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로 들끓는 포항..용광로가 따로 없다



[한겨레] 홈 평균 관중 1만5830명…지난해보다 60% 더 늘어
지역스타 황선홍 감독 맡아 올해 5승3무로 1위 질주
"축구는 시민들의 유전자"
"니 아까 황새(황선홍) 봤나?" "난 손도 잡았데이."
포항이 축구 열기로 흠뻑 젖어들었다. 남녀도 없고 노소도 없다. 거리에서 식당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축구 얘기가 꽃을 피운다. 포항의 '프랜차이즈 스타' 황선홍(43)이 지휘봉을 잡은 올 시즌 무패행진(5승3무)으로 1위를 질주하면서 열기는 더해가고 있다. 지난달 23일까지 4차례의 홈경기 평균 관중은 1만5830명.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60%나 늘었다.
한마디로 '축구 용광로'가 따로 없다. 포항 경기가 열리는 날 홈구장인 괴동동 스틸야드 주변은 잔칫날이다. 괴동동 노점상발전협의회 이기찬(57) 회장은 "요즘 같은 불경기에 축구 열리는 날 사람들이 몰려드니 구세주인 셈"이라며 "치킨, 족발, 편의점, 호프집 등은 축구 하는 날 대박"이라고 했다. 대도시마다 프로야구 열기가 대단하지만 포항에선 야구 이야기를 화제에 올렸다간 '왕따' 당하기 일쑤다.
구단 역시 북적대는 관중들로 즐거운 비명이다. 선수 이름이 적힌 유니폼, 티셔츠, 축구공 등 용품 매출이 지난해의 3배가 넘었다. 최근 포항의 효자 노릇을 하는 선수는 미드필더 황진성이다. 4골로 팀내 최다 득점을 올리고 있는 황진성의 유니폼은 지난해보다 40% 이상 판매량이 늘었다.
강원FC와의 정규리그 8라운드 경기가 열린 지난달 30일 스틸야드를 찾았다. 경기 시작 2시간 전부터 빨간색과 검은색이 섞인 포항 유니폼을 입은 인파로 북적댔다. 일찌감치 스틸야드를 찾은 포항 팬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며 응원가 '승리의 스틸러스'를 불렀다. 시작 휘슬이 울리기 직전 발 디딜 틈 없는 서포터스 사이로 들어갔다. 황선홍 이름이 적힌 유니폼을 입은 여자 어린이가 아빠의 손을 잡고 나왔다. 아빠 최민영(37)씨는 "좋아하는 선수를 응원하면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게 좋다. 적은 돈으로 가족이 2시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 축구장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후반 34분 슈바의 결정적 슈팅이 문지기 선방에 막혔다. 골대와 서포터스 관중석의 거리는 불과 2.5m. 슈바의 탄식이 귓가에 쩌렁 울렸다. 서포터스들이 "슈바"를 외치자 그가 안타까운 듯 힐끗 뒤를 돌아봤다. 경기는 0-0으로 비겼다. 그래도 팬들은 들떠 있었다. 가족과 함께 경기장을 찾은 김성훈(53)씨는 "아톰스(포항의 옛 별칭)와 함께 청춘을 보냈다. 이길 때든 질 때든 포항은 우리 팀"이라고 말했다.
이상 열기의 한가운데에는 올 시즌 부임한 '황새' 황선홍 감독이 있다. 1993~98년 포항 선수로 전성기를 보내며 K리그 준우승(1995년), FA컵 우승(1996년), 아시안클럽 챔피언십 우승(1998년)에 한몫했다. 95년엔 지금도 깨지지 않은 8경기 연속골을 기록했다. 이후 세레소 오사카와 수원 삼성, 전남 드래곤즈 등을 거쳤지만 황 감독은 포항의 '프랜차이즈 스타'. 팬들의 진한 애정을 잘 알고 있는 황 감독은 "팬들의 열기는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에너지다. 그들의 사랑을 받는 우리 팀은 정말 행복한 팀"이라며 감정을 고조시켰다.
스틸야드를 나가서도 포항 응원가는 계속 울려 퍼졌다. 포항 서포터스 김현일(27)씨는 "포항은 예전부터 축구광이 많은 도시다. 포항 시민들의 유전자는 축구다"라고 말했다. 실제 포항은 포철동초-포철중-포철공고로 이어지는 유소년 육성 시스템을 통해 연고 선수들을 계속 배출하고 있다. 황진성과 이원재가 포철공고 출신이며, 한때 포항의 아이콘이었던 이동국도 포항에서 자랐다. 이처럼 뜨는 축구와 함께 뜨는 마케팅도 러시다. 올 시즌엔 홈경기 때마다 승용차 1대를 경품으로 내걸었다. 유호성 홍보팀장은 "포항 시민들의 성원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젊은이들이 모이는 시내 쌍용4거리 주변 호프집에 들렀다. 맥줏집은 서포터스들로 북적였다. 저마다 맥주잔을 부딪치며 또다시 축구 얘기로 들썩였다. 서포터스 박경은(21)씨는 "우리를 보시라, 그 무슨 부러움이 있느냐"고 했다. 호프집을 나오니 한 무리의 서포터스들이 응원가 '영일만 친구'를 불렀다. 포항의 밤은 그렇게 축구에 흠뻑 취했다.
포항/김연기 기자 yk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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