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진의 차맥] (7) 다도는 한국의 브랜드가 될 수 없다 (2) 일본 다도는 사무라이 다도

2011. 3. 7.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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茶보다는 다기와 다옥 중시… 신도와 무사도의 성격 탈피 못해광활한 미학 아닌 자폐성 가까워… 한국 열린공간 선호와 대조

[세계일보]

1970∼80년대 한국 차 문화의 태동기에 부산, 경남 일원에는 일본 다도 붐이 일었다. 다른 지역보다 일본에 가까운 지리적 여건으로 일본 방송을 시청할 수 있었던 이들 지역 상류층 부인들은 일본 다도에 매료되어 일본 다실을 만들고, 기모노를 입고 다회를 열었다. 아마도 선진문화에 대한 욕구와 경제성장과 소득 향상에 따른 적절한 문화적 차이와 교양에 대한 향수가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당시에 지었던 일본 다실은 해운대, 양산, 동래 등지에 20여개가 흩어져 있다. 그런 붐에 편승해 일찍부터 일본의 다도종가인 우라센케(裏千家), 오모테센케(表千家)의 지부가 부산에 설치됐다. 이들 지역 사람들은 일본 다도를 통해 가장 먼저 차에 눈을 떴다. 참으로 문화는 재미있는 것이어서 다른 나라의 문화적 자극이나 충격을 통해서 집단무의식에 잠재해 있던 잃어버린 자신의 문화요소를 되찾거나 부활시킨다는 점이다. 이는 무술에서 일본의 가라테를 통해서 태껸과 태권도를 부활시키는 데서 잘 볼 수 있다. 그런데 차계에서는 아직 태권도와 같은 한국의 브랜드, '한국의 다법'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는 아직 자아회복, 자아발견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일본 다가(茶家)에는 '노지'(露地)라고 하는 잘 다듬어진 인공정원이 있다. 이 노지를 거쳐서 다실에 이른다. 사진은 모래를 흐르는 강물로 생각하고, 그 안에 섬을 만든 모습이다.

일본 문화는 전반적으로 신도(神道)의 전통을 이은 무사도(武士道)와 실용주의가 문화의 바탕을 이룬다. 이는 일본이 아시아 국가 가운데서는 가장 앞서서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루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하였고, 지금도 선진 강대국을 구가하는 원동력이다. 오늘의 일본 다도를 이루는 데 크게 기여한 집단이 바로 사무라이들이다.

일본의 다도는 무사다도와 함께 성장하다가 그것에 반하는 와비차를 탄생시켰지만 결국 무사와 권력에 애증이 동시에 있는 게 사실이다. 현재 일본 다도는 일본제국주의의 군사적 침략과 경제적 지배를 망각하거나 무마케 할 정도로 아시아 각국에서 세력을 펴고 있으며, 구미제국에도 일본에 대한 군국주의적 이미지를 탈색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 이는 마치 서구 제국주의가 기독교로 피식민지를 달래주던 모습과 흡사하다. 이도다완에서 하얀 거품을 일구며 시야에 들어오는 푸른 말차를 보는 순간 일본에 대한 침략이미지는 눈 녹듯 사라지기에 충분하다.

일본의 선종(禪宗)은 왕실귀족 중심의 천태종(天台宗)과 달리 신흥귀족인 사무라이 계급의 지원을 받음으로써 무(武)와 선(禪)을 하나의 정신체계로 만들어내는 데에 성공한다. 다선일미(茶禪一味)에 못지않게 다무(茶武), 무선(武禪)일미를 실천하였는지도 모른다. 무사들이야말로 도리어 불립문자(不立文字)로 직관적 깨달음에 도달하는 선(禪)과 궁합이 맞았을지도 모른다.

일본의 다도는 크게 두 축으로 나뉜다. 남송 말년 일본 다도의 비조(鼻祖)인 에이사이(榮西·1141∼1215) 선사가 송나라로부터 차씨를 가져와 세후리산(背振山)에 심은 것이 한 갈래다. 에이사이는 "차란 말세에는 양생의 선약(仙藥)이요, 사람으로 누려야 할 목숨을 늘리는 기묘한 술법이다"고 말했는데, 이때만 해도 차는 양생의 차원에서 시음되었다.

다른 하나는 난포쇼묘(南浦紹明·1235∼1308)에서 잇큐소준(一休宗純·1394∼1481)으로 이어지는 경산다연(徑山茶宴·차 탁자와 茶典)을 들 수 있다. 난포쇼묘는 중국 절강성 항주 여항(余杭)의 경산사(徑山寺)로 들어가 경산다연을 일본의 소후쿠지(崇福寺)에 전했다.

