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방치가 씁쓸한 6·25 탄흔

2011. 6. 25. 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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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대교·남대문 등 곳곳에… 관리 무신경안내판조차 없고 콘크리트로 메우기도"현장 보존해 전쟁 아픔 되새겨야" 목소리

"한강철교 교각 수십 군데에 구멍이 나 있길래 처음엔 부실 공사를 한 줄 알았죠. 그런데 알고 보니 6.25 전쟁 당시 총탄 흔적이더라고요."

1976년 우연히 한강철교의 탄흔을 발견한 택시기사 손복환(66)씨는 이후 서울 전역에서 탄흔을 찾기 시작했다. 남대문, 동대문 등 국보급 문화재부터 한강대교, 증산교 등 서울시내 수십 곳에서 탄흔이 발견됐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6.25 전쟁 당시 탄흔'이라는 안내문은 없었다. 손씨는 84년 안내판을 세워 현장을 보존하고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자는 건의서를 국방부 등에 냈지만 "탄흔은 반공 홍보에 큰 의의가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6.25 전쟁의 생생한 증언인 전쟁 당시의 총탄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지만 이처럼 안내나 보존 조치 없이 방치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일보가 한강대교, 한강철교, 동십자각, 증산교 등 탄흔 현장을 답사, 사진으로 찍어 국방부 군사편찬위원회에 자문한 결과, 서울 전역에는 아직도 수십 곳의 6.25 당시 탄흔이 남아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쟁사 연구 및 각종 군사자료 보존을 담당하는 국방부 직속 군사연구기구인 군사편찬위원회에 따르면 이 탄흔들은 50년 6월과 9월 격전에서 발생했다. 군사편찬위는 "50년 6월28일 벌어진 치열한 시가전과 이후 7월3일까지 한강을 사이에 둔 총격으로 미아리-돈암동-광화문-한강을 잇는 지점의 오래된 건물과 교각에 탄흔이 생겼고, 9월28일 서울수복작전 당시 총격전으로 연세대-서울역-광화문 일대에도 무수한 탄흔이 생겼다"고 밝혔다. 실제로 서울 은평구 불광천에 있는 증산교의 교각에는 지름 20㎝ 깊이 5㎝의 크기의 탄흔 등 중포(구경 105~155㎜의 야포) 및 소총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탄흔 100여개가 전쟁의 참혹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탄흔에 대한 관리나 보존은 전무한 실정이다. 탄흔을 관리하는 정부 부서가 없다 보니 서울시에 탄흔이 있는 문화재나 건물, 교각이 몇 개나 되는지 기초 자료조차 없다. 서울시는 탄흔 자체만을 문화재로 지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문화재과 관계자는 "건축물 자체가 역사적 의의를 가져야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고, 우리는 문화재에 대해서만 안내판을 설치한다"고 말했다.

탄흔 관리에 대해 국방부 군사편찬위 관계자는 "국방부에서 서울시내 탄흔을 다 조사할 수도 없고, 탄흔 유무를 떠나 건축물 자체가 6.25 전쟁에 대한 상징성이 있을 경우 보훈처에서 안보사적지를 유적화하는 작업을 한다"고 밝혔다. 보훈처는 "큰 전투나 중요한 기관이 있었던 사적지는 조사했지만 탄흔을 따로 조사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탄흔이 훼손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강대교 북단 머릿돌의 경우 탄흔을 시멘트로 덕지덕지 메워 놓은 상태다. 기차 철로를 받치는 다리인 서울 용산구의 원효거더교는 교각에 탄흔이 100여개 넘게 남아있었지만 경의선복선전철 사업이 진행되며 지난해 9월 철거되고 말았다.

손씨는 "6.25 전쟁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점 잊혀져 가고 6월25일이 무슨 날인지 조차도 모르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탄흔은 일상적으로 접하는 역사 교육 현장이 될 수 있다"며 "그 흔한 안내판 하나 세우는 게 뭐가 그리 힘든지 모르겠다"고 씁쓸해했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사는 김권영(73)씨는 "평생 서울에서 살았지만 탄흔이 있다는 얘긴 처음 들었다"며 "요즘 사람들은 전쟁의 무서움을 잘 모르기 때문에 탄흔 안내판을 세워 놓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탄흔은 돌벽이 패여 부서진 흔적에 불과하지만 전투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증거"라며 "탄흔에 대해 안내한다면 젊은이들이 멀리 있는 줄로만 생각했던 전쟁 현장이 집 주변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백 마디 말을 뛰어넘는 체험 학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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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보라기자 rarara@hk.co.kr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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