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茶) 정신으로 일본인들 설득했어요"

황윤정 2011. 5. 3.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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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궤 반환 '숨은 공신' 김의정 조계종 중앙신도회장

(서울=연합뉴스) 황윤정 기자 = "'일본 황실에 있는 것은 종이 한 장도 조선 사람에게 안 준다'는 게 일본 사람들인데 의궤가 보관된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참 힘들었어요."

일본 궁내청에 보관돼 있는 조선왕실의궤의 반환을 기다리는 조계종 중앙신도회 김의정(70) 회장의 감회는 남다르다. 그는 조선왕실의궤 반환을 성사시킨 '숨은 공신'이다.

쌍용그룹 창업주인 고(故) 김성곤 회장의 둘째딸인 김 회장은 민간단체인 조선왕실의궤 환수위원회(이하 환수위)가 환수 운동을 벌이는 데 필요한 경제적,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김 회장은 2006년 5월 조계종 중앙신도회 회장에 취임했다. 4개월 뒤인 그해 9월 중앙신도회 문화재환수위원회와 월정사, 봉선사로 구성된 환수위가 출범했다.

주위의 무관심 속에서 민간단체인 환수위가 5년여 만에 의궤 반환이라는 결실을 맺을 수 있었던 것은 김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 회장은 재정적 지원은 물론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 환수 운동을 지원했다. 일본 의원들을 비롯해 일본 정부와 시민단체 관계자들을 일일이 만나 설득작업도 벌였다.

최근 기자와 만난 김 회장은 "처음에만 해도 의궤 반환은 '뜬구름 잡기'였어요. 주위에서 다 불가능하다고 했고 도와주는 사람도, 귀담아들어 주는 사람도 없었어요"라며 그간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2008년 9월 18일 일본 관방장관실을 방문해 법적인 서류를 제출했는데 황실을 상대로 법적인 서류는 내는 것은 처음이라고 했어요. 서류를 제출하고 나와서 '일본 정부는 조선왕실의궤를 즉시 반환하라'는 글이 적힌 현수막을 펼쳐들고 숨겨간 카메라로 환수위 사람들과 사진을 찍었는데 관방장관실 앞에서 사진을 찍은 것은 그게 마지막이었어요. '007 영화'를 재미있게 봤는데 제가 007 영화를 찍을 줄은 몰랐어요."

김 회장은 관방장관실은 물론 궁내청을 직접 방문, 조선왕실의궤를 열람했으며 이후에도 일본을 수 차례 방문하며 환수 운동을 지속적으로 벌였다.

"궁내청에 의궤 열람을 신청했는데 일행 중 2명만 허가를 받았어요. 열람 시간도 딱 50분만 줬어요. 우리 것을 마음대로 볼 수 없고 빼앗겼다는 것이 이렇게 서럽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시는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의궤 반환에 미온적이었던 일본인들을 설득시킬 수 있었던 힘은 '차의 정신'이었다.

"'화경청적(和敬淸淑)이 차의 정신인데 모든 일에는 발란스(균형)가 맞아야 하고 남의 마음을 존중하고 헤아려주는 것이 중요해요. 이번에 일본 의원들을 설득하는데 '차의 정신'이 도움이 됐어요. 무조건 '당신들이 훔쳐간 것을 돌려달라'고 하면 돌려주지 않아요. 지난 80여 년 동안 우리 것을 잘 지켜준 것은 고맙지만 아직 일제 시대에 대한 한국인의 응어리가 완전히 풀리지 않았고, 당신들은 차를 사랑하는 국민들이니 의궤를 돌려줌으로써 서로 믿음을 갖게 할 수 있다고 설득했어요. 예절을 갖추면서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린 것에 일본인들이 감동한 것 같아요."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27호 궁중다례 의식보유자이기도 한 김 회장은 다도총연합회 총재, 명원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의 어머니는 전통 차 문화 복원의 '선구자'인 고(故) 명원(茗園) 김미희(1920-1981) 여사.

김미희 여사는 전통 차 문화 복원을 위해 헌신했으며 명원문화재단은 김 여사의 뜻을 잇고자 1990년 설립된 재단이다.

김 회장은 조선왕실의궤 환수 운동에 나선 것도 "전통문화를 소중히 생각하는 어머니의 뜻을 잇기 위한 것이었다"면서 "어머님이 전통문화를 아끼시는 모습을 어려서부터 지켜봐 왔기 때문에 의궤 환수 운동을 아낌없이 지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어머니의 삶을 조명한 '명원 김미희'(학고재 펴냄)를 지난해 출간한 데 이어 어머니에 대한 스님들의 회고담을 엮은 책도 올 하반기 내놓을 예정이다.

김 회장은 조선왕실의궤 반환을 계기로 "국민들이 문화재의 소중함을 깨우쳤으면 좋겠다"면서 "가치있는 문화재뿐 아니라 바가지 하나에도 역사와 우리의 정신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yunzh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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