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뛰어 발굴한 숨은 맛집 ⑥ 서울 종로구 대학로 '오리식당'

월간외식경영 글·이정훈 기자 사진·변귀섭 기자 null 2011. 3. 2.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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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댁'이 구워내는 돌판 오리구이

고풍스런 한옥에 오리식당 차린 두 남자와 한 여자냉이 캐러 바구니랑 호미 챙겨 들고 밖으로 나가도 좋을 날씨다. 어느 시골집 토담 밑에선 갓 깨어난 병아리들을 놔둔 채 어미닭이 혼자 졸 것 같은 오후. 서울 명륜동 대학로 뒷골목의 겨우내 묵은 보도블록에 반사되는 햇살이 눈부시다. 점심시간, 화사한 옷차림의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밥집으로 향한다. 이들은 어느새 용마루와 추녀 선이 살아있는 ㄷ자형 한옥으로 속속 사라진다. 금방 점심 손님으로 꽉 찬 집 간판을 보니 미려한 서체로 '오리식당'이라고 씌어 있다. 얼떨결에 그들을 따라 들어가 보니 몇 십 년 전, 서울 중산층이 살았던 전형적인 한옥집이다. 아직 대들보와 서까래가 짱짱하다. 헛간과 건넛방과 문간방이 있던 자리에 손님들이 앉아 식사하는 테이블이 놓였고, 안방은 작은 모임을 가질 수 있는 소연회장으로, 대청은 주방으로 쓰고 있었다.

이 식당의 주인장은 두 사람이다. 최원휘 씨와 김병용 씨. 대학 때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사이다. 이제 이들 나이가 서른아홉이니까 벌써 각자 살아온 인생의 반은 친구로 지내온 셈. 그러나 이 집의 막후 실력자는 따로 있다. 김병용 씨의 부인이자 주방장인 박은애 씨다. 이 집에서 내어오는 모든 음식은 그녀의 손끝을 거쳐 나온다.

네팔에 반해 카트만두에 고급식당 열기도

그녀는 최근 몇 년 동안 네팔의 카트만두에서 'Comfort Zone'이라는 음식점을 경영했다. 여행을 좋아하는 그녀는 네팔에 갈 때마다 그곳의 매력에 흠뻑 빠지곤 했다. 특히 어느 시골마을에서의 경험은 그녀를 네팔에 묶어두는 계기가 되었다. 외지인과의 접촉이 거의 없었던 네팔 시골마을에 그녀가 들어가자 처음에는 마을 사람들이 경계를 하였으나 며칠 뒤 그들은 함께 공도 차고 타작도 하면서 친구가 되어갔다. 나무를 베어 조각을 하며 욕심 없이 살아가는 네팔의 시골사람들 속에서 그녀도 네팔 사람이 되어갔다. 영혼이 순박하고 착한 사람들 속으로 그녀가 빠져들어 갔던 것.

한국에 돌아와서도 계속 네팔 생각만 나고 다시 가고 싶었다. 남자친구 김씨와 함께 다시 네팔을 찾은 그녀는 결국 그곳에 정착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처음엔 카트만두 변두리에 작은 식당을 하나 내기로 했는데 막상 시작하다 보니 어느새 일이 커져버렸다. 두 사람은 카트만두의 타멜이라는 번화가에 200~300평 쯤 되는 대규모 식당 겸 바를 차린 것.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비교적 좋아, 카스트의 상류계급 인사들이 단골고객층을 형성했다. 신문 잡지에서도 서너 번씩 와서 취재해갈만큼 현지인들의 관심을 끌었다.네팔은 힌두교의 영향이 있는 곳이어서 쇠고기는 쓰지 않았고 돼지고기와 닭고기를 주 소재로 퓨전 한식을 만들었다. 여기에 감자전, 녹두전, 동그랑땡을 내놓았는데 아주 반응이 좋았다. 음식도 인기였지만 네팔의 전통음악을 연주하는 공연을 자주 열어 손님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요리와 여행이 즐거운 주인장들

박은애 씨의 국적은 현재 한국이 아니다. 그럼, 네팔? 아니다. 그녀의 국적은 캐나다. 12살에 캐나다 토론토로 이민 가서 살다가 고3 때 이민 후 처음 한국에 왔다. 와보니 한국이 너무 좋더라는 것. 강원도 시골 마을에서 할머니들과 강강술래 놀이도 하고 어울려 지낸 기억이 참 소중했다고. 이후 그녀는 한국에 머문 시간이 많았다. 그리고 자신과 취향이 비슷한 남자를 한국에서 만나 함께 네팔 여행을 다녀오고 급기야 네팔에 동업으로 식당을 차리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 남자가 바로 작년 5월에 결혼식을 올린 이 식당의 주인 김병용 씨다.

