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1HR 역대 최장수 외국인 타자로 기록된 '가코'

2011. 6. 28.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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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2일, 넥센에 1-3으로 끌려가던 5회초 2사 1,3루에서 원정팀 삼성은 라이언 가코(30) 대신 대타 이영욱 카드를 꺼내 들었다. 외국인 타자 가코가 앞선 두 타석에서 모두 삼진으로 물러난 데 따른 실망감이 배인 질책성 선수교체였다.

그리고 다음 날인 6월 13일 오후, 삼성은 가코의 2군행을 확정지었고, 이로부터 4일 후 가코는 설상가상으로 배팅훈련 중 손가락 골절상을 당하며 사실상 한국에서의 시즌을 접어야 할 위기를 맞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가코의 한국무대 마지막 경기와 타석은 기록지에 삼진을 의미하는 'K'를 그려 넣는 것으로 끝이 날 가능성이 짙어졌다.

라이언 가코의 올 시즌 성적은 58경기 출장에 타율 2할 4푼 3리. 6월 27일 기준으로 규정타석을 넘긴 8개구단 타자들 45명 중 가코의 자리는 멘도사 라인에 가까운 마흔 두 번 째(42위)다.

그러나 타율보다 가코에게 있어 정작 아쉬웠던 점은 장타력이었다. 그가 쳐낸 2루타 이상의 장타는 홈런 1개를 포함, 고작 9개 뿐이었다. 수치로 나타난 그의 장타율은 3할 2리. 전체순위는 타율보다도 한 계단 낮은 43위였다. 그렇다고 발이 빠른 것도 아니었다. 도루 '0'(메이저리그 통산 도루기록 역시 '0')에 출루율도 41위.

그나마 가코가 근근히 한국생활을 연명할 수 있었던 것은 2할 8푼 1리의 득점권 타율(전체 30위)과 상위권을 유지한 팀 성적 덕분이었다. 부진이 길다 싶으면 수혈(?)에 가까운 적시타를 때려 미련을 갖게 하고, 여기에 최형우와 박석민 등 국내타자들의 분전을 더해 가코는 한국야구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삼성으로부터 비교적 장기간 부여 받을 수 있었다. 착한 인성을 가졌다는 주위의 평판은 덤.

최근 국내프로야구 팀들의 외국인선수 포지션 선호도가 투수 일변도로 치닫는 세태에서 타자를 선택하는 까닭은 오로지 하나다. 국내타자와는 차원이 다른 파워와 위압감을 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막 후 약 3개월간 가코가 보여준 모습은 기대치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영문 철자는 틀리지만 삼성 라이온즈와 이름마저 비슷한 라이언 가코에게 사실 삼성은 많은 기대와 희망을 품고 있었다. 이유는 가코가 메이저리그에서 거둔 성적과 비교적 젊은 나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2006~2009년 사이 라이언 가코는 클리블랜드와 샌프란시스코를 거치며 1518타수 424안타, 타율 2할 7푼 9리에 55홈런 247타점, 3할대 중반의 출루율과 4할대 중반의 장타율을 기록했을 만큼 견실한 내용의 스탯을 보유한 선수였다.

미국에서의 14년 선수생활 대부분을 마이너리그에서 보낸 넥센의 코리 알드리지(32)와는 통계이력상 비교조차 불가능했고, 3년간 롯데에서 강인한 인상을 심어준 카림 가르시아(현 한화)의 메이저리그 기록이 2할 4푼대의 타율과 66홈런 212타점이었음을 감안하면 가코가 그려낼 그림에 대한 삼성과 팬들의 설레임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4월 30일 한화와의 홈경기에서 때려낸 처음이자 마지막 솔로홈런 한 방을 끝으로 가코의 홈런 세레모니는 두 번 다시 재연되지 않았다.

한국프로야구가 외국인선수에게 처음 문호개방을 한 것은 1998년. 이후 만 13년간 수 많은 외국인 타자들이 한국무대를 거쳐갔다. 그 중에는 타이론 우즈(OB, 미국)처럼 시즌 MVP(1998년) 자리에까지 올랐던 선수가 있었는가 하면, 2003년 보이 로드리게스(롯데, 푸에르토리코)처럼 개막 후 고작 7경기(1할대 타율, 홈런 0) 만에 짐을 싸야 했던 선수도 있었다.

지금까지 외국인 신분으로 한국프로야구 타석에 섰던 선수의 수는 90명을 약간 상회하고 있다. 그들이 저마다 거둔 성적은 천차만별이지만 공통적인 현상은 타율은 몰라도 장타력이 부족한 선수는 오랜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일찍 자국으로 돌아갔다는 점이다.

그러면 가코처럼 1HR에 머물면서도 국내무대에서 비교적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이어갔던 과거 속의 선수는 누가 있었을까?

2008년 KIA의 윌슨 발데스가 1HR으로 47경기(타율 2할 1푼 8리)를 버텨낸 것이 가장 길었다. 그 다음은 2000년 해태 아르키메데스 포조의 39경기(타율 2할 1푼 3리)와 같은 해 롯데 에드워드 우드의 35경기(타율 2할 5푼 5리)가 뒤를 잇고 있다.

이 외에도 2002년 롯데의 크리스 해처(타율 1할 6푼 2리)와 SK의 타이론 혼즈(타율 3할 1푼 7리)가 각각 25경기와 23경기를 뛰다가 돌아갔다.

그러면 한 술 더 떠 HR '0'를 역사에 새기고 떠난 외국인 타자는 누가 있었을까?

2006년 롯데의 존 갈(타율 2할 4푼 3리)이 43경기 124타석, 1998년 해태의 션 헤어(타율 2할 6리)가 29경기 72타석에서 홈런을 기록하지 못해 통산 '0'HR 외국인 타자로 나란히 역사에 올라있다.

공교롭게도 해태와 롯데 소속의 타자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어찌되었든 간에 2011년 삼성 라이언 가코가 끌어온 58경기 220타석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어 1HR 미만 최장수 외국인 타자 기록은 가코의 차지가 될 듯 싶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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