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종이 만난 사람]청도에 코미디 전용극장 여는 전유성

김석종 문화에디터 2011. 5. 16. 19:5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웃겨달라 주문 오면 '코미디 철가방' 들고 전국 어디든 배달"

전유성씨가 후배들과 함께 해운대에 갔다. "얘들아, 바다가 나를 부른다." 그는 갑자기 이 한마디를 남기고 물속으로 걸어들어갔다. 어느새 물이 목까지 차올랐다. 당황한 후배들이 구조하러 뛰어들려는 순간, 그가 몸을 돌려 물 밖으로 걸어나왔다. "바다가 나 안 불렀대."

전씨는 가장 썰렁하게 웃기고, 잘 웃지도 않는 개그맨이다. 오죽하면 TV 코미디 프로그램에 '전유성을 웃겨라'는 코너가 있었을까. 그는 방송보다는 평소의 기상천외한 해프닝과 일탈로 '괴짜'의 면모를 보여주곤 한다. 방랑벽과 기행, 촌철살인의 '구라'는 그의 트레이드마크. '전유성이 어디로 튈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은 방송계의 묵은 언사다.

그런 전유성씨가 4년 전 돌연 방송생활을 접고 서울을 떠났다. 경북 청도땅에 둥지를 틀었을 때부터 이번에는 어떤 '사고'를 칠까 궁금했다. 그가 오는 20일 청도에 코미디 전용극장을 개관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개그계의 '기인' 전유성씨가 경북 청도에 '전유성의 코미디 철가방 극장'을 열었다. 전씨는 "코미디도 자장면처럼 배달해준다는 뜻"이라며 "주문형 맞춤 코미디를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김세구 선임기자 k39@kyunghyang.com지난 12일 자동차로 5시간을 달려 도착한 청도 풍각면 성곡리. 중국음식점 철가방 모양의 극장이 버티고 서 있었다. 이름은 '전유성의 코미디 철가방 극장'. 전면은 반쯤 열린 철가방 안에 흘러넘친 자장면과 짬뽕, 양파와 단무지 그릇, 나무 젓가락, 양념통, 그리고 소주병 등의 조형물을 장식했다. 전씨는 "코미디도 자장면처럼 배달해준다는 뜻"이라고 했다. 하긴, 튀지 않으면 전유성이 아니다.

"관람료는 자장면 값인 4500원이다. 공연 전에는 '소맥'도 한 잔씩 돌릴 생각이다. 전체를 예약하면 좌석 40석을 자장면 곱빼기 값 7000원으로 계산해 28만원이면 된다. 풍각면이라는 동네 이름처럼 풍각쟁이들이 한바탕 재미있게 놀 거다."

전씨는 극장을 여는 감회에 꽤 흥분한 듯했다. 코미디 전용극장은 그의 오랜 꿈이었다. 울릉도로, 제주도로 땅을 물색하고 다녔다.

그는 "객석 40석 규모지만 실제로는 세계 최대 규모의 극장"이라고 자랑했다. 그가 단추를 누르자 무대 뒤 벽이 열렸다. 800m쯤 앞에 오래된 당산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넓은 저수지가 펼쳐졌다. "당산나무에 조명을 해 달밤을 연출하고 그곳까지 연결해 공연을 할 것이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큰 무대"라는 것이다. 첨단 4D 기술은 아니어도 무대에 비가 내리고, 폭포가 쏟아지고, 분수가 올라가게 하는 장치도 있었다. 배우가 재채기를 하면 객석의자에서 물이 뿜어져 나왔다.

인터뷰를 위해 자동차를 타고 최복호패션문화연구소의 카페 '펀앤락(Fun & 樂)'으로 자리를 옮겼다. 먼저 왜 청도로 오게 됐는지 물었다. "그냥." 전유성답게 시니컬한 대답이다. 그는 청도와 아무런 연고도 없다. 우연히 청도를 지나가다 버려진 교회가 마음에 들었다. 그곳에 카페를 열면서 자연스럽게 청도로 오게 된 것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청도가 고향이냐고 묻는다. 이 좁은 나라에서 왜 그렇게 학연, 지연 같은 연고를 따지는지 모르겠다. 그냥 청도가 마음에 들었고, 보따리를 싸서 내려왔다고 하면 믿지를 않는다. 어떤 특별한 인연이나 배경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짜증난다."