일본다도는 잇큐소준, 무라타 주코(村田珠光·1433∼1502), 다케노 조우오우(武野紹鷗·1502∼1555), 센리큐(千利休·1522∼1591)로 이어지는 선에서 완성된다. 일본 다도는 이들 가문에 전해 내려오는 '다선일미'(茶禪一味)와 '화경청적'(和敬淸寂)으로 요약된다. 일본 다도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불교를 바탕으로 전개되었으며, 다도의 대가들은 모두 승려였다.

센리큐가 정한 사규(四規)인 화경청적(和敬淸寂)은 센리큐의 15대 손인 센겐시쓰(千玄室)에 이르러 세계적인 차문화 사상으로 발전하였다. 다도(茶道) 하면 일본이고, 일본의 다도는 동양문화를 대표하는 사상이 되었다. 일본 차문화는 선불교 사상이 기본이며, 지금까지도 선불교 과정을 수양해야 다도가(茶道家)의 대를 이을 수 있다.

'화경청적'(和敬淸寂)이라는 말은 일본 다도 신화의 결구(結句)이다. 일본 차인들은 이 말에서 어쩌면 다신(茶神)을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화경청적은 무라다 주코의 '청결예화'(淸潔禮和)를 심화시킨 것이다. 화경(和敬)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윤리를 말한다.

화(和)는 주인과 손님 간의 화목을, 경(敬)은 서로의 인격에 대한 존중을 말한다. 청적(淸寂)은 개개인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말한다. 청(淸)은 물심양면에서 깨끗함과 떳떳함을, 적(寂)은 고요와 텅 빈 것을 가리킨다.

일본 다도의 신화 만들기는 비교적 정교하게 프로그램화되어 있기 때문에 한 번 빠져들면 도그마가 되어 차인들로 하여금 감탄을 발하게 한다. 그래서 자칫하면 일본 다도의 좋은 점보다 나쁜 점만 받아들이기 쉽다. 일본 다도는 오랜 역사와 철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심각한 기물주의(器物主義)에 빠져 있는 것 같다. 오늘의 일본 다도를 보면 선(禪)보다는 다(茶)를, 다(茶)보다는 다기(茶器)와 다옥(茶屋)과 다실(茶室)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마시는 차보다는 차 공간(장소), 즉 차옥이나 차실을 더 중시하는 경향은 일본 특유의 공간의 특화와 규격화로 보인다. 일본인은 공간 중심의 삶, 즉 '장'(場)을 중시하는 것에 연유한다. 이에 비해 한국은 특화된 공간보다는 자연으로 열린 공간을 중시하고, 그렇다 보니 공간보다는 차를 마시는 음차에 비중을 둔다. 이는 한국인이 공간보다는 흘러가는 시간과 변화를 즐기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과 관련이 깊다.

◇부산·경남 등 전국에 심심찮게 들어서 있는 일본 다실의 모습. 다다미 한가운데에 차를 끓이는 '노'(爐·다실의 붙박이 화덕)가 있다.

선차(禪茶)든 다선(茶禪)이든 의미는 똑같다. 그러나 굳이 구분하자면 일본인은 '다선'을 선호하고, 한국인은 '선차'를 선호한다. 이는 일본이 즉물주의에 경도되기 쉬운 반면, 한국은 관념주의(정신주의)에 빠지기 쉬운 성향을 말한다. 공간 중심의 일본은 자연에 인공을 가미하여 재구성하는 것을 즐긴다. 그래서 저들의 소위 차실에 딸린 정원에 해당하는 '노지'(露地)는 매우 인공적으로 잘 다듬어진 정원이다. 손님들은 노지에 깔린 도비이시(飛石)를 밟으며 차실에 접근한다. 노지 정원의 돌에는 푸른 이끼를 밀생시켜 '이끼의 정원'에 온 것 같은 환각을 불러일으킨다. 자연을 중시하는 것 같지만 일본의 차실은 거의 밀실에 가깝다.

이에 비하면 한국인은 자연을 중시하여 때로는 인공의 손질이 전혀 가해지지 않는 것 같다. 한국인이 들차회를 좋아하고, 사방이 트인 정자나 누마루에서 차 마시기를 좋아한다. 한국인의 차실은 차를 마시면서 커다란 창을 통해 바깥 풍경을 바라보게 하거나 탁 트인 시야를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한다. 한국의 차실은 아예 열린 공간이다. 담양 소쇄원의 정자와 초당, 대흥사의 일지암, 강진의 다산초당은 대표적인 곳이다.

