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시민 '자발적 소등', 미숙한 정부 '깜깜한 대책'

도쿄 | 조홍민 기자 2011. 3. 15.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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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 정전' 오락가락 대처 도마에

#일본 도쿄 신주쿠구에 사는 주부 우치야마 신코(39)는 계획정전이 실시된 지난 14일 거실 조명 전구 4개 가운데 2개를 빼놓았다. 지진정보를 위해 NHK를 보는 시간 외에는 TV 코드를 뽑고, 방안의 전열기구도 이날만은 켜지 않았다. 우치야마는 15일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내가 사는 곳은 계획정전에서 제외돼 있지만 모두가 힘든 상황이니 조금씩 불편을 감수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도쿄 지요다구의 수제햄버거 전문점인 '푸킹 볼프강' 마루노우치점에서는 14일 영업을 오후 9시까지만 하고 문을 닫았다. 평소 밤 12시까지 주문을 받지만 절전을 위해 3시간 앞당겨 영업을 접었다. 이 가게의 매니저는 "입점해 있는 건물도 절전한다며 계단 전등 등을 상당수 끄는데 심야까지 영업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계획정전이 실시되면서 일본인들의 눈물겨운 '절전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개인들은 불편을 감수하면서 불요불급한 전기 사용을 자제하고 있고, 기업과 상점들도 절전 행렬에 속속 동참하고 있다.

15일 NHK에 따르면 사이타마현에서는 신호등을 끈 탓에 운전자들이 경찰의 수신호에 따라 차량을 운행하는가 하면 같은 현 아게오시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흐린 날씨에도 교실의 형광등을 모두 끈 채 학생들이 수업을 받았다. 한 학생은 "글씨가 잘 안보여서 힘들다"면서도 "재해를 당한 사람이 불쌍하니까 이 정도는 참아낼 수 있다"며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전날에 이어 전철의 운행 감축·중단도 이어졌다. JR요코하마 역에서는 오전 6시부터 출근시간 대 혼란을 피하기 위해 일찍 나온 시민들로 평소 때보다 붐볐다.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소니는 당분간 임직원들을 초과근무 없이 오후 5시30분 퇴근시키기로 했다. 도쿄제철은 18일까지 도치기현 우쓰노미야 공장의 조업을 중단했다. 대형 유통업체 이온은 전 점포 3500곳에서 각종 설비뿐 아니라 옥외 광고판 조명도 소등했다. 각 우체국에서는 9개 현에서 477곳의 자동현금입출금기 운영을 중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성숙한 시민의식과는 대조적으로 대지진 발생 이후 일본 정부가 보여준 미숙한 위기관리 대응에 대해서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계획정전은 국민생활과 직결되는 문제인데도, 뒤늦은 대처와 불충분한 정보로 혼란과 불편을 가중시켰다는 지적이다.

특히 수도권 계획정전을 둘러싸고는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를 비롯해 각료들이 '정치주도 연출'에 집착한 나머지 혼란을 확대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계획정전 실시 발표는 당초 지난 13일 오후 6시30분 시미즈 마사타카 도쿄전력 사장이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돌연 연기됐다.

정부로부터 "총리가 먼저 국민에게 직접 알리겠다"는 뜻이 도쿄전력으로 전달된 때문이다. 간 총리가 "국민에 불편을 끼쳐드리는 힘든 결단"이라면서 계획정전 실시를 발표했고, 에다노 유키오 관방장관, 가이에다 반리 경제산업상 등의 절전을 촉구하는 의례적인 발언이 이어졌다.

그러나 정전 개시 시간이나 대상지역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서는 아무도 답하지 못했다. 국민들은 오후 8시20분에 시작된 도쿄전력 측의 회견이 이뤄지고 나서야 계획정전의 구체적 실시방안을 알게 됐다.

요미우리 신문은 이와 관련, "계획정전은 전력회사뿐 아니라 철도, 병원 등 각 부문간 복잡한 조정이 필요한데도 정부 내에서는 구체적 논의도 없이 단 하루 만에 결정됐다"며 "정부가 본격적으로 복구계획에 착수했다는 흔적은 찾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졸속 결정 탓에 지바현의 아사히시에서는 이재민이 모여 있는 피난시설까지 정전돼 소동을 빚었다. 사이타마현 사이타마시의 자치의대의료센터에서는 수술을 중단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간 정권이 결정한 것이라고는 14일 각의에서 피해지역의 식료품 지원을 위해 2010년도 예비비에서 302억엔을 지출하기로 한 게 고작이다.

일본 정부는 1995년 한신대지진 때 피해지원을 위해 총 3조2000억엔의 추경예산을 마련했다. 재해복구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은 아직 윤곽조차 드러내지 못한 셈이다.

<도쿄 | 조홍민 기자 dury12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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