- 왜 갑자기 방송을 그만뒀나.

"오래전부터 감이 떨어지면 방송을 그만둘 생각이었다. 때가 온 것이다. 요즘 후배들 보면 실력이 대단하다. 이제 방송에서 개그를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은퇴했다고 쓰지는 마라. 후배들을 키우면서 '방송개그'가 아닌 '무대개그'를 계속할 거다."

- 이제 청도에 정착하는 건가.

"앞날은 알 수가 없다. 그런 게 어디 내 맘대로 되나. 여행을 다니면서 여유로운 전원생활을 즐기려고 서울을 떠났다. 그런데 더 바빠졌다. 벌여놓은 일이 많으니 당분간은 이곳을 떠나기 힘들 것이다."

- 코미디극장은 어떻게 운영되나.

"주로 '전유성 코미디 시장(市場)' 단원들의 공연 무대가 될 것이다. 단원들 교육시키면서 공연까지 할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주문형 맞춤 코미디도 선보이려고 한다. '웃겨달라'고 하면 서울이든 부산이든, 논이든 밭이든 찾아가서 웃겨주는 것이 '코미디도 배달된다'는 콘셉트다. 극장 주변에는 이 지역 특산물 장터를 열어 하나의 지역문화 테마파크가 되게 하겠다. 즐거움을 주는 개그맨이 있으면 동네가 즐겁게 바뀐다. 이런 극장이 각 도에 하나씩 있어야 한다."

- 어떤 공연을 준비하고 있나.

"1시간20분짜리 장편 코미디다. 독립된 장편(掌編) 개그가 끝없이 이어지는 식이다. 내용은 여러가지 상황의 싸움이다. 재미있는 싸움 구경이 될 것이다. 이 코미디는 상황에 따라 내용을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빼닫이(서랍)'식 코미디다."

전씨는 '청도 삐끼'를 자처한다. 그가 '뜨자' 조용했던 산골, 청도땅이 시끌벅적해졌다. 청도를 찾는 연예인이 부쩍 늘었다. 그가 운영하는 카페 '니가쏘다쩨'에서는 해물짬뽕과 파스타라는 이색 조합의 음식을 판다. 강산에, 서수남, 이동원 등이 이 식당 무대에 올랐다. 조영남은 단돈 1만원짜리 '컵라면 디너쇼'를 열었다. 펀앤락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전유성 잡담쇼'가 열린다. 그동안 유익종, 남궁옥분, 홍민, 전영록, 이정선, 임창제 등이 잡담쇼에 출연했다. 2009년부터 복날에 청도 야외음악당에서 연 '개나 소나 콘서트'에는 양희은이 노래를 부르고, 이홍렬이 사회를 봤다. 과연 연예계 '마당발'인 거물 삐끼다.

- 개나 소나 콘서트가 대단한 화제가 됐다. 서울에서 이런 시골까지 관람객이 찾아오는 이유가 뭔가.

"지난해에는 여행상품까지 나왔다. 관객이 7000명이 넘었다. 요즘은 애완견을 가족처럼 여기는 사람이 많다. 개를 위한 콘서트에 당연히 애견인들이 몰려들 것으로 예상했다. 이제는 학연, 지연보다 동호회 중심의 네트워크 시대다. 이점이 중요하다. 이런 동호회는 수없이 많다. 동호회를 타킷으로 하면 공연은 성공한다. '개나 소나…'는 평소 부정적인 의미다. 개나 소나 모두 문화생활에 동참시키자고 하면 이미지가 달라진다. 애완견 맞선, 애완견 패션쇼, 애완견 수영대회도 할 수 있는 거다. 앞으로 소싸움처럼 청도를 대표하는 이벤트가 될 것이다."

전씨는 그동안 아이들이 마음껏 떠들 수 있는 '얌모얌모 콘서트', 관객들이 공연 도중 마음껏 웃고 떠들 수 있는 '듣도 보도 못한 콘서트'도 무대에 올렸다. 관객들이 음악을 듣다 잠도 잘 수 있는 '잠자는 콘서트'도 구상 중이다.

- 상식을 깨는 공연을 많이 기획하는 것 같다.

