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스크린]한 인도인에게 닥친 '9·11 비극'

2011. 3. 24.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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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 이름은 칸(My Name Is Khan)

제작연도:

2010년

장르:

드라마

감독:

카란 조하르

출연:

샤룩 칸, 까졸

상영시간:

127분

관람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11년 3월 24일

2009년 일본에서 심야시간대 방영된 11부작 애니메이션 <도쿄 매그니튜드 8.0>은 진도8.0의 강진으로 폐허가 된 도쿄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로봇박람회를 구경 왔다가 천재지변을 당한 어린 두 남매가 집까지 돌아가기 위해 악몽 같은 현실 속에서 겪어내는 힘겨운 여정을 서정적으로 그려내 마니아들 사이에서 긍정적 지지를 받아냈다.

물론 이 작품은 허구다. 그러나 불과 2년도 되지 않아 만화 속의 재난은 현실이 되어 눈앞에 펼쳐졌고, 이 작품은 이제 외적인 부분에서 더욱 비애어린 작품으로 기억되게 되었다.

역사가 기록하고 있는,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크고 작은 재난들은 '어떤 의미로서든' 대중을 흥분시킨다. 하지만 나날이 충격에 무뎌지고 익숙해져가는 사람들에게 아무리 거대한 사건이라도 그 자체만으로는 현상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는 세태가 되고 말았다. 최근 국내 몇몇 언론들이 일본의 안타까운 현실을 보도하며 빚어낸 무책임한 촌극도 이런 현실을 단적으로 증명한다. 더 큰 자극으로 경쟁하고 그것이 생존력이 되는 시대 속에서 인간 본연의 가치와 최소한의 예의는 망각되어간다.

어쩔 수 없이 모든 사건은 개인에게 투영되고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가 사료됨으로써 분명하게 각인되고 의미를 부여받을 수밖에 없다. 인도영화 <내 이름은 칸> 역시 재앙의 굴곡 속에 철저히 망가진 채 내몰려진 한 남자의 행각을 집요하게 파고듦으로써 아직 아물지 않은 근대사의 생채기를 적나라하게 들춰낸다. 뛰어난 두뇌를 가지고 있지만 선천적으로 자폐증을 가지고 있어 사람들과의 소통이 원활치 않은 인도인 리즈완 칸(샤룩 칸). 애지중지 돌봐주시던 홀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하나뿐인 남동생이 살고 있는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오게 된 그에게 낮선 환경은 더욱 두렵기만 하다. 동생의 소개로 화장품 외판원 일을 시작한 칸은 위태로운 상황에서 도움을 준 싱글맘 만디라(까졸 분)에게 첫눈에 반하게 되고 순수하고 집요한 애정공세로 결국 그녀와 결혼에 성공한다. 그러나 얼마 후 다가온 9월 11일의 비극은 전 세계 모든 이들에게 충격을 주게 되고, 특히 칸에게 더욱 크고 직접적인 불행을 끼친다.

이 작품이 단순한 휴먼드라마 이상의 의미를 갖게 만드는, 또는 훈훈한 감동을 넘어서는 심란함을 제공하는 것은 단순히 이야기의 중심에 9·11이라는 구체적인 악몽이 동기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철저한 픽션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에서 다뤄지는 인물과 사건들에 대한 묘사는 꽤나 구체적이며 아울러 일방적이기도 한데, 또 그만큼 격앙되어 있기도 하다. 여기엔 단순한 인종문제뿐 아니라 종교, 혈연, 국가에 이르는 개인과 사회의 총체적 문제들이 직조되어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은 더욱 혼란스럽고 무거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세계를 겨냥한 전략적 작품임에도 뚜렷한 주제의식의 쉽지 않은 소재를 노련하게 풀어내는 이야기와 현란한 기교는 경험할 만한 가치가 있음은 분명하다.

인도영화는 제작편수와 자국 점유율에서 명성이 자자하지만 상영시간이 길기로도 악명(?)이 높다. 장르에 구분 없이 인생의 희로애락의 감정을 모두 담아내고 춤과 노래가 빠지지 않는 그들의 영화는 대부분 3시간에 육박하는 경우가 많다. 이 영화 역시 인도판 오리지널 상영시간은 157분인데 국내에서는 127분짜리 인터내셔널 버전으로 상영된다. 칸의 여정의 일부와 좀 더 구체적으로 묘사된 인도인들을 향한 오해와 갈등의 장면들이 적잖게 삭제되었다. 특히 후반부에 이르러 칸이 위험을 무릅쓰고 허리케인에 침수당한 조지아주 윌헤미나로 가 구조활동에 참가하게 되는 내막이 고스란히 사라져 예리한 관객들에게는 그의 행동에 의아함을 갖게 만들기도 한다. 섬세함이 무뎌져 아쉬운 면도 있지만 제작사 스스로가 공식적으로 편집한 정식판본 중 하나이므로 작품의 본질과 감정을 느끼기에 큰 무리는 없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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