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미 "3000명보다 10명 앞에 설 때 더 떨려요"

2011. 5. 1.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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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 호텔 32층. 복도를 따라 가는 도중 노랫소리가 새어나왔다. 세계 데뷔 25주년을 맞아 5월 6~7일 예술의전당 공연을 위해 한국에 온 소프라노 조수미(49)씨는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복층짜리 로열스위트룸에 묵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방금 노래를 부르다 나와 인사도 마치 노래 부르듯 건넨다.

"옷 갈아입으면서 노래를 부른 게 방 밖으로 새어나갔나 보네요. 그렇잖아도 노랫소리 때문에 옆방에서 시끄럽다고 항의도 받았어요." 나이가 멈춘 듯 변함없는 모습에 꽃분홍색 드레스를 입고 화사한 미소를 머금고 나타난 세계적인 디바 조수미. 바깥 날씨는 아직도 조금 쌀쌀했지만 그는 상큼한 봄처녀였다. 작은 체구 어디서 그렇게 힘 있고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가 나오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그는 3일 전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공연을 마치고 전날 저녁 서울에 도착해 시차적응으로 피곤한 상태였지만 역시 프로답게 활달하고 경쾌하게 인터뷰에 응했다.

-데뷔 25주년 축하한다. 이번 기념 공연은 '바로크음악'이 레퍼토리던데.

▶그동안 벨칸토, 오페라 아리아 곡만 불렀고 바로크 무대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설렌다. 바로크 시대 음악을 그대로 재현하는 대단한 고음악 앙상블 '아카데미 오브 에이션트 뮤직(AAM)'이 한국까지 와서 공연하는 거니 한국 팬들은 수지맞은 것이다. 하하.

-바로크음악은 어떤 음악인가.

▶바로크는 르네상스 이후 독특한 시기였다. 바흐가 태어난 시기이기도 하다. 평소에 내가 불러온 벨칸토는 화려함과 기교로 감싸서 보여주는 데 반해 바로크음악은 굉장히 정직하다. 마치 심장을 손 위에 올려두고 온 정성을 다하듯이 순수하게 불러야 한다. 300~400년 전 바로크음악이 현대인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지 생각해 보게 되는데, 요즘처럼 순수한 바로크음악이 필요한 때는 없는 것 같다. 표현력이 강하고 고음 기교가 장점인 내가 낮고 절제된 바로크 곡들을 부르는 것을 관객들이 어떻게 느낄지 궁금하다.

-공연을 위해 특별히 준비하는 게 있나.

▶성악가는 수백 년 전 작곡가의 의도를 알아내고 나름대로 해석해 현대인에게 전달할 책임이 있다. 하지만 악보로밖에 작곡가와 소통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작곡가가 살던 곳을 직접 찾아가 본다. 이번 투어 전에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비발디가 신부로 살았던 곳에 찾아가 그의 숨결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베르디가 여성합창단을 창단해 심포니 투어까지 했던 걸 아는지?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그런 새로운 것을 알게 되면 재밌고 또 작곡가와의 영적 교감으로 이해가 더 깊어진다.

-카랴얀과 인연이 많은데(그는 조수미를 세계 무대에 데뷔시켰고, 조수미에게 '신이 내린 목소리'라고 말했다).

▶어릴 때 우리집에 카라얀이 빈필을 지휘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 패널이 있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지휘하는 모습을 매일 보고 커서 가족 같은 느낌이었다. 유학 생활 5년째 되던 해에 카라얀에게 오디션 제안을 받고 그를 만나 바로 옆에 앉았는데 너무나 신기해서 그의 머리카락도 당겨 보았다. 하하. 사람들은 카랴얀을 무서워했는데 나는 아주 편하게 느꼈다.

-수많은 무대에 섰는데, 떨릴 때도 있는가.

