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진의 차맥] (11) 일본다도의 신화학과 탈신화학 (4) 와비차는 '박제된 매월당의 초암차'

2011. 5. 2.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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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암은 한국 초가집서 연유… 日정신 표상위해 '표절'日 국보지정 이도다완도 한국인 장인이 제조 드러나

[세계일보]

다도(茶道)는 종합적인 문화 형태를 갖춘, 차(茶)를 바탕으로 한 문화복합(culture complex)이다. 여기서 문화복합이라는 말은 철학(과학)과 예술과 종교가 함께 들어 있는 새로운 문화 형태로서 독자성을 갖는다는 뜻이다. 어쩌면 다도는 국경을 초월하여 인류에게 다가갈 수 있는 가장 평화로운 매체이다. 매체가 곧 예술이라는 말이 있지만, 다도만 한 문화종교는 없다. 커피는 음료에서는 대중성과 함께 차를 훨씬 앞서지만, 차가 지닌 문화적이고 제의적인 카리스마는 갖지 못하고 있다. 다선일미(茶禪一味)에서 선(禪)보다 다(茶)를 앞세운 선사들이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나 '츠차취(喫茶去)'라고 말한 것은 선의 특징인 심즉물(心卽物)이나 '생활 속의 도(道)', 자연주의를 표방한 말이었지만, 이것이 일반에게는 일종의 새로운 물활론(物活論)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선(禪)은 자연주의다. 차선(茶禪)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으로 돌아가게 하는 영매이고 영물이다.

물질은 이제 연구 대상이거나 인간의 필요를 충당해주는 존재가 아니라 그것 자체가 살아있는 것이며, 인간과 교감하는 존재로 다가오고 있다. 물질적인 것이 곧 정신적이다. 진정 차는 '풀의 성현'이다. 일본은 왜 '젠(zen)'과 함께 다도에 그렇게 심혈을 기울였던가. 여기엔 일본 문화의 즉물주의와 실용주의, 장인정신이 관계했겠지만, 무엇보다도 신토, 무사도에 이은 일본정신을 표상하는 현대적 문화 브랜드를 만드는 데에 일찍부터 눈뜬 결과이다.

일본은 동아시아 삼국에서 문화정신을 표현하는 말로 '도(道)'자를 가장 잘 쓰는 민족이다. 다도는 누가 뭐래도 일본 전통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자연스럽게 일본정신을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 자리를 굳혔다. 일본 사람들은 다도에서 그들의 문화적 억압과 폐쇄성에서 탈출하는 역설적인 해방감과 탈출구를 느꼈을 것이다. 일본 다도는 일본이 근대에서 이룩한 가장 혁혁한 문화융합이다. 일본은 다도를 통해 미래 물질종교의 중심이 된 셈이다.

일본 다도를 떠올리면 크게 두 이미지가 떠오른다. 와비차와 이도다완이다. 이 둘은 일본 다도의 두 기둥이다. 그런데 이 두 기둥은 모두 한국과 관련이 있다. 일본 차정신을 말할 때 일본 차인들은 와비차(侘茶)와 소안차(草庵茶)라는 말을 혼용해서 쓴다. 여기엔 일본인의 보이지 않는 자격지심이 숨어 있다. 와비차는 보다 일본적으로 변형된 것이지만 소안차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소안차는 한국에서 형성된, 매월당 김시습(金時習·1435∼1493)의 '초암차(草庵茶)'의 자연주의를 일본식으로 절묘하게 변형한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일본은 이도라는 찻그릇과 소안차라는 차정신, 즉 그릇과 내용에서 다 한국에서 건너간 것을 일본식으로 재창조했다고 하는 편이 옳다. 앞으로 매월당의 초암차가 일본의 와비차(소안차)가 된 경위에 대해서 논의를 진전시키겠지만, 일본 다도를 접할 때 바로 한국의 것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식으로 변한 것에 중점을 둘 것이 아니라, 그 이전의 한국적인 원형을 찾아내는 것이 한국의 새로운 차법을 만드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깨우치고 싶다.

김시습의 초암차 철학 복원은 아직 미진한 상태로 있다. 김시습의 산문 자료는 물론이지만 차시(茶詩)라고 해서 그냥 노래로 해독할 것이 아니라 보다 정밀하게 노래에서 차의 철학을 뽑아내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방대한 그의 문서를 입체적, 종합적으로 관통하는 연구가 필요하다.

일본 다옥(茶屋)과 이끼의 길.

