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맛집 고발 영화 '트루맛쇼'의 모든 것

이오성 기자 dodash@sisain.co.kr 2011. 6. 3.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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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환 감독(42)은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김 감독은 "나는 TV에 나오는 맛집이 왜 맛이 없는지 알고 있다"라는 도발적인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영화 < 트루맛쇼 > 로 대한민국 방송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MBC PD 출신인 김 감독은 맛집 프로그램을 비판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스스로 식당을 차려 그 부패 현장을 생생히 영상에 담았다(63쪽 상자 기사 참조).

5월6일 폐막한 전주국제영화제(JIFF)에서 딱 두 차례 상영되었을 뿐인 이 70분짜리 다큐멘터리 영화는 알음알음 입소문을 타더니, 급기야 올 상반기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는 영화 중 한 편이 되었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 트루맛쇼 > 같은 현실을 경고해왔다. '주례사 비평' 일색인 온갖 맛집 기사, 박수 치고 환호하는 것으로 '식당 띄워주기'에만 골몰하는 맛집 방송 프로그램에 대해 아무도 입을 열지 않을 때, 그는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영화 제작 과정에서 김재환 감독과 인터뷰한 바 있는 그는 전주영화제에서 < 트루맛쇼 > 를 직접 본 뒤 곧바로 자기 블로그에 '문제적 영화'의 등장을 알렸다.

ⓒ시사IN 조남진 영화를 만든 김재환 감독(왼쪽)과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오른쪽)가 박찬일 요리사(가운데)가 일하는 레스토랑에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 트루맛쇼 > 개봉(6월2일)을 앞두고 두 사람이 만났다. < 트루맛쇼 > 보다 더 영화 같은 우리 사회의 현실을 잘근잘근 씹기 위해서다. 대상은 주로 미디어업계였고, 나아지지 않는 우리 사회의 미각 수준도 시빗거리였다. 방담 장소는 서울 홍익대 앞 한 레스토랑이었다. 이곳의 셰프 박찬일씨 역시 우리 사회의 음식 문화에 대해 비판을 아끼지 않는 독보적인 요리사다. 요리하는 틈틈이 그도 이번 방담에 '찬조 출연' 해주었다.

사회

:아직 영화 개봉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큰 화제다.

김재환

감독(김):보도자료 한 장 돌린 적 없는데 사무실에 출근하면 매일 7건 정도 인터뷰 요청이 와 있다. 그런데 지금껏 이 영화를 직접 본 기자가 10명밖에 안 된다. < 트루맛쇼 > 가 음식을 먹어보지도 않고 맛있다고 띄워주는 방송을 고발한 것 아닌가. 영화를 보지도 않고, 보여달라고도 않고 기사 쓰는 기자가 너무 많다. 이것 자체가 이미 퍼포먼스다.

박찬일

요리사(박):그런데 조선·중앙·동아 같은 경우는 기존 공중파와 대립각을 세우기 위해 기사를 크게 써준 것도 같다. 자기들 '종편' 사업이 걸려 있으니까.

:영화 만들고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너는 이 영화 만들 이유가 없다'라는 거다. MBC 정규직 PD 출신에, 방송사로부터 70∼80% 매출을 올리는 외주 제작사 대표가 왜 방송사를 공격하느냐. 그래서 < 트루맛쇼 > 를 공격하는 사람들이 찾아낸 게 '종편 사주설'이다. 종편 지원을 등에 업고 기존 공중파를 까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거다. 그러나 큰 틀에서 보면 < 트루맛쇼 > 는 종편에 재앙이다. < 트루맛쇼 > 때문에 방송 제작 환경이 폭로되고, 앞으로 협찬받기가 어려워지면 종편이 제일 힘들어진다.

:신문사의 맛집 소개 기사는 이미 광고국 소관으로 넘어갔다더라.

:나는 신문사들이 영화를 무시할 거라 생각했다. 조·중·동이 전부 다 계열사로 스포츠신문을 갖고 있지 않나. 이들 신문이 그동안 한 일이 바로 맛집 장사였다. 기사 실어주고 돈받고, 나중에 사진 장사까지 했다.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황):지금 문제는 '맛집이 조작되었다'라는 이야기만 계속 나오고, 방송 제작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가 묻히는 것이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우리나라 방송산업을 세계 일류로 육성한다고 그랬다. 영화계를 놓고 이야기해보자. 만약 CGV 같은 배급사가 박찬욱·봉준호 감독에게 제작비 50∼90% 대줄 테니까 영화 만들라고 하면서 모든 권리를 다 가져간다면 어떻겠나. 나머지 모자라는 돈은 영화에서 박카스를 마시든, 협찬을 받든 해서 맞추라고 한다면…. 말도 안 되는 맛집 프로그램은 그런 환경에서 나오는 거다.