▶그렇다. 매번 무대에 설 때마다 떨린다. 다만 경험과 연륜으로 떨리는 걸 숨기는 것이다. 무대에 서는 사람 중에 안 떠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2000~3000명 앞에서 3시간 동안 공연하는데 떨리고 힘들다. 그런데 나는 2000~3000명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것보다 10명 앞에서 부르는 게 더 어렵게 느껴진다. 공연 때 실수한 적도 많다. 예리한 전문가들은 약간의 실수를 눈치채기도 한다. 보통 관객이 2000명이라면 10명 정도는 내가 실수하는 걸 아는 것 같다. 한국 관객도 마찬가지다. 또 오페라를 할 때 상대역과 너무 세게 포옹한 나머지 눈썹이 하나 떨어진 채로 노래 부른 적도 있고, 무대에서 신발을 잃어버린 적도 있다. 하하하.

-음악가 중에는 음악가 집안 출신이 많은데, 가족에 대해서도 별로 알려진 게 없다.

▶어머니는 신문기자(코리아헤럴드)였고, 아버지는 외국어대 영어과를 나와 오퍼상을 하셨다. 내가 장녀고 남동생이 둘 있다. 집안에 음악하는 사람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나 외에는 없길 바란다. 음악으로 세계여행을 할 수 있고 연주하면서 안목도 넓어져 그런 의미에서는 힘들어도 축복받은 직업이라 생각하지만 다른 가족이 직업으로 음악을 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외롭고 힘드니까.

-성악가는 목소리가 생명인데, 평소에 어떻게 관리하나.

▶성악가에게는 몸이 악기라 웬만한 개인적 즐거움은 욕심 내지 않는다. 목 관리를 위해 아주 사소한 것까지 여러 가지로 신경을 많이 쓴다. 일례로 튀긴 음식이나 차가운 것, 뜨거운 것은 먹지 않는다. 습기도 많이 신경 쓴다. 술 담배는 물론 안 한다. 대학 1학년 때 뭣 모르고 담배를 피워보긴 했지만 철들고 나선 목소리 때문에 청교도처럼 생활하고 있다.

-워낙 고음인데, 몇 옥타브쯤 될까 생각해본 적은 있는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미국 팝가수 머라이어 캐리의 노래를 한 번 불러보니 대단히 높게 올라가더라. 그 가수 음역이 나와 비슷한 것 같다.

-음악계에서 친하게 지내는 사람을 들자면.

▶다른 음악가와 별로 친분이 없다. 빈오페라단 같은 데 소속돼 한 도시에 살면서 공연하면 친구도 사귈 수 있었겠지만 계속 세계투어 공연을 하니까 교류하기가 쉽지 않다. 소프라노들끼리는 질투도 많다. 나는 털털한 성격이고 솔직해서 편한 남자친구는 많다. 그런데 여자끼리 수다는 못 해본 지 너무 오래됐다. 요즘 들어 편하게 수다 떨고 쇼핑할 여자친구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을 때가 많다.

-30년 넘게 외국 생활하면서 어려운 일도 많았을 것 같은데.

▶1983년 유학 갈 당시 유럽 음악계에는 동양인도 거의 없었고 오페라 주역은 꿈도 못 꿀 시절이었다. 25년간 한국인, 동양인으로서 그들만의 리그에서 활동해왔으니 억울한 일들이 왜 없었겠나. 그걸 일일이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겨낼 힘도 있었고…. 음악을 하지 않았다면 불의를 보고 못 참는 성격에 아마 소송을 걸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음악이 나를 순수하게 만들었다.

음악 하는 사람이라 악에 받쳐 있고 분노가 쌓이면 노래에 그대로 투영되기 때문에 분노는 가능하면 해소하려고 노력해왔다. 일단은 용서하고 상대방 입장으로 이해하려 했다. 나이 더 들고 용기가 생기면 참아왔던 것들을 어느 날 책으로 낼 수도 있다. 그간의 일들은 내가 매일 쓰는 일기에 고스란히 적혀 있으니까….(이 부분에서 신정아의 자전 에세이 '4001'을 아느냐고 물어봤으나 모른다고 했다) -25주년이어서 공연이 많을 것 같은데 향후 일정은.

▶'AAM'과의 투어가 한국에 이어 대만 베이징 싱가포르에서 계속되고 6월에는 일본 투어 공연이 잡혀 있다. 또 9월에는 데뷔 25주년 기념 앨범도 나오고 그 즈음에 맞춰 아주 특별한 야외 음악회도 준비하고 있으니 많이 기대해달라.

[김주영 기자 기자 / 사진 = 박상선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A도 모바일로 공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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