일본 차실을 보면 겉모양은 일본식으로 변형되어 있고, 일본 다다미 문화에 맞게 세련되어 있지만, 한국인이면 누구나 일본의 전통가옥보다는 한국의 초가집(토담집)과 화로(火爐)를 연상하게 한다. 와비의 원형은 한국의 초가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일본 다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다다미를 파내고 묻는 '노(爐·다실에 설치된 붙박이 화덕)'인데, 이는 김시습의 시에 나오는 '지로(地爐)'와 흡사하다.

일본 다다미의 특성으로 인해 '노'가 특별하게 깊게 파이고, 이에 따라 매우 조심스럽게 행다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 다도가 우리가 보기에 극도로 긴장하는 것은 일본 문화의 지나친 형식주의나 즉물주의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바로 '다다미 속의 노'와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지로'라면 그렇게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될 일을 다다미에 옮겨 놓으니 당연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일본 다도에서 물을 끓이기 위하여 숯불을 다루는 예법은 다도 종가의 종장(宗匠·다도의 큰 스승)들에 의해 오랫동안 계승되어 왔다. 사용하는 숯의 숫자나 형태나 크기는 물론이고 숯을 놓는 순서도 엄정하게 정해져 있다. 일본 다도의 격식에서 숯을 적시적소에 능숙하게 배치하는 것, 숯에 불을 붙이고, 골고루 태워서 낭비 없이 정확한 시간에 솥의 물을 끓게 하는 것은 종장의 다도 성숙도와 관계될 정도이다.

종장은 숯불을 잘 다루지 않으면 실격이다. 숯의 아름다움과 경제성은 그 토막의 형태나 남겨둔 나무껍질 모양에서 알 수 있으며, 숯을 다루는 주인의 손동작은 군더더기 없이 아주 절제된 형태로 수행되어야 한다. 이것이 그날 다회의 성패를 가름한다. 다도는 결국 불(火)과 물(水)의 조화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세계선차문화교류대회에 참가해서 치러진 차 퍼포먼스를 보면, 중국은 동작이 크면서도 섬세하고, 일본은 동작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끊어서 하고, 한국은 중간 정도의 동작을 하기를 좋아한다. 이것이 바로 국민의 성격이다. 일본 다도의 동작을 하면서 한국의 다도라고 한다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일본의 와비차는 마치 '박제된 한국의 초암차', '박제된 매월당'과 같다. 한국의 것이 일본으로 가면 그렇게 된다. 그것이 일본 미학이다. 일본에서는 소안차와 와비차라는 말을 함께 쓰지만, '초암차'라는 말은 돌려받고 싶다. 초암차는 그렇게 인공화된 차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인은 소안차라는 말을 쓸 때는 반드시 '일본 소안차'라는 말로 특화를 하여야 할 것이다. '와비'는 일본의 것이지만 '초암'은 아니다. 초암은 한국의 초가집에서 연유한 것이다.

일본의 다도, 꽃꽂이, 정원, 그리고 다도는 나름대로 예술적 의미가 있긴 하지만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어딘가 부자연스럽고 인공의 냄새가 난다. 이것은 형식미라기보다는 규격화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 그런데 그런 일본이 역설적으로 섬기는 파격이 있다. 교토 다이도쿠지(大德寺) 고호안(孤蓬庵)에는 조선에서 건너가 일본 국보가 된 기자에몬 이도(喜左衛門 大井戶·높이 8.8cm, 조선, 16세기)가 있다.

기자에몬 이도는 일본에서 신처럼 받드는 다완이다. '다완의 극치는 이 하나로써 다한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최고의 명물이다. 그런데 그 막사발을 만든 장본인은 한국(조선)의 장인이다. 일본은 왜 한국 자연주의의 극치인 이것을 일본 국보로 지정하였을까. 일본 차정신인 '화경청적(和敬淸寂)'이 이 다완에 다 들어 있다는 말까지 한다. 그러나 '이도'는 전혀 일본적이지 않다.

일본인들이 신처럼 받드는 이도다완.

