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위에 들어선 산동네..천동 골목길

2011. 7. 1.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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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CBS 정세영 기자]

무작정 들어선 골목길. 난감했다. 길이 살짝 가지를 쳐 산으로 향해 있다.

'산으로 올라가야 하나?'

일단 아이들 키 높이도 안 되는 담장이 오밀조밀 ㅅ자 모양으로 만든 길로 발길을 옮겼다. 500~600m 이어진 길은 길게 하늘위로 뻗은 아파트 공사현장 담에서 끊겨 버렸다.

그 길로 자전거를 끌고 오던 할아버지.

"나야 여기 토박이지. 조짝에 천동 초등학교 1회 졸업생이여. 아버지까지 살았으니까 100년은 살았네. 허허"

할아버지는 담벼락에 자전거를 세우더니 말동무를 해줬다. 동네가 조용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여기 13가구 정도밖에 살지 않어. 대부분 하루 벌어 사는데 영세민 중에 영세민이여. 집 밖으로 나오는 사람도 거의 없어."

올해 일흔 둘이라는 할아버지는 아마 살아오면서 동네가 변한 것은 초가집이 슬레이트나 양철 지붕으로 개량된 것 밖에 없다고 했다. 바로 옆 아파트 공사 현장을 보며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는 글쎄..." 씁쓸한 웃음만 지었다.

할아버지는 산에 올라가면 그래도 사람이 있을 것이라며 그쪽으로 가란다. 산길은 험하니 빙 돌아서 가라고 알려준다.

◈ 아파트에 둘러싸인 섬 같은 산동네 '알바위'

할아버지가 알려준 동네는 말 그대로 산동네다. 얼핏 보아도 산 밑에서부터 정상까지 마치 집들을 산에 촘촘하게 박아놓은 것처럼 동네가 만들어져 있다. 대전시 동구 천동이지만 이 동네 주민들은 알바위 동네라고 부른다고 한다.

지난 3월부터 알바위 동네 골목길에서 벽화를 그리고 있다는 아저씨는 올라가는 길이 2개라며 한쪽을 가리켰다. 7~8m 높이에 있는 폐가를 이어주는 철제 사다리가 있었다. 위험하지만 이 길이 빠르다고 한다. 다른 길은 너무 가파른 길이라 힘들 것이라고 했다.

'끼끼익...끽'

밟을 때마다 소리가 나는 철제 사다리를 올라서니 동네가 나오기 시작했다.

장맛비가 그친 무더운 날씨도 날씨지만 골목길을 걷는 것, 산을 타는 것만큼이나 힘들었다. 빙빙 도는 골목길을 지나면 벽화 아저씨 말대로 산 정상으로 향하는 가파른 길이 나타난다. 그 길 옆으로 위로 집들이 하나 둘 자리잡고 있다.

돌계단을 힘들게 올라서던 할아버지에게 '힘드시지 않냐'고 괜한 것을 물어봤다.

"여기서 산지가 30년 됐는데 너무 높아서 힘들어요. 조기가 우리 집인데 꽤 높은 곳에 있지."

할아버지 집 앞에서는 하천인 대전천과 아파트가 한눈에 들어올 정도였다.

"너무 힘들면 운동삼아 걷는다고 생각하고 다녀"

할아버지 집에서 내려오는 길. '알바위 노인정'이 자리하고 있다. 할머니들은 덥다며 들어와서 물어보라고 한다.

"여기서는 알바위라고 하면 다 알아. 바위가, 돌이 많아서 알바위라고 했대."

올해 여든 여덟이 되신 할머니는 그 옛날 알바위의 사연을 털어 놓으셨다.

"이 동네가 원래 험한 산길이라 조 위로는 산짐승이 뛰어 댕겼는데 요즘은 등산객이 다녀. 내가 6.25때 여기 왔을 때는 서너 집 있었나. 공동묘지에 야산이었어."

옆 할머니는 훈수를 두셨다.

"요 옆 알바위 고개를 똥지게 메고 다니고, 물 길러 다니고, 참...서민들 애환이 담긴 고개여."

올라오면서 골목길 벽화가 참 이쁘다고 했더니 누워 있던 할머니가 웃는다. 그리고 나름의 이유를 설명해줬다.

"여기 개발을 할 수 없으니까 벽화라도 그려주는 것 같어. 그냥 구질구질하게 길을 놔두면 안 되니까 담에다 그리는 거지 뭐."

산동네라 더 힘들게 살아왔고, 요즘도 힘들다고 한다.

"뭐라도 하나 물건을 사갖고 오면 고통스러워. 택시가 들어올 수 있나. 길이 좋지 않아서 오토바이도 제대로 다니지 못해."

연탄을 배달할려면 지그재그 가파른 길을 리어카로 간신히 날라야 돼 연탄 값보다 일꾼 품삯이 더 나간다고 한다.

물끄러미 수다를 지켜보던 한 할머니는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개발이야 어차피 안될테니까 소방도로라도, 아니 여기 사는 사람 잘 다닐 수 있게 오토바이라도 올라올 수 있게 길이라도 좋게 만들어달라고 얘기 좀 해줘."

주민센터 관계자의 말로는 알바위 마을에는 100가구 정도가 살고 있는데 대부분 저소득층 어르신들이라고 했다. 개발 계획이 없어 간간이 길 정비를 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개발 바람의 뒤편에서 섬처럼 둥둥 떠 있는 알바위 동네에서 내려오는 길이 올라올 때 보다 그래서 더 힘들게 느껴지는 이유인가 보다.lotrash@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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