쟁이처럼 이들과 스스럼없이 농담을 주고받고 가벼운 퀴즈를 내기도 했다.

그는 어르신과 장애인에겐 농담을 건네며 호떡을 나눠 줬지만 직원들이 와서 호떡을 먹을 때는 인상을 찌푸리며 "2개에 100원식 내고 먹으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또 "나보다 형편이 좋은 분들이 호떡을 공짜로 먹으려 한다"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아내는 이때마다 "직원들도 다 같은 사람이고 먹고 싶을 텐데 내버려 두라"고 만류하면서 호떡을 접시에 담아 직원들에게 일일이 건넸다.

부부가 이날 아침밥도 거른 채 오전 6시부터 반죽 준비 등을 거쳐 오전 내내 요양원에서 만들어 나눠 준 호떡은 모두 400여개. 남편은 그러나 "수용 인원이 적으면 안마도 하고 장기, 고스톱도 같이하면서 즐겁게 해 드릴 수 있을 텐데 인원이 많다 보니 호떡 만들기에 바빠서 같이 못 놀아 드려 미안하다"며 겸연쩍게 웃었다.

부부는 12시30분쯤 요양원 구내식당에서 서둘러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인천 부평구 부개2동 부흥초교 사거리 인근 자신들의 호떡 가게로 향했다. 다시 봉사 활동 자금을 모으기 위한 장사를 시작한 것이다.

부부가 이 같은 호떡 봉사 활동을 시작한 것은 주문진 일대에서 호떡 장사를 벌인 지 30여년 만인 2000년부터다. 처음에는 여름철 비수기에 호떡을 만들어 양로원 등에 무료 제공하는 방식으로 시작했다가 이후 제공 대상을 시립복지관 등으로 넓혔다. 노인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기 때문이다.

2008년 말부터 이 부부는 호떡 장사보다 봉사 활동에 더 몰두하게 됐다. 불우 이웃에게 즉석에서 따뜻한 호떡을 만들어 줘야겠다는 생각에 부부는 사재를 털어 트럭을 할부로 산 뒤 2000만원을 들여 이동 호떡차로 개조했다. 두 사람은 이 차를 몰고 설날 3일, 추석 3일 등만 빼고 연중 강릉, 춘천, 고성, 인제, 상주, 예천 등 강원도와 경북 소재 고아원, 양로원, 복지관, 군부대 등을 찾아다녔다. 비나 눈이 많이 내려 방문이 어려울 때는 집에서 호떡을 구워 택배로 보내기도 했다.

부부는 그러나 지난해 5월 강원도와 경북에서의 호떡 봉사를 접고 인천 부평구 부개2동으로 이사했다. 좀 더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봉사 활동을 벌이고 한 달에 60만~70만원씩 드는 차량 기름값 등 경비를 줄이기 위해서다.

남편은 "농촌 지역 복지시설 등이 방문객도 적고 사랑의 손길이 더 필요한 게 사실이지만 주말에 장사해 번 돈만으로 봉사 활동을 다니기가 쉽지 않았다"며 "언젠가 여건이 맞으면 다시 농촌 지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부부는 이 같은 공로로 그동안 수많은 상장과 공로패를 받았지만 정작 자신들은 이를 크게 반기지 않는 눈치였다. 아내는 "종이 상장과 공로패를 만들 돈으로 밀가루를 사 주면 봉사 활동에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사생활을 희생해 가면서 봉사에 전념하는 이유를 묻자 부부는 대답 대신 그동안 받은 감사의 글과 편지를 붙여 놓은 장부책 4~5권을 내놓았다.

이 장부책에는 한글을 깨우치지 못한 할머니가 여든 살이 넘어 처음 호떡을 먹게 해 줘 고맙다고 사회복지사를 통해 보낸 감사의 글, 시각장애인이 보낸 점자 감사 편지 등이 가득 담겨 있었다.

남편은 "소외당한 불우 이웃이 호떡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볼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며 "4개월 만에 다시 만난 주문진의 한 노인이 호떡 한 개에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 일부러 서울과 김포에서 제 호떡을 사 먹기 위해 찾아오시는 분들의 모습 등은 영원히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제정신이냐'는 핀잔을 자주 듣는다는 김씨 부부. 이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다른 이에게 나눠 준 사람만이 저희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인천 = 이상원기자 ysw@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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