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 魂] 청석굴 암장과 민규형

2011. 5. 2.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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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 클라이머들은 팝콘 같다. 톡톡 튀고 맛있게 등반한다. 그리고 어느 극장에서나 파는 팝콘처럼 그들은 국적을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 등반을 한다. 파워풀하고 에너지 넘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지만, 그 달콤함이 이념이나 신념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클라이머 민규형도 젊지(?)는 않지만 등반은 팝콘 같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오로지 스포츠클라이밍에 관한 등반만 하지 않고 최근 시야를 넓혀 인공등반도 시작했다는 점이다. 등반이 자연스레 익숙해져 자신도 모르게 형을 닮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거벽 등반가이자 인공등반에서도 큰 활약을 해온 형의 길이 등반가의 당연한 수순 같은 습성이라 어쩔 수 없을 것이다.

2004년 규형이 암벽등반을 시작한 20대 후반, 지금은 고인이 된 친형 민준영으로부터 아주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의 형은 고정로프 없이 등반하는 알파인스타일로 파키스탄 히말라야의 스팬틱(7,027m·골든피크)을 초등하고 국내 인공등반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거벽 등반가였으니 무슨 영향인지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 형을 둔 규형이 일단은 그 시절 바위와 함께해야 했다고 표현해야 맞을 것이다.

그는 "당시 형과의 경쟁으로 클라이밍이 더 재미있었지만 형과는 산행을 그리 많이 하지 못했다"고 기억한다.

"스포츠클라이밍이 전부였던 저와는 달리 형은 인공등반과 고산 거벽등반을 전문으로 하기 때문에 등반 스타일이 달랐어요. 때론 인생 최고의 우상으로 삼을 만큼 존경하던 형과 함께 등반할 수 없어 아쉽고, 그래서 형이 그립습니다."

그의 형 민준영은 2009년 9월 안나푸르나 히운출리(6,441m) 등반 중 실종됐다.

3월 14일 저녁 9시, 그가 운영하는 청주시 상당구 방서동에 자리한 타기실내암장을 찾았다. 민규형은 "어서오세요"라고 간단히 인사한 뒤 어디론가 사라졌다. 한 손에 지휘봉을 쥔 그가 벽 한 면에서 몇 몇 회원들과 문제풀이에 여념이 없었다. 일주일에 두 번 있는 개인 레슨, 고급 클라이머를 꿈꾸는 이들에게 소위 말하는 '업그레이드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었다.

잠깐 기다리는 동안 누구나 편하게 즐기는 인스턴트커피 대신 차 한 잔 하라며 메밀차를 우려 내놓았다. 민규형은 주변 사람들을 위해 직접 차를 우린다. 어린이와도 금세 친구가 되며, 농담을 주고받는다. 굉장히 어른스러우면서도 아이 같은 그는 이곳에서 겸손한 젊은이로 통한다. 그가 '겸손하다'는 평을 듣는 것은, 이미 한 단계를 초월한 사람의 속 깊은 면모일 것이다.

"형은 목표를 세우면 몰입을 상당히 잘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개인훈련이 많았죠. 무언가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어느 순간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이기도 해 오해를 사기도 했어요. 그런 형을 봐왔던 터라 더 나은 소통과 관계를 위해 타기암장은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운동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데 그 밑바탕이 겸손이라 생각합니다."

아내인 정미영씨에게 "남편 때문에 힘든 점은 없냐?"고 너무도 상투적인 질문을 했다. 돌아오는 대답이 "오늘이 결혼 1주년입니다"였다. 평일에는 보통 자정이 돼야 귀가하고 주말에도 회원들과 산행을 하기 때문에 가정에 소홀해져 그게 스트레스가 된단다. '아, 결혼 1주년!' 어찌 보면 그 원인에 우리도 포함되겠다 싶은 생각에 길어지는 인터뷰는 내일로 잠시 미뤘다.

날 한번 정말 잘 잡았다. 어제까지 포근하던 날씨가 급변해 황사를 동반한 봄바람은 유난히 거세게 분다. 청석굴 암장. 강을 옆에 두고 있다. 양지바른 곳에 등반높이 15m의 벽이 서 있어 아늑한 느낌이다. 하지만 온기를 품은 아늑함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바위는 차갑게 식어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민규형은 적어도 이제는 신념이 느껴진다. "톡톡 튀게 맛있게 등반을 한다고 해서 꼭 스타일에 제한을 둘 필요는 없다"며 "바위가 차가워도 즐겁게 오르면 그만"이라고 말한다. 등반의 과정, 즉 그 시작에서부터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총체적 과정에는 어떤 작용이 결과에 영향이 미친다는 걸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저 최선을 다하고 또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필요할 뿐인 것이다.

초반 상당히 가파른 오버행의 모나리자(5.12a) 루트 앞에 선다. 그의 손이 흐르는 홀드를 움켜쥐고 무언의 대화를 시작한다. 차가운 벽, 무뎌진 감각, 어려움은 배가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홀드를 잡고 딛는 손과 발은 더욱 더 벽과의 교감에 집중하려는 듯 몇 번을 고쳐 잡는다. 150도의 오버행을 넘어서고 상단에 접어든 그의 몸짓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 초크 가루는 그것을 대변하려는 듯 그의 손을 떠나 자유로이 봄바람을 타고 허공에 흩날렸다.

그는 앞으로 국제 루트세터에 도전하는 게 꿈이다.

민준영

충북등산학교 강사

타기클라이밍센터(www.tagy.net) 대표

2004년 태국 프라낭 '타이달 웨이브'(7b) 완등

2005년 태국 프라낭 등반

2007년 청주시생활체육클라이밍연합회 사무국장

2007년 충북클라이밍연합회 사무국장

2007년 태국 프라낭 '탄트럼'(8a+) 완등

/ 글 염동우 기자

사진 허재성·염동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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