한국과 일본은 같은 것 같지만 다르다. 양국의 차문화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문화적 요소나 아이디어가 일본으로 갔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의 옛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래서 일본 다도를 배우는 사람은 처음에는 같은 문화적 뿌리와 성격 때문에 마음에 드는 것 같지만 정작 세월이 갈수록 답답함과 거북함을 느끼게 된다. 예컨대 초암차나 와비차가 한반도에서 건너갔다고 하더라도 오늘의 일본 다도에서 보는 모습이 우리의 전통 차문화는 아닌 것이다.

난보소케이(南坊宗啓)는 차노유(茶の湯)의 본질을 '남방록(南方錄·1593년)'에서 "차탕은 대자(臺子·다구를 얹어두는 기물)를 갖추어 차 마시기를 기본으로 하더라도 (중략) 차노유의 첫째는 불법으로 득도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화려한 건물에 진수성찬으로 차를 맛보는 것은 속세의 일이다"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오늘의 일본 다도는 속세에 가깝다.

일본의 와비차는 '은자의 종교'라고까지 말한다. 와비차는 귀족무사의 전투심과 오만함을 없애기 위해 센리큐에 의해 주창되었지만 결국 욕하면서 닮는다고 하는 말이 있듯이 고래로부터 내려오는 신도, 무사도로 이어지는 일본문화의 근본적인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일본 다도는 권력 과시의 서원차(書院茶)·차노유의 전통, 그리고 센리큐의 죽음에서 풍기는 '죽음의 미학' 등 사무라이 계급의 성장과 궤를 같이해왔다. 일본 다도의 형식미와 꾸밈은 그들의 표어인 화경청적에도 불구하고 선(禪)의 본래 정신과는 거리가 멀다. 선가의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라는 말과는 거리가 있다.

일본의 화경청적을 본떠 1960∼70년대 한국의 다도 지도자 중 몇몇은 자신의 다도철학을 화(和)자나 경(敬)자를 넣어서 표현하기도 했다. 한국다도협회를 창립한 정상구 박사의 '화경검진(和敬儉眞)'이 대표적이다. 화경검덕(和敬儉德), 화순질미(和純質未) 등도 있다. 현재 중국을 대표하는 차의 표어는 다성(茶聖) 육우(陸羽)의 정행검덕(精行儉德)과 중국 현대 차문화의 중흥조인 장천복의 검청화정(儉淸和靜)이다. 중국의 경우 검(儉)자가 공통이다. 화경(和敬)이나 화(和)자, 검(儉)자가 들어가는 것은 일본과 중국의 짬뽕인 것 같은 인상이 짙다. 같은 한자문화권에서 좋은 말을 찾으려고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된 듯하다. 그러나 화경검진의 '진(眞)'자는 한민족(동이족)을 상징하는 말이라는 점에서 그래도 한민족의 집단무의식이 발동한 듯하다.

그러나 일본 다도를 보면 어딘가 폐쇄된, 갇힌 기분을 느끼고, 죽음의 미학을 느끼고, 비극을 느끼게 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필자가 한국인인 때문일까. 역시 섬나라라는 기본적인 지리적 환경, 다도의 정신과 무사도의 정신이 일대격전을 벌인 결과로 빚어진 센리큐의 죽음(센리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와의 권력 경쟁에서 패하고 결국 자결하게 된다), 그리고 완성되었지만 어딘가 툭 터진 광활한 미학이 아니라 폐쇄된 미학, 심하게 말하면 자폐성의 미학을 느끼게 된다.

일본 차 퍼포먼스를 보면 어딘가 무사도의 칼끝 같은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일본 다도의 한 걸음, 한마디는 칼끝처럼 꽉 찬 느낌의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아무리 미소를 머금고 동작을 하더라도 잘게 여러 마디로 끊어서 움직이는 동작은 지겨울 때도 있다. 가부키(歌舞伎)를 볼 때의 그런 기분이다. 어딘가 우리의 정서와는 맞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한국과 일본의 활발한 문화적 교류를 전제한다면, 한국인의 정감이 일본이라는 섬에 들어가서 옥쇄된 기분이다. 한국과 일본문화의 차이는 예컨대 선비와 무사의 차이와 같다.

