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보편주의 복지국가를 향한 열망
총선과 대선이 있는 내년은 1987년 6월항쟁이 일어난 지 25주년이 되는 해다. 군정종식과 민주헌법 쟁취를 위한 6월항쟁은 '정치적 민주화'라는 결코 되돌릴 수 없는 거대한 변화를 만들었다. 그런데 민주항쟁 25주년을 1년 앞둔 오늘, 한국의 민주주의는 실질적인 심화와 발전을 이루었는가? 아니다. 빈곤과 외로움에 지친 노인들이 세계에서 가장 긴 자살의 행렬을 이루고 있고, 실업과 근로빈곤, 비정규 일자리 환경으로 절망적 빈곤의 늪에 빠진 중장년층과 줄 세우기 입시경쟁으로 피폐해진 학생들의 자살도 길게 이어지고 있다. 이건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아니다. 6월항쟁 24주년이 되는 오늘, 대한민국은 정치적 민주주의는 달성하였으되, 경제사회적 민주주의로부터는 한참 멀어진 승자독식의 경쟁논리가 지배하는 신자유주의 시장만능국가일 뿐이다.
우리나라는 합계출산율 세계 최저의 아이 안 낳는 나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아동수당이 없는 유일한 나라, 지나친 사교육비로 중산층 가계조차 허리가 휘는 나라, 세계 최고로 대학 등록금이 비싼 나라, 일자리 양극화와 세계 최고의 비정규직 비율을 가진 나라다. 그뿐만 아니라 대상자의 30%가 넘는 넓은 사각지대를 가진 저부담-저급여의 고용보험과 국민연금을 가진 나라, 국민건강보험이 있음에도 의료비 불안으로 국민의 70%가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한 나라, 공공임대주택 비율이 4%에 불과해 평생 일해도 내집 마련의 가능성이 낮아 메뚜기처럼 이사 다녀야 하는 나라, 푼돈 수준의 기초노령연금으로 노후가 불안한 나라, 그래서 '국민총생산 대비 사회복지비 지출' 비중이 8.5%로 OECD 평균인 21%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복지후진국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본격화된 감세와 규제완화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가난한 일부 국민만 선별하여 복지를 제공하는 잔여주의 선별적 복지체제가 우리나라 경제사회의 심각한 양극화와 만성적 민생 불안을 초래한 원인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거대한 변화를 위한 항쟁의 조짐들이 도처에서 나타난다.
첫째, 무거운 등록금 부담에 짓눌린 대학생들의 반값 등록금 투쟁이 10일 넘게 계속되고 있다. 87년 민주항쟁 이후 24년 만에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이슈, 즉 등록금 부담이라는 경제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해 대학생들이 투쟁의 대오를 형성하여 길거리로 나선 것이다. 더불어 신자유주의의 과잉과 경제사회적 민주주의의 결핍으로 인한 20대의 절망감은 지난해 6·2지방선거에서 보듯 20대 투표율의 급속한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둘째, 87년 민주항쟁의 상징이었던 '넥타이 부대'가 귀환하고 있다. 지난 4·27 재·보선에서 그랬고, 이번 반값 등록금 투쟁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촛불 합류가 그러한데, 실제 70% 이상의 국민은 등록금 부담의 해소를 원하고 있다. 셋째, 마이클 샌델의 < 정의란 무엇인가 > 와 신자유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한 장하준의 책들이 100만부나 팔렸다. 이는 신자유주의를 넘어선 경제사회적 민주주의, 즉 보편주의 복지국가를 향한 우리사회의 지향과 열망을 보여주는 좋은 증거다. 이를 통해 20대, 30대, 40대가 70%에 가까운 압도적 지지를 몰아주는 가치 중심의 세대연합군을 형성하고 있다.
이미 민심의 바다에서는 경제사회적 민주주의를 달성하기 위한 제2의 민주화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초래하는 민생의 불안과 고통을 해결하려는 이러한 거대한 변화의 열망을 보편주의 복지국가 건설로 온전히 모아내려는 전국 수준의 조직적 활동이 요구되는 바, 우리가 지금 '복지국가 만들기 국민운동'을 열심히 추진해야 하는 이유다. 그리하여, 2012년의 총선에서 복지국가 정치세력이 압승을 거두고, 대선에서 보편주의 복지국가 건설을 내세운 대통령이 당선되고, 2013년 2월 취임과 함께 '제1차 복지국가 건설 5개년 계획'이 선포되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할 수 있고, 해야 하며,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이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 이상이|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제주대 교수 health21@jejun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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