:한 공중파 텔레비전 프로그램 작가가 있다. 경력이 10년 되었는데도 음식에 대한 정보나 깊이가 나아지지 않더라. 일단 작가가 현장에 가지도 않고 음식점을 섭외한다. PD는 카메라맨이랑 와서 나중에 찍고. 그러니까 어떤 음식점이 방송에 나오는데 작가도, 카메라맨도, PD도 그 맛을 아무도 모른다.

:요즘은 제작비 줄이려고 VJ가 촬영하고, 인터뷰하고, 편집까지 다 하니까 더 문제다.

:방송이 달라진 게 뭐냐 하면, 전에는 방송 인터뷰를 할 때 내가 알아서 말하면 되었다. 그런데 요즘은 아예 영화 콘티 같은 걸 갖다준다. 말할 때 어떤 표정을 지으라는 것까지 대본에 있다.

< 트루맛쇼 > 에는 제작진의 지휘에 따라 감탄을 연발하는 가짜 손님들이 등장한다.

:공중파 못 들어간 사람들 처우는 더 형편없다. 한 케이블 음식 전문 채널은 PD 연봉이 2000만원밖에 안 되더라. 방송인 꿈 품은 젊은 친구들이 그런 곳에서 '새끼 PD'로라도 억지로 일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런 미디어업계에 변화가 일어났으면 하는 순진한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미디어에 대해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게 '맛'이라고 봤다. 영화제에서 350명밖에 안 본 영화가 왜 화제가 되었느냐 하면, 많은 사람이 감정이입했기 때문일 거다. 나도 그런 맛집에 속아봤다거나, 혹은 나도 그런 비리를 접해봤다거나.

사회

:언제부터 돈 받고 방송 만드는 문화가 생겼는지 알고 있나?

:내가 처음 들은 건 2003∼2004년쯤이다. 그때 내가 < 찾아라 맛있는 TV > 에 조언을 해주고 있었는데 작가에게 어떤 괜찮은 레스토랑을 한 곳 소개하자고 했다. 그때 방송국 관계자가 '스타의 맛집' 코너에 나가는 게 광고 효과가 가장 좋다며 500만원을 내면 된다고 했다. 연예인 출연료 명목이었다.

:소문은 나도 많이 들었고, 실제로 확인한 건 결국 < 트루맛쇼 > 가 처음이다. 영화 만들 때 < 찾아라 맛있는 TV > '스타의 맛집'에 나간 연예인과 방송인 20명에게 '진짜 그 집이 네 단골집이냐'라고 물어봤다. 그중 딱 한 명만 자기 단골집이라고 털어놓더라. 그는 MBC 아나운서였다. MBC가 왜 자기들은 (협찬 문제에서) 깨끗하다고 펄쩍 뛰느냐 하면 MBC나 제작사로는 돈이 안 들어왔기 때문이다. 대신 MBC는 A급 스타 데려오라며 외주 제작사를 족친다.

:방금 말한 그 레스토랑에 문화예술계 사람이 많이 오는데, 그들을 출연시키면 되지 않느냐고 했더니, 안 된다더라. 시청률 나오려면 무조건 잘나가는 연예인 데려와야 한다고.

영화 제작진이 일산에 직접 차린 식당 '맛

:연예인들도 반성해야 한다. A급 연예인들은 상상 이상으로 잘 먹고산다. 그런데도 많은 이가 프랜차이즈 식당을 창업한다. 방송가에서는 토요일에 < 개그콘서트 > 녹화가 없다는 말이 있다. 개그맨들이 토요일마다 식당 개업 행사를 뛰느라 녹화를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런 음식을 우리가 소비한다는 게 문제다. 새 식당이라고 있다. 프랜차이즈 창업으로 유명한 백 아무개씨가 만든 곳인데, 젊은이들이 혹할 만한 이상한 조합의 음식을 낸다. 그런 음식 맛있게 먹고 사는 게 우리나라 소비자 수준이다. 서울에서 유명한 곰탕집 주인이랑 이야기를 했더니, 원래 안 넣었던 조미료를 10년 전부터 넣는다고 하더라. '왜 넣어요?' 하고 물었더니 그분 대답이 '조미료 넣었더니 손님들이 맛있다고 바글바글대잖아'였다.

사회

:장사 잘 된다고 다 진짜 맛집은 아니던데.

:식당 주인들에게 어떻게 하면 돈 잘 버느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다. 실제로 돈 잘 버는 요리법은 있다. 맵게, 짜게, 화학조미료 적당히 넣으면 된다(웃음).