"그게 왜 상식을 깨는 건가. 오히려 상식에 충실한 공연이다. 아이들이 어떻게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나. 오히려 프로 음악인이 시끄러워서 연주를 못한다는 것이 상식 밖이다. 나보고 엉뚱하다고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코미디극장에서 최복호연구소까지 이어지는 숲길도 명소가 됐다. 걸어서 두 시간 남짓 거리. 전씨는 이 길에 '올레길'을 패러디한 '청도 몰래길'이란 이름과 함께 그럴 듯한 '구라'를 입혔다. 요즘 강조되는 이른바 '스토리텔링'이다. '옛날 이곳에 화전민 동팔이가 살았다. 청도 소싸움꾼이 부지런한 동팔에게 송아지를 맡겼다. 싸움소를 만들 생각으로 정성을 들였다. 그 송아지를 사자가 잡아먹었다. 동팔은 산꼭대기 솟봉우리를 향해 소원을 빌었고 갑자기 힘이 생겨 맨손으로 사자를 때려잡았다. 그 후 사람들이 몰래길에서 소원을 빌게 됐다'는 내용이다. 길의 끝에는 실제로 수사자가 사는 사자 우리가 있다.

그는 이 고장 특산품인 청도 반시 설화도 만들었다. '조선시대 청도 출신 내시가 임금을 모시다가 낙향하면서 왕실에서 가져 온 감을 심었는데, 씨 없는 감이 열렸다'는 것이다. 그는 "내시가 심은 씨 없는 감이라고 하면 기후, 토양 운운하며 홍보하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고 기억하기 쉽지 않으냐"고 했다. 그가 만든 청도 반시 홍보 표어는 "청도군에 오시면 '감'사드려요"다.

청도에서 전씨와 함께 생활하는 '전유성의 코미디 시장' 단원은 20여명. 서울에서 1기생을 배출한 뒤 10년 만에 뽑은 2기생들이다. 전씨에게 코미디를 배우며 공연도 한다. 방송에서 활동 중인 신봉선, 박휘순, 안상태, 황현희, 김대범 등이 코미디 시장 1기생 출신이다.

- 코미디 시장 단원들은 어떻게 선발하나.

"오디션도, 수업료도 없다. 개그를 하고 싶은 지원자들은 다 받아준다. 공짜로 먹이고 재우고 가르친다. 이곳에서 함께 생활하며 웃음을 연구하고 아이디어를 짜낸다. 이름을 '코미디 시장'이라고 한 것은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것처럼 웃음을 내다 팔겠다는 뜻이다."

- 제자들을 방송에 진출시켜 프로덕션을 만들면 큰돈을 벌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나.

"후배 가르쳤다고 수입을 나누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나는 가르치는 일만 잘할 수 있다. 교육 끝나면 방출이다."

- 전유성만의 웃음철학은 뭔가.

"철학은 무슨. 그냥 웃기면 되는 거다. 웃으면 복이 오고, 젊어진다. 웃음에 토를 달 필요 없다. 그냥 재미있어서 웃는데 무슨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하나."

전씨가 골목길에서 놀고 있는 아이의 뒤통수를 때렸다. "크면 이 아저씨처럼 훌륭한 사람이 돼야 해." "아저씨가 뭐하는 분인데요." "놀아." 어느날 한 후배가 항의했다. "형, 내 욕하고 다녔어?" "응. 했어. 너도 내 욕하고 다녀." 후배에게 전화가 왔다. "난데, 지리산에서 15박16일을 걸어왔어." "그 먼 길을 왜…." "너 만나려고. 차 타고 온 것보다 훨씬 감동적이지 않으냐." 이제는 '전설'이 되다시피 한 전유성식 일탈과 엉뚱함의 에피소드는 무궁무진하다. 그는 이런 기행으로 이규형, 최양락, 김학래, 이봉원, 이병진 같은 후배들을 '추종자'로 거느렸다.

- '개그맨'이라는 말을 처음 썼다. 국적불명의 조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개그는 영화용어에 있는 말이다. 이전 세대의 코미디와 다른 것을 하겠다는 차별화 전략으로 쓴 말이다. 개그스테이지, 개그스타라고 쓰다가 개그맨이 됐다. 외국어를 그대로 가져다 쓰면 잘하는 거고, 우리가 만들면 잘못된 건가. 최초로 썼으니 더욱 칭찬받을 일이라고 생각한다."

