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통신史] 5-복소수 계산과 데이터 장거리 전송

2011. 4. 12.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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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저널 버즈] 컴퓨터 신호의 장거리 전송이 처음 시작된 건 모뎀이 등장하기 약 20년 전인 1940년의 일이었다. 이 사건의 핵심 인물은 AT & T 부설 연구 기관인 벨전화연구소의 젊은 수학자 조지 스티비츠(George R. Stibitz)였다.

진정한 실험주의자였던 스티비츠는 어릴 때부터 전기 기계 장치에 지나치게 몰두하여 때때로 부모님을 실망시키기도 했다. 여덟 살 때 오하이오의 데이턴에 살았던 스티비츠는 신학자인 아버지에게서 선물로 받은 전기 모터에 너무 과중한 부하를 실어 집을 몽땅 태울 뻔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스티비츠는 그런 강한 호기심 덕택에 결국 컴퓨터 역사에 몇 개의 주목할 만한 기록을 남기게 된다. 1937년 그는 여가시간을 활용해 2진 산술을 행하는 기계 장치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스티비츠는 각종 전화 부품과 배터리 등을 조립해 만든 그 모델에 모델 K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 후 스티비츠는 스위스 장치와 전화 네트워크에 관해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던 벨연구소의 베테랑 엔지니어 윌리엄스(Samuel B. Williams)와 힘을 합쳐 보다 야심적인 기계 장치를 개발해냈다. 그것은 장거리 전화 네트워크 설계시에 늘 부딪히던 문제의 하나인 복소수를 다루는 디지털 계산기였다.

복소수 계산기를 만들어낸 조지 스티비츠.

스티비츠가 복소수 계산기라고 이름 붙인 그 기계 장치는 최초의 디지털 컴퓨터의 하나였다. 그 기계는 1940년 초 벨연구소 맨해튼 본부에서 작동에 들어갔다. 입출력은 표준 텔레타이프 장비에서 채택한 키보드와 프린터로 행해졌다. 복소수 계산기는 즉각 그 능력을 인정받아 각기 다른 층에 놓여 있던 3대의 텔레타이프 터미널에 연결됐다.

스티비츠의 복소수 계산기는 곧 미국수학협회의 관심을 끌어 뉴햄프셔주 하노버에서 열리는 다트머스 회의에 그 기계에 관한 논문을 제출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스티비츠의 상사인 T.C.프라이(T.C.Fry) 박사는 컴퓨터 솜씨를 자랑하고자 관객으로부터 직접 계산 문제를 받은 다음 그 답을 구하는 시범을 하자고 제안했다. 여기에 스티비츠는 한술 더 떠서 전신을 통해서 직접 계산을 하자고 제안했다. 결국 스티비츠의 안으로 결정이 됐다.

1940년 9월 11일 스티비츠는 드디어 다트머스의 모습을 공개하고 장거리 계산 시범을 해보였다. 이때 청중 중에는 이후 컴퓨터 역사에 큰 역할을 하는 존 폰 노이만(John von Neumann)과 노버트 위너(Nobert Wiener), 그리고 세계 최초의 대형 디지털 컴퓨터인 ENIAC 발명에 참여하는 존 모클리(John W. Mauchly)도 있었다.

이윽고 스티비츠는 키보드를 통해서 복소수 문제를 입력했고 1분도 안 지나 정확한 답이 뉴욕의 컴퓨터로부터 전선을 타고 회의장에 도착했다.문제는 느린 속도디지털 데이터를 컴퓨터에 전송하는 윌리엄스의 시스템 속도는 텔레타이프의 전송속도보다 더 느렸다. 사실 당시로서는 전송속도는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스티비츠가 발명한 것과 같은 전기 기계식 계산기는 최근 컴퓨터로 몇 만 분의 1초도 안 걸려 풀어내는 문제의 답을 구하는 데 거의 1분 가까운 시간을 소비했다.

그에 비해 텔레타이프라이터에 부착된 일부 모뎀은 매초 300비트 속도로 신호를 전송할 수 있었다. 그것은 기계식 계산기의 4배에 해당하는 속도였다. 하지만 제2차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그야말로 번개처럼 빠른 디지털 컴퓨터가 등장함에 따라 모뎀도 신속한 동작이 필요했다.

시작은 1950년대 최초의 대규모 컴퓨터 네트워크인 SAGE(Semi-Automatic Ground Environment) 방공 시스템의 건설이었다. SAGE는 미국과 캐나다의 수백 개 레이더 기지를 27개 지휘통제소에 연결시킨 대규모 시스템이었다. 통제소의 핵심에는 MIT의 휠윈드(Whirlwind : 실시간 반응을 하는 세계 최초의 컴퓨터)를 모델 삼아 만든 컴퓨터가 있었다.

SAGE는 약 2,413만Km의 긴 통신 선로를 갖고 있었다. 따라서 각 레이더 기지에서 입수한 정보를 신속하게 지휘소로 보내 컴퓨터 분석을 하려면 데이터를 디지털 형태로 부호화하는 새로운 기술, 그리고 전화선을 통해 해당 신호를 신속하게 전송하는 모뎀이 필수적이었다. 적기가 레이더망에 탐지됐을 때 모뎀은 즉각 모든 네트워크에 경보를 발령해야만 했다.

고속 모뎀을 처음 개발한 건 역시 미 공군의 SAGE 개발을 감독한 MIT 링컨연구소의 과학자들이었다. 링컨연구소 핵심 연구진 가운데 하나인 로버트 에버렛(Robert R Everett)은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처음에 전화 회사에선 우리가 하는 일이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표정들이더군요. 레이더 데이터를 보내오는 전화선이 처음 휠윈드 빌딩에 들어올 때였습니다. 전화 가설 직원은 그 선을 전화기의 수화기에 연결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우리는 수화기는 필요 없다고 설명했지만 그것은 규정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그들이 방을 나간 이후에야 선을 수화기에서 빼내 모뎀에 연결했습니다."

[PC통신史] 1-미니텔, PC통신의 서막[PC통신史] 2-텔레컴퓨팅의 기원[PC통신史] 3-모뎀 장치의 기원과 발달[PC통신史] 4-벨의 신기한 발명품 '전화기'[PC통신史] 5-복소수 계산과 데이터 장거리 전송[PC통신史] 6-첫 상업용 모뎀 '데이터폰'[PC통신史] 7-대중을 위한 모뎀[PC통신史] 8-통신,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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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수 객원기자(news@ebuz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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