사회

:식도락 열풍이 분 지 20여 년 되었는데, 왜 우리 미각 수준은 크게 나아지지 못한 걸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대로 된 음식을 못 먹어봤다. 1960년대에 농촌 인구가 일제히 도시로 이동한 뒤에 사람들이 농산물의 원래 맛을 모른다. 1960년 이후 출생자들은 진짜 밭에서 딴 토마토 맛이 어떤지 모른다고 봐야 한다. 50년 이상을 도시 노동자로 살면서 입맛이 쓰레기가 된 셈이다. 영국 제이미 올리버 같은 요리사가 말하는 게 바로 '음식은 주방이 아니라 자연에서 만들어진다'는 점을 환기시켜주는 거다. 그런데 우리는 7성급 호텔 요리사니, 에드워드 권이니 하며 허위의식에 젖어 있다.

: < 미슐랭 가이드 > (세계 최고 권위의 여행·음식 평가 잡지)에 나오는 곳 중에는 심지어 식당에서 직접 텃밭을 가꾼다는 이유로 별 세 개를 받은 곳도 있다. 자연 그대로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사회

:식도락가 중에 < 미슐랭 가이드 > 를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로 우리나라의 미식 욕구도 크게 높아졌는데, 왜 방송에서는 괜찮은 음식 프로그램을 만들지 못할까.

폐업 공지문

:시청률이 안 나오니까. 좋은 프로그램 만들면 실패하고, 시청률에 영합하면 방송사 간부들로부터 칭찬받은 게 오래 학습된 결과다. 내가 처음 생각한 영화 제목은 '맛'이었다. 로알드 달의 단편소설에서 따왔다. 그러다 어느 날 출근하다 '트루맛쇼'로 바꿨다. 사람들이 내가 < 트루먼쇼 > 를 보면서 받은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실은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조작된 세상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가져봤으면 좋겠다는 취지다. 사람들은 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보는데, 그 미디어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이 나는 불편해서 참을 수 없었다. 그런 내가 이상한 건가?

:이상한 거다(모두 웃음).

사회

:반복되는 질문이지만, 가장 궁금한 것도 왜 이 영화를 만들었느냐다.

:(잠깐 생각하다가) 아이템 되는데, 그동안 아무도 안 만들었고, 앞으로도 아무도 안 만들 것 같아서 만들었다. 1996년 MBC에 입사한 뒤 가진 꿈이 내 손길이 닿는 작은 회사를 차리는 거였다. 2002년에 퇴사하고 방송 프로덕션을 창업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좀 지치더라. 회사 대표로서 직원들 월급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 사는 게 싫었다. 그래서 원래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기로 했고, 몇 가지 구상했던 프로젝트 중 하나가 < 트루맛쇼 > 다. 2006년부터 준비했고, 2008년 말부터 촬영 시작해서 만들었다.

사회

:김용철 변호사 사건처럼 방송사는 '꼬리 자르기'를 하고, 김재환 감독을 이상한 사람으로 몰고 가는 게 아닐까.

:내가 어디서 뇌물받은 걸 한 건이라도 찾아내든지, 아니면 우리 조상 중에 친일파를 찾아내야 할 거다(웃음). MBC 편성제작국이 외주 제작사 관리하는 곳인데, 일부 PD들이 지금까지 자기가 많이 해먹어놓고, 이제 와서 다른 사람 못 해먹게 한다는 식으로 말하고 다닌다.

:김 감독은 일종의 내부 고발자인데, 자꾸 사람들이 내부 고발자가 폭로한 내용이 아니라, 그의 도덕성을 문제 삼는 게 문제다.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내가 꼭 문제가 있는 사람 같다(웃음). 결국 방송사가 주장하는 건 이게 협찬이라는 거다. 방송법상 외주 제작사는 협찬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 트루맛쇼 > 를 통해 방송사가 회사 차원에서 해먹은 게 드러났다. 방송사는 그동안 받은 협찬금 다 돌려줘야 한다.

김재환 감독은 좌담 말미에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 트루맛쇼 > 가 고발한 내용에 방송위원회가 어떤 조처를 취하느냐이다. 문제가 없다면 국민이 분노할 테고, 문제가 있다면 방송통신위가 임무를 방기한 것이 된다는 것이다. 김 감독은 "방송위가 해야 하는 일을 내가 했다고 생각한다. 방송위는 영화 제작하느라 잃어버린 시간과, 스트레스 때문에 빠진 내 머리카락 등을 보상하라"며 비장하게 웃었다.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듯 김재환 감독, 한다면 하는 사람이다. 방송위가 그의 요구에 진지하게 답해야 할 것 같다.

이오성 기자 /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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