이도다완이 조선에서 일본의 주문에 의해 생산되었다는 사실이 차 연구가 최정간 씨(하동 현암도예연구소)에 의해 소상히 밝혀졌다. 전국시대 규슈의 최고 실력자이며 크리스천 다이묘였던 오토모 소린(大友宗麟)의 문서는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오토모 소린은 출가 시절 다이도쿠지에서 주지 뎃슈 소큐(徹岫宗九) 화상에게서 차를 배웠다. 이때 다이도쿠지에서는 불교 선을 수행할 때 필수적인 말차(抹茶)가 유행하고 있었다. 말차의 유행은 도자기로 만든 다완을 필요로 하였다. 일찍부터 조선, 명나라와 대외무역을 해본 경험이 있는 오토모소린은 전국시대 그 어떤 다이묘보다도 다완을 입수하기 좋은 위치에 있었다. '시마이가(島井家) 문서'에 전해지는 오토모 소린과 그의 가신 요시히로(吉弘)의 편지에는 "조선의 고려다완이 도착하여 무척 기쁘다", "조선에서 차도구가 도착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16세기 말 일본 천하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차 선생인 센리큐(千利休)는 화려와 사치에 빠진 일본 차문화의 물신숭배를 바꾸기 위해 '와비(侘)'라는 개념을 만들어내는데, 여기에 맞아떨어진 것이 이도다완이었다. 화려한 흑유(黑釉) 계통의 덴모쿠다완(天目茶碗) 대신에 소박한 이도다완이 채택된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이도다완을 보고 '와비사비(侘寂)'라고 말한다. '와비'란 '가난이나 결핍 속에서도 마음의 충족을 끌어내는 것'을 말하고, '사비(寂)'는 '한적함 속에서 더 깊고 풍성함을 깨닫는' 일본인의 미의식을 말한다. 종합적으로 고독의 '비장미(悲壯美)'와 연결된다. 한국인의 삶의 여유, 자연친화적 삶과 자연미학은 일본인에겐 비장미로 비쳤다. 같은 물건을 두고 정반대의 미학을 끌어낸 셈이다.

일본인은 한국인의 자연스런 삶을 그리워한다. 일본 국민의 70%가 한반도에서 건너간 유전자가 있다. 그러면서도 일본인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도리어 인공적인 것이 그들에게는 자연스럽다. 우리가 다도를 말할 때 요체는 바로 여기에 있다. 같은 것을 정반대로 해석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한국문화의 미의식이 집약된 '매월당의 초암차'나 '이도다완'은 일본식으로 숭상된다.

한국인과 같은 뿌리의 일본인은 섬나라에 갇힘으로써 극단적으로 스스로를 자제하고 스스로에게 엄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 규격화된 미의식을 만들어냈다. 일본의 미의식은 흔히 축소지향이라고 말하지만, 이 말에는 공간 지향과 규격화의 자연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사정이 담겨 있다. 이게 일본의 미의식이다. 집약의 기술인 반도체가 일본에서 처음 개발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일본인은 한국인처럼 자연스럽게 살 수 있는 민족이 아니다. 일본인은 어떻게 하든지 자연을 2차적으로(인공적으로) 가공해서, 그것을 자연이라고 대상화하여야만 자연을 느낀다. 이에 비하면 한국인은 자연 그 자체와 하나가 되어 살아간다.

이도다완을 신격으로 모시는 일본인에게서 한반도에서 이주해간 이주민의 후예로서 고향에 대한 집단무의식적 향수병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매월당 김시습의 초암차가 센리큐의 와비차가 된 이유이다. 일본은 임란 때 조선도공을 잡아가기 전까지 1300도 내외로 불을 올리는 최첨단 기술이 없어 물컵만 한 크기의 흑유다완류인 '라쿠다완(樂茶碗)'을 만들었을 뿐이다. 이에 조선에서 주문제작한 분청계통의 '이도다완'을 사용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분청과 녹색의 말차는 참으로 궁합이 일품이다.

일본의 저명한 종교철학자이며 민예운동가인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1889∼1961)는 "다인들이 일상생활 용기인 찻그릇을 명기라고 칭송했던 것은 그 잡기 속에 낙착(落着)된 고요미를 발견했기 때문이다"고 말하였다. 그는 또 "무사(無事)함이 있기 때문이다. 조작된 것이 없고 보는 사람으로서 황홀함은 느끼게 한다."고 말하였다.

초암차도는 일본식으로 변형했지만, 이도다완은 그릇인 까닭에 국보로 그대로 섬기고 있다. 이 둘을 통해서 우리는 일본인들의 집단무의식에 숨어 있는 선조의 고향에 대한 향수, 한국문화의 원형에 대한 그들의 애정과 숭배를 느낄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숭배가 갑자기 정한론으로 바뀌어 임진왜란과 일제 침략이라는 배반으로 드러났지만 말이다.

문화평론가 pjjdisc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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