작년 초에 우연히 한국에 왔다가 지금의 식당자리가 난 것을 알고 이곳에 음식점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마침 김씨의 친구인 최원휘 씨가 함께 의기투합하면서 2010년 여름에 개점을 했다. 네팔의 'Comfort Zone'은 가깝게 지냈던 네팔인 친구에게 넘겼다. 어차피 돈 벌 목적으로 시작한 식당은 아니었기 때문에 쉽게 결정했다. 디자인 일을 하는 김씨와 광고회사 출신인 최씨가 직접 실내 인테리어 공사를 했다. 한옥의 멋과 자연스러움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으려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아직 신혼의 새댁인 '네팔댁', 박씨는 네팔에 있을 때 팔레스타인 친구와 덴마크 친구가 김칫국과 오리고기를 아주 잘 먹었던 기억이 선명해 오리고기를 주메뉴로 결정했다. 그녀의 요리솜씨는 캐나다에서 살 때, 할머니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 원래 요리를 즐기고, 눈썰미도 있었던 터에 할머니의 빼어난 솜씨를 자꾸 따라하다 보니 어느덧 할머니도 칭찬하는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 한국에 와보니 오히려 캐나다에서 먹었던 음식이 전통 한식에 더 가깝더라고 한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살 때는 해마다 대보름날 부럼 깨고 나물에 오곡밥 먹는 걸 당연히 여겼죠. 여러 가지 김치나 음식도 제철마다 할머니께서 하시던 방식대로 늘 만들어 먹었고요."

훈제오리 함께 먹는 점심특선, 저렴하고 실속 있어

이 식당에서 직장인들이 시켜서 먹는 메뉴를 살펴보니 점심특선으로 내오는 무밥, 동치미국수, 볶음밥이 주조를 이룬다. 간간이 오리덮밥과 오리장국을 시키거나 계절메뉴인 대구탕을 시킨 이들도 있다. 점심특선은 각각의 메뉴에 훈제오리가 함께 나와 오리고기도 맛보고 식사도 할 수 있는 구성과 가격이 합리적이고 편안한 메뉴다. 점심메뉴는 모두 6000원으로 저렴한 편이어서 인근 실속파 직장인들을 끌어 모은다. 소화가 잘 되는 무밥도 괜찮고, 살짝 눌린 볶음밥도 구수함이 일품이다. 동치미국수의 맛은 클라이막스를 향해 치닫는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 같다. 오리뼈를 고아 만든 육수에다, 퍼지지 않고 쫄깃함이 살아있는 소면을 말은 동치미국수는 입안은 물론 속까지 시원하게 해준다. 네팔댁의 손맛이 제일 잘 표현된 작품 같다는 느낌이 든다.

저녁 메뉴로는 생오리양념(8000원), 생오리허브(8000원), 훈제오리(1만원)가 있다. 생오리양념은 사과와 배 등 과일을 숙성시킨 소스에 재워놓았다가 양념을 해서 구운 것이다. 자극적이지 않은 양념 맛이 혀에 감긴다. 생오리허브는 바질이라는 허브로 오리의 잡냄새를 상쇄시켜준다. 오리냄새만 잡아주는 정도에서 자신의 역할을 그친 허브의 겸손함이 돋보인다. 훈제오리도 약방의 감초처럼 점심특선 메뉴에 끼면서 단품으로도 맛볼 수 있다. 역시 불맛이 나면서 느끼하지 않아 많이 먹어도 뒤탈이 없다. 오리야채볶음(1만5000원)은 술꾼들 사이에 최고 안줏감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더 맛있게 구워주는 '돌판의 힘'

주방장 네팔댁의 요리솜씨 탓도 있지만 이 집의 오리고기를 맛나게 하는 일등공신은 역시 돌판이다. 전북 장수에서 맞추어온 장수곱돌 돌판은 언뜻 단계벼루를 연상시킨다. 아마 예전 선비들이 보았으면 도포자락 걷어 올리며, 당장 연적을 내어오라 했을 법하다. 하지만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 법. 우리네 온돌이 그러하듯 돌판이 불에 달궈지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 그래도 어쩌랴 금속제 불판보다 돌판에 구운 고기가 더 맛있을 것이 불문가지인 것을. 다만 주인장들이 직접 제작한 식탁이 조금 낮아 키가 큰 사람들은 조금 불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집의 주방장과 주인장들은 바람 같다. 늘 새로움과 즐거움, 그리고 자유로움을 찾아 홀연히 떠다닌다. 즐겁게 만들어 낸 음식은 먹기에도 즐겁다. 그들의 새로운 정착지인 이곳, 음식을 만든 사람과 먹는 사람의 즐거움이 이 자리에서 오래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이 집의 두 주인장, 최씨와 김씨는 마치 관중과 포숙아 같아보였다. 그런데 누가 관중이고 누가 포숙아일까? 하지만 그런 질문은 덧없어 보인다. <오리식당> 안마당에는 이른 봄볕이 해맑게 내리쬐고 있었다.

(※ 외부필자의 원고는 chosun.com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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