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뛰어 발굴한 숨은 맛집 ⑭ 부산시 중구 영주1동 '누나야 분식'

월간외식경영 글·이정훈 기자 사진·변귀섭 기자 null 2011. 4. 8.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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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비 들고 찾아와' 사가는 칼국숫집

손맛과 정성으로 끓인 동네 칼국수

중년의 부부가 탄 고급 세단이 대로변에 멈추었다. 딸인 듯한 학생이 빈 냄비를 가지고 차에서 내렸다. 그 여학생은 이내 시장 안으로 사라졌다가 한참 만에 냄비에 뭔가를 담아서 조심스럽게 다시 차에 올랐다. 하도 궁금해 쫓아가서 물었다. 대체 냄비에 뭘 그렇게 소중히 담아가느냐고. 그 여학생 이야기인즉슨, 자기는 이 근처 아파트에 사는데 밖에서 일 보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세 식구가 저녁으로 먹을 칼국수를 사가지고 들어가는 길이란다. 배달하는 음식점은 여럿 봤어도 빈 냄비를 가지고 와서 음식 사가는 식당은 처음 보았다. 그것도 칼국수를.

1인분에 몇 만원씩 하는 고급 요리보다 기본적인 재료 몇 가지만으로 맛을 내야하는 음식이 만드는 입장에서 더 어려운 일일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부산시 중구 영주시장 <누나네 분식> 주인장 홍점희 씨는 진정한 요리사다. 특별할 것도 없는 재료를 써서 돌아선 손님들의 입맛을 되돌아오게 하는 능력. 그것을 어떤 이는 손맛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정성이라고 부른다. 손맛과 정성은 어떤 레시피에도 없지만 어떤 음식에나 적용해야 하는 필수요소가 틀림없다.

요즘 유명한 칼국숫집은 많다. 맛있는 칼숙숫집도 꽤 여럿이다. 그러나 손맛과 인정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의 체온까지 함께 맛볼 수 있는 칼국숫집은 그리 많지 않다. 한결같이 화려하고 깔끔하고 세련된 집들이 사방에 널려 있는 요즘, 오히려 꾸밈없는 민얼굴 같은 업소가 지친 도시인들에게 위안을 준다. 이 집도 바로 그런 집이다. 격식을 강요하지도 않고 여러 겹의 문이 있지도 않다. 그저 각자 편한 대로 앉아서 칼국수를 맛있게 먹으면 그만이다.

주문과 동시에 반죽 밀고 면발 썰어서 끓여내

이 집 칼국수는 손님의 주문을 받자마자 만들기 시작한다. 손님이 주문하면 바로 반죽을 늘이고, 밀어놓은 반죽을 칼로 썰어 면을 만들어서 끓는 국물에 넣는다. 그야말로 집에서 만들어먹는 것과 똑같은 즉석 칼국수다. 은근히 당기는 국물 맛은 멸치, 무, 다시마, 파뿌리를 넣고 우려내었다. 면발도 즉석에서 반죽한 뒤 잘라 넣은 것이어서 '집맛'이 느껴진다. 칼국수가 다 끓으면 대접에 퍼서 고명으로 쑥갓을 얹어주는데, 여기에 양념간장과 풋고추 썬 것을 입맛에 맞게 넣어서 먹는다.

주인장에게 미리 말을 해두면 면발을 충분히 넣어주므로 배가 많이 고플 경우에는 좀 더 양을 넉넉히 달라고 하면 된다. 국물이 더 먹고 싶어도 마찬가지. 그래도 칼국수 값은 3,000원이다. 이 가격도 얼마 전까지는 2,500원에서 오른 가격이다. 혹자는 의아해 할 것이다. 그렇게 팔아서 언제 돈 버느냐고. 하지만 이렇게 장사해서 홍씨는 3남매를 공부시키고 가족들을 부양했다.

이 식당은 처음 홍씨의 시어머니가 1965년부터 시작했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노환으로 쓰러지면서 시누이가 식당을 꾸려나갔다. 주인장 홍씨가 처음 시집왔을 때, 시어머니는 이미 8년 동안 누워 지내고 있었다. 새색시는 시집오자마자 시어머니의 전담 간호사가 되었다. 그러던 잠시, 시누이가 결혼을 하면서 식당 일을 넘겨받은 홍씨는 '손에 물 하나 안 묻히고, 칼 한 번 안 잡아본' 이력으로 졸지에 칼국숫집 주인역할도 떠맡았다. 병들어 누워있는 시어머니 수발하랴, 아이들 뒤치다꺼리 하랴, 식당 일 하랴,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10년 만에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보살핌을 받은 끝에 돌아가셨지만 홍씨의 식당 일은 29년째 지속되고 있다.

'이웃의 정' 또 다른 미각촉진 요소

같은 시장 안의 바로 옆에서 50년째 식당을 하는 <창녕 이모집>의 성필이(72) 할머니도 이 집의 단골손님이다. 어찌 보면 한 자리에서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경쟁자임이 분명한데 홍씨가 만드는 칼국수가 최고라며 연신 칼국수 그릇에 젓가락을 가져간다. 성 할머니는 칼국수를 들면서도 '홍씨가 음식 솜씨도 뛰어나고 아이들도 잘 키웠으며 병든 시어머니도 정성껏 보살피는 등 효부상을 받을 사람'이라며 한참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한다.

성 할머니의 칭찬이 끝나갈 즈음에 인근에 사는 가정주부 김경미(33)씨가 빈 냄비를 가지고 칼국수를 사러왔다. 일주일에 한 두 번씩은 꼭 이 집 칼국수를 먹는다는 김씨는 임신했을 때, 다른 음식을 못 먹어 고생하다가 친정 엄마가 끓여준 것 같은 이 집 칼국수를 아주 맛있게 먹은 뒤로 단골손님이 되었다고. 가격도 저렴하지만 무엇보다 맛이 좋아서 자신뿐 아니라 인근 주민들이 빈 냄비를 가져와 사가는 사람이 퍽 많다고 한다.명문학교, 종합병원, 고급백화점이 있는 동네는 좋은 동네다. 하지만 편하게 마음 내려놓고 이웃과 푸근한 덕담 몇 마디 주고받을 수 있는 식당이 있는 동네는 더 좋은 동네가 아닐까. 그런 식당이 우리 동네에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든든한 일인가. 먹는다는 것도 결국 살기 위해서, 잘 살기 위해서 먹는 것 아닌가. 물론, 잘 사는 기준이야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말이다. 051-469-3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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