일본 다도를 배운 한 차인은 "처음엔 일본 다도가 신비스럽기도 하지만, 빠지면 빠질수록 부자연스러움을 알게 되고, 결국 몸에 맞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한국의 차례(茶禮)가 '진달래의 봄'이라면 일본의 다도(茶道)는 역시 '국화의 가을'이다. 일본이 '닫혀진 미학' '닫혀진 완결미'라면 한국은 '열려진 어눌함' '열려진 미학'이다. 일본이 '인공미'라면 한국은 '자연미'이다. 일본이 '죽음의 미학'이라면 한국은 '삶의 미학'이다. 닫힌 것은 때론 완성도가 높게 보이고, 열려진 것은 때론 엉성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엉성한 가운데 기통(氣通)이 이루어지고, 신바람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후자를 택하지 않을 수 없다.

◇박정진 문화평론가

70∼80년대에 한국의 차인들은 일본 다도종가의 이에모토(家元)를 만나러 가는 행렬을 이루었다. 거액의 여행경비에 이에모토를 만나서 식사하고 사례하는 비용이 들어가 있었다. 이에모토와 기념사진을 찍는 일은 차인으로서 황송한 일이었다.

지금도 하코가키(箱書·작가이름 및 추천인 낙관)라고 해서 일본 이에모토의 인가도장이나 서명이 있으면 값이 평소의 10배로 뛰는 게 현실이다. 50만원 하는 다완이 갑자기 500만원이 되는 것이다. 모두 일본 다도의 종속관계라는 것을 선언하는 일이다.

일본의 국보 기자에몬(喜左衛門) 이도(井戶) 다완의 실물을 배견(拜見)하는 일이란 차인으로서의 영광이며, 감격과 황홀의 여행담은 종종 차 잡지에 소개되기도 했다. 400여년 전 우리 선조 도공의 얼이 담긴 찻사발을 보는 감격도 있겠지만 그냥 과거를 보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선조는 일본에 이도다완을 수출하였는데 오늘의 우리는 그것을 보기 위해 일본여행을 가서 줄지어 서 있다. 우리 차의 현주소다.

현재 우리 다법을 지칭하는 용어로 가장 많이 쓰고 있는 '다도'라는 말, 그리고 '다도문화' '다도대학' '다도협회' 등 '다도'라는 말은 왜 빨리 청산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를 점차 알게 될 것이다. 일본 다도가 또 하나의 외래 도그마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문화평론가 pjjdisco@naver.com

■ 차포토에세에='찻잎의 생명(生命)을 보다'

지금 남녘의 차밭은 봄이 시작되는 우수(雨水)를 지났는데도 동해(冬害)로 인해 녹차 뿌리의 수분 흡수력이 떨어져 가지가 말라 죽어가는 적고(赤枯)현상을 보이고 있다. 올봄 곡우 직전에 일창이기(一槍二旗·한 가지에 두 잎이 달린 것)로 솟아오르는 찻잎을 따서 정성껏 법제한 우전차의 향긋한 차맛을 볼 기회가 점점 멀어져 올해 햇차는 금차(金茶)가 될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남녘 차밭의 적고 현상을 보면서 문득 필자는 몇 년 전 중국 절강성 후저우(湖州)시 하무산 운무차의 고차수가 사라져 가는 현상이 떠올랐다. 고차수가 사라져 가는 이유는 아미노산이 풍부하다는 백차(白茶)산지의 조성과 차나무의 수종 개량을 위해 800년을 지켜온 고차수의 차나무를 잘라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가을에 잘라버린 차나무 둥치에서 봄을 맞아 춘분(3월21일) 직전에 새 잎이 솟아오르는 광경을 지켜보고 무한한 생명의 신비함을 발견했다.

하무산을 백차 산지로 가꾼 까닭은 북송 때 휘종(徽宗)이 발견한 이후 그 명성이 높아졌고 80년대 초 저장산 북부 안길현(安吉縣)에서 발견한 백차는 녹차 이후 그 가치가 더욱 높아짐에 따라 하무산 일대를 백차 산지로 조성하게 되었다.

하무산은 고려 말 태고보우(太古普愚) 국사가 구법한 뒤 석옥청공(石屋淸共) 선사로부터 인가를 받고 돌아와 고려에 차와 선을 전한 역사적 공간이기도 하다. 그 고려의 영혼이 담긴 고차수가 사라져버린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고려와 원나라를 이어준 끈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베어버린 차나무 둥치에서 새 생명이 솟아오르는 광경을 지켜보고 차나무에서 끈끈한 생명을 발견했다. 차는 차향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끈을 이어주는 무한한 생명 자원이라는 사실을 하무산에 올라온 푸른 찻잎을 보고 깨달았다.

글·사진 제공=사진작가 운암(雲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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