- 소문난 독서가인데, 어떤 책을 주로 읽나.

"요즘은 책을 사기 위해 약속을 주로 대구의 서점에서 한다. 나의 독서에는 흐름이 있다. 어떤 작가나 저자에게 꽂히면 그가 쓴 책을 몽땅 읽는다. 번역자도 마찬가지다. 시인은 세상을 다르게 보는 전문가들이다. 그래서 시집을 많이 읽는다."

- 요즘 쓰고 있는 책이 있나.

"잡담에 대한 원고를 쓰고 있다. 술자리 같은 데서 듣는 잡담에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많다. 그런데 언제 완성될지는 모른다."

- '아이디어 뱅크'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전유성식 아이디어의 원천은 무엇인가.

"독서와 여행, 잡담, 그리고 상상이다. 항상 호기심을 갖고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려고 애쓴다. '남들 따라가면 중간은 간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을 싫어한다. 정을 맞아야, 남들과는 다르게 가야 새로운 세상이 보인다."

- 요즘은 어른을 위한 코미디가 없다고 불평하기도 하는데.

"무슨 소리. 어른들을 위한 코미디가 왜 없나. 요즘 인사청문회 같은 걸 봐라. 정치인들이 코미디언들보다 더 잘 웃기지 않나."

- 그동안 잘 살아왔다고 생각하나.

"세상 안달복달 살아봐야 결과는 비슷하다. 그럴 바에야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재밌게 사는 것이 낫다. 즐겁게 살면 그만이다. 나는 좌우명을 좋아하지 않는다. 더 좋은 좌우명이 생기면 어쩌나. 순간순간을 열심히 하고 싶은 것 하며 재미있게 살았다."

- 여행광으로 알려져 있다. 어떤 여행을 즐기나.

"계획 세우고, 준비하고, 그런 것 없다. 그냥 마음 내키면 떠나는 거다. 그래야 뜻밖의 즐거움을 만난다. 사실 내 여행은 고행에 가깝다. 그만큼 많이 걷는다. 터미널에서 가장 빨리 떠나는 차를 타고 떠나기도 한다. 가장 멀리 돌아서 서울에 오기도 했다. 언젠가 지리산에 가려고 출발했는데 남해의 섬에 도착했다. 짐 풀면 바로 그곳 사람들과 어울려 산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은.

"데뷔 30주년을 기념해 전국 해안선 일주를 했다. 연예인들이 데뷔 몇십 주년을 기념한다면서 특급호텔에서 비싼 돈 받고 공연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그렇게 긴 세월 인기를 얻고 사랑받았으면 돈을 받지 않고 감사 공연을 하는 것이 옳다. 그런 생각으로 여행을 택했다. 처음에는 말 타고 전국일주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 같아 스쿠터에 말머리 장식을 달았다. 가는 곳마다 주민들과 어울려 즐겁게 놀았다."

- 지역의 문화를 살리고 관광객을 더 많이 유치하려면 지자체 공무원들의 역할이 중요할 것 같다. 어떤가.

"결국은 아이디어와 차별성이 팔요하다. 똑같으면 누가 오겠나. 코미디 전용극장을 지으려고 이곳저곳 찾아다녔는데 정말 답답했다. 전례가 없어서 못한다는데, 처음 하는 일이니 당연히 전례가 없지. 전례가 있는 일을 뭣하러 하나. 그러니 지역에 공연장을 지어도 텅텅 비어 있는 거다. 지역문화가 활성화될 수가 없다. 그래서 생각을 바꿨다. '개나 소나 콘서트'는 내 힘으로 시작했다. 성공하니까 군에서 예산을 배정하겠다고 하더라."

오래전 어느 술집에서 그가 "꽃구경을 가면 꽃이 탁 피는 순간을 보고 온다"는 말을 했다. 그때 사람들이 "에이, 구라…"라고 했지만 그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자리에 '그 순간'을 보았노라는 사람이 한 명 더 있기는 했다.

- 정말 꽃 봉우리가 터지는 순간을 보러 다니나.

"그걸 못 본 사람이 이상하다. 언젠가 스님과 동행한 적이 있다. 스님이 '방금 저 산이 변하는 것을 봤느냐'고 물었다. '계절이 바뀌지도 않았는데 산이 변하는 순간을 어떻게 보느냐'고 했더니 '그럼 산이 봄, 여름, 가을, 겨울 딱 정해놓고 변하느냐'고 핀잔했다. 그때 내가 아하! 무릎을 쳤다. 산이 변하는 순간도 보는데 꽃이 피는 것을 왜 못 보나."

