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데스크] 과학자가 빠진 과학벨트

이영완 산업부 과학팀장 ywlee@chosun.com 2011. 5. 18.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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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무라 마사오(中村政雄)씨는 30여년 동안 일본 요미우리신문에서 과학기자로 일하다 은퇴하고 원자력 관련 보도를 감시하는 시민단체를 이끌고 있다. 지난 9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만난 그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수습 현장에 전문가가 없었다"고 말했다. 사고 현장이나 도쿄 정부 청사에서 전문가가 대책을 지휘하거나 국민에게 설명하는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카무라씨는 그 반대의 모습을 1979년 미국 스리마일 원전 사고에서 발견했다. 당시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과학자가 기자회견에서 정확한 정보를 쉬운 말로 전달해 정부의 사고수습 방향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그는 대통령으로부터 행정권도 부여받아 사고 수습까지 지휘했다. NRC는 원전 사고가 나면 그 일을 맡도록 사전에 그를 준비시켰다.

두 나라의 정반대 상황은 최근 논란을 일으킨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과학벨트에도 전문가인 과학자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둘러싼 논란이 있다. 과학벨트의 주역은 과학자이다. 서울시장이던 이명박 대통령에게 전 세계에서 석학들이 몰려오는 과학도시를 제안한 것도, 과학벨트에 들어갈 중이온가속기와 기초과학연구원을 계획한 것도, 과학벨트의 최종 입지를 결정한 것도 과학자들이었다. 앞으로 과학벨트에서 살면서 연구할 사람들도 과학자들이다.

그러나 과학벨트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처럼 미적거리고 우왕좌왕했다. 처음엔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대로 충청권을 염두에 둔 종합계획이 만들어졌다. 그러던 것이 정부가 세종시에 정부청사를 옮기는 것을 거부하고, 대신 과학벨트를 보낸다는 안을 만들면서 전면 재조정됐다. 과학자들은 다시 새 안을 짰다.

하지만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은 국회에서 부결됐다. 정부는 다시 과학자들을 내세워 전국 곳곳에서 과학벨트에 맞는 후보지를 '과학적'으로 찾는다고 했다. 전국을 유치경쟁으로 몰고 간 과학벨트 최종입지 선정은 16일 과학자들이 주축이 된 과학벨트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결정이 나기 전에 정치권을 통해 미리 알려졌다. 과학자들이 매긴 점수가 유출된 것인지, 아니면 원래 정부 결론이 과학자들의 평가와 일치한 것인지 알 수는 없다. 어쨌건 과학벨트위원회의 과학자들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을 회의를 열어 다시 확정하고 국민에게 발표했다. 과학자들은 정부가 탈락 지역에 주려고 예산을 크게 늘린 것도 최종발표 당일에야 알았다.

최근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보며 과학자들은 "최소한 우리나라는 일본처럼 과학자들이 손을 놓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전문가가 아무리 많아도 구색을 갖추기 위한 역할에 그친다면 힘을 쓰지 못한다. 오히려 국민이 과학자와 과학을 믿지 못하는 역효과만 낸다.

과학은 언제 어디서나 변하지 않는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 국민이 전문가인 과학자를 믿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자를 들러리 세워서는 안 되는 것이다. 과학벨트가 후쿠시마 원전처럼 속절없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지도력과 설득력을 갖춘 과학자들이 주도해 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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