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반장' 같은 형사물, 어디 없나요?

정덕현 2011. 3. 5.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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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사물의 부활, 장르의 봄은 오는가

[정덕현의 이슈공감] 짜자자자자자잔- 하는 오프닝송이 들리기만 해도 바바리 차림의 최불암이 잔뜩 찡그린 얼굴로 범인을 검거하고는 그렇게 잡힌 범인의 사연에 특유의 정감어린 한 마디를 던지는 모습이 떠오르던 시절, '수사반장'은 이미 우리네 형사물의 한 전통을 그려놓았다.

71년부터 89년까지 무려 20여년을 매주 기상천외한 범죄의 현장으로 안내했던 '수사반장'이 종영을 선택한 이유는 소재고갈과 모방범죄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실제로 '수사반장'에 등장했던 사건과 똑같은 범죄가 벌어진 적도 있을 정도로, '수사반장'은 실제 사건 현장의 리얼리티를 담보하고 있었다. 최근 등장한 것으로 알고 있는 전문직 장르 드라마의 원형에 해당하는 것들이 대부분 '수사반장'에 이미 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런 훌륭한 형사 장르물의 전통을 갖고 있으면서도 최근까지 그럴 듯한 형사물을 발견하기 힘든 이유는 뭘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시청층의 변화를 들 수 있을 것이다. 90년대 문민정부의 출범과 함께 경제적인 자신감과 여유가 생기면서 이른바 트렌디 드라마들이 등장했고, 중년여성층이 조금씩 드라마의 주 시청층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부터 우리네 드라마는 외면적으로는 세련된 면모가 있었지만 실체적으로는 급격히 멜로와 가족드라마 전통으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다가 미드가 인터넷을 통해 본격적으로 대중들에 의해 소비되기 시작하면서, 장르물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부상했다. 이른바 전문직 장르 드라마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하지만 이 시기 이미 드라마의 리모콘은 중년여성들의 몫이 되어 있었다. 그러니 전문직 장르 드라마들이 아무리 세련된 영상과 전문적인 스토리로 완성도 있는 작품을 선보인다고 해도, 결국 관건은 멜로와 가족코드에 달려 있었다. 그리고 이 경향은 최근까지도 그대로 이어진다. 관심이 폭발했던 '하얀거탑'은 20%의 시청률에 머물렀고, 멜로와 장르가 결합되어 있던 '외과의사 봉달희'도 30%를 넘기지 못했다. '마왕'이나 '히트' 같은 장르물들은 10%의 시청률을 넘기지도 못하고 스러졌다. 따라서 이후 전문직 장르 드라마들은 멜로와 가족 코드를 접목시키는 일종의 타협을 시도했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나 '뉴하트' 같은 전문직 장르 드라마들은 장르에 가족코드와 멜로코드를 섞어 시청률에서도 성공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러한 경향에 어떤 변화의 조짐이 일어나고 있다. 그 징후는 '싸인'이 보여주고 있다. 물론 멜로 코드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중심 스토리에서 벗어나 있는 '싸인'은 멜로 없이도 2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법의학의 과학수사를 동원한 추리적인 재미, 연쇄살인범과의 숨 막히는 심리전, 법의학자들 사이의 경쟁구도, 기상천외한 수법의 살인사건들이 주는 놀라움 등등 '싸인'이 제공하는 재미는 전문직 장르 드라마에 멜로가 결합된 이전 작품들과는 경향을 달리한다. 오히려 이 작품은 저 형사물의 전통을 만들어놓은 '수사반장'에 닿아있다.

흥미로운 건 '싸인'과 새로 수목에 경쟁하게 된 '가시나무새'와 '로열패밀리'가 첫 방에서부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 작품들은 멜로와 가족코드를 그대로 내세운 전통적인 중년 여성층을 겨냥한 드라마들이다. 아무리 드라마적 완성도가 낮다고 하더라도 기본 시청층을 가져간다는 것이 통상적인 결과였다면 '가시나무새'와 '로열패밀리'의 부진은 이례적인 것이다. 이것은 이제 소재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작품의 스타일에 있어서도 장르적인 세련됨을 요구한다는 방증이 아닐까.

새롭게 월화드라마에 포진된 '강력반'이 시선을 끄는 이유는 본격 형사물을 표방한 이 작품이 어떤 결과를 보일 것인가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물론 '강력반'은 '수사반장'류와는 달리 멜로와 코믹이 접목되어 좀 더 대중적인 장르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추노'를 통해 사극을 좀 더 장르화시킨 레드원 카메라의 스타일리쉬한 영상만큼, 이 작품에서의 알렉사 카메라가 포착해낼 본격 형사물 냄새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이 작품은 '추노'의 레드원 카메라를 찍은 김재환 촬영감독이 알렉사 카메라로 찍고 있다). 만일 '강력반'이 멜로가 아닌 어떤 장르물로서의 매력을 한껏 끄집어내줄 수 있다면, 어쩌면 우리네 드라마들의 경향이 생길 지도 모를 일이다. '싸인'에 이은 '강력반'의 등장. 형사물의 부활에 기대를 걸게 되는 건, 우리의 드라마를 좀더 다양한 세계로 인도할 장르 드라마의 봄을 예감하고 싶기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정덕현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 = MBC, KBS,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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