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5월 31일] 특권의 장갑을 벗겨라

2011. 5. 30.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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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이나 황제가 된 사람이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전제주의 시대에는 황제가 죽을 때까지 권력을 쥔다는 걸 아는 사람이라면 '그럴 리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 명나라 황제 계보에는 두 번 제위에 오른 인물이 있다. 6대이자 8대 황제인 영종(英宗)이다. 영종은 1449년 몽골 오이라트에 대한 친정(親征)에 나섰다. 그러나 총애하던 환관 왕진에게 휘둘려 허베이(河北)성 토목보(土木堡)에서 포로로 잡힌다. 중국 역사에서 황제가 전장에서 포로가 된 건 전무후무한 일이다.

그 이후 벌어진 일도 기막히다. 영종의 동생을 새 황제로 옹립한 명나라가 석방 협상에 나서지 않자, 오이라트는 이듬해 영종을 돌려 보냈다. 귀국 후 궁중에 유폐됐던 영종은 1457년 동생이 병석에 누운 틈을 타 다시 황제가 됐다. 환관이 발호하고, 황제가 적에게 포로가 되고, 형제가 제위를 놓고 다툰 걸 보면 개국(1368년) 80년 만에 망조가 든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이자성의 난'(1664년)으로 망할 때까지 명나라는 200년 가까이 동아시아 패자로 군림했다. 100년도 안돼 말기 증상을 보인 나라가 200년을 더 버틴 이유를 사가들은 지배계급에 적용된 철저한 책임 추궁에서 찾는다. 실제로 영종은 8대 황제가 된 뒤, 그를 옹립한 일등 공신인 서유정(徐有貞)과 석형(石亨)이 충신 우겸(于謙)을 참소한 게 드러나자 즉각 처단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명나라 300년 치세는 신상필벌(信賞必罰) 중 인재를 등용하는 '신상'에는 실패했지만, 지위 고하를 가리지 않고 측근을 '필벌'한 영종 때문에 가능했던 셈이다.

굳이 550여 년 전 중국 얘기를 꺼낸 건 이명박 정부가 따라야 할 모델이기 때문이다. 측근인 감사원 고위자가 부산저축은행을 비호한 혐의를 받으면서, 이 대통령도 명나라 황제처럼 주변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신상'에서 실패했음이 확연해지고 있다. 측근의 비리 연루 소식을 들은 뒤 격노한 상태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철저하고 엄중한 조사'를 지시했다지만, 이 대통령은 그에 앞서 스스로를 더 책망했을 것이다. 야당은 물론 여당 내부에서도 "목숨 걸고 직간하는 게 임무인 사간원(司諫院)에 가신(家臣)이 웬말이냐"며 반대 목소리가 컸는데도, 임명을 강행했던 만큼 이 대통령은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명나라 해법을 따르지 않더라도 이제 이명박 정권이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는 길은 '필벌'밖에는 없다. 국회 국정조사나 사정당국 수사에서 더러운 이권에 개입한 측근이나 고위 공직자가 추가로 확인되면 지위의 높낮이를 가리지 않고 그 즉시, 상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 대통령도 영종처럼'필벌'원칙만 세운다면 저축은행 사태는 역사의 성공 사례로 기록될 수도 있다.

사실 대한민국은 '필벌'의 핵심인 '뜨거운 난로의 법칙'이 사라진 상태다. 조직이 건강하려면 잘못한 사람을 뜨거운 난로처럼 대해야 한다. ▦난로에 손을 댄 즉시 ▦사람 가리지 않고 처벌해야 한다. 그래야만 구성원 모두 규칙을 믿고 따르고, 지도부의 공평함을 인정하게 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유전무죄-무전유죄'를 낳은 법조계의 전관예우 관행 ▦부실 덩어리 저축은행에서 벌어진 로비와 부조리 ▦영업정지 전 날 힘있는 사람만 돈 빼가는 현실에서 일반 시민들은 '뜨거운 난로'를 잊은 지 오래다.

저축은행 사태를 계기로 특권의 장갑을 벗기고 일반인처럼 맨손으로 난로를 만지게 하는 것. 이명박 대통령의 구겨진 자존심을 세우는 것 이전에 대한민국의 영속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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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철환 경제부 차장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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