때로 그의 구라는 거의 '도(道)'의 경지까지 넘본다.

전유성은? '개그'라는 말 처음 쓴 '개그계의 대부'

1949년 서울에서 났다. 서라벌예술대학 연극과를 마쳤다. 대학 재학 중이던 69년 TBC < 쇼쇼쇼 > 의 진행자였던 '후라이보이' 곽규석을 무작정 찾아갔다. 그의 콩트 대본을 쓰면서 방송에 데뷔했다.

70년대 분식센터와 새벽다방 DJ, 그리고 유명한 '세시봉'과 '쉘브루' 무대에도 섰다. 무교동 통기타 살롱 '꽃잎'에서 연예부장을 했다. 동아방송 라디오에서 윤형주가 진행하는 < 0시의 다이얼 > 스크립터를 하면서 생방송에도 출연했다.

그는 멀티형 다모작 인생의 선구자다. 영화사 기획실장, 광고 카피라이터, 연극 기획·연출자, 방송작가, 대기업 이사, 영화 번역가, 베스트셀러 저자 등 이력이 다채롭다. '개그맨'이라는 말을 처음 썼고, 공개방송 형태의 '개그 콘테스트'를 처음 제안했다.

< 쇼비디오자키 > < 네로황제 > < 유머1번지 > < 청춘을 돌려다오 > < 일요일 일요일 밤에 > < 좋은친구들 > < 개그콘서트 > < 진실게임 > 등에서 독특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웃음을 선사했다.

'개그계 대부' '아이디어 뱅크' '개그계의 철학자' '괴짜' 같은 수식어가 붙어다닌다. 불교방송 < 백팔가요 > KBS 라디오 < 전유성의 책마을 산책 > MBC 라디오 < 전유성·박미선의 특급작전 > < 여성시대 전유성·양희은입니다 > < 지금은 라디오 시대 > 를 진행했다.

'꽃잎' 시절 이문세, 한영애, 남궁옥분을 발탁한 것을 시작으로 전인권, 주병진, 팽현숙, 이영자, 그리고 최근에는 한채영 등을 방송에 데뷔시켰다. 최초로 심야극장, 심야볼링장 아이디어를 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96년 아트센터 영화학교를 설립했다. 98년 공주 웅진전문대 교수, 2000년 사이버윤리 홍보위원을 지냈다. 2001년 11월 코미디 전문극단 '전유성의 코미디 시장'을 창단했다. 서울 인사동에서 카페 '학교종이 땡땡땡'을 직접 운영했다. 2000년 3월부터 전주 예원예술대가 국내 4년제 대학 중 유일하게 개설한 코미디연기학과 학과장을 맡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연극, 클래식 콘서트 등 다양한 공연을 기획, 연출했다. 2007년 방송 활동을 접고 경북 청도에 터를 잡았다.

그는 20여권의 책을 쓴 베스트셀러 저자다. < 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즐겁다 > < 하지 말라는 것은 다 재미있다 > 는 책 제목이자 촌철살인의 어록으로 꼽힌다. 그와 청운초등학교 동창인 유홍준은 < 남의 문화유산답사기 > 라는 패러디 제목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이 밖에 < 소를 잃은 자는 대문을 활짝 열고 볼 일이다 > < 컴퓨터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 > < 구라 삼국지 > (전 10권) 등을 펴냈다.

< 김석종 문화에디터 sjkim@kyunghyang.com >

경향신문 '오늘의 핫뉴스'

▶ 20대 알바, 여친과 결별 "연애도 결혼도 포기"

▶ 과학벨트 대전 결정에 박근혜 또다시 "…"

▶ '다시 뽑고싶은 대통령' 2위 노무현…꼴찌는?

▶ "日, 국제공인 지도 통해 대마도 조선땅 인정"

▶ 불륜에 빠진 친구 협박해 돈 뜯은 '흔들린 우정'

▶ 성매매女 "동전만으로 명품가방 사겠다"…왜

공식 SNS 계정 [경향 트위터][미투데이][페이스북][세상과 경향의 소통 Khross]-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