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책읽기]상식의 공허함, 양식의 딜레마

노명우/사회학자 2011. 2. 18.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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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상식적인 사람입니다." "상식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 '상식'적인 주장이자 희망이다. 부동산 투기 혐의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변명을 늘어놓는 함량 미달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과해 장관이 되고, 공약 따위는 언제든 뒤집을 준비가 돼 있는 정치인들의 무책임함을 목격할 때, 우리는 마음속에서 외친다. "대체 상식은 어디 있냐고?"

달콤한 밀어 같은 상식과 냉정한 심사위원 같은 양식의 화법

그렇다면 상식적인 사람들만 모여 사는 사회는 유토피아일까? '부자되기'는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상식과도 같은 목표가 됐다. 부자되기는 소박하고 상식적인 희망이다. 하지만 소박하고 악의없는 희망도 악마적 결론을 낳을 수 있다. 한 사회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이 부자가 되겠다는 목표를 추구한다고 생각해보자. 개인은 부자가 되겠다는 소박한 꿈을 따를 뿐이지만, 부자되기가 유일한 상식이 되는 순간 몰상식이 시작된다. 모든 사람이 부자가 되겠다고 부동산 투기에 나서고, 모든 의사 지망생이 성형외과 전문의를 선택하려는 상황은 상식에서 분명히 벗어나 있다.

상식과 상식이 서로 견제할 때 몰상식이 생기지 않는다. 하나의 상식이 다른 상식을 모두 먹어치우고 유일한 것으로 등극한다면 상식은 곧바로 괴물이 된다. 부동산 거품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내 아파트 가격이 떨어져선 안된다는 '자폐적 사유'의 온상이 되고, 도덕적 논란이 있는 후보라도 경제를 살려내 부자되기의 꿈만 실현시켜줄 수 있다면 대통령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괴물 같은 판단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지배적인 상식의 제물이 되는 위험에 처하고 나서야, 순진한 믿음과 달리 모든 상식이 정의가 아니었음을 비로소 깨닫는다.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모든 상식이 올바르지 않다는 생각, 어떤 상식은 독이 될 수도 있다는 판단이 들 때 그람시를 만나면 적절하다. 그람시는 1891년 이탈리아의 사르데냐 섬에서 태어나 파시스트 무솔리니에 저항하다 감옥에 갇혔던 사상가다. 감옥이라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 그는 후에 < 옥중수고 > 라는 이름으로 출판된 방대한 메모를 남겼다. < 옥중수고 > 는 다양한 이론들이 교차하는 쉽지 않은 책이지만,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은 분명하다. < 옥중수고 > 에서 그람시는 '상식의 역설'에 대해 성찰한다.

많은 사람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상식은 힘이 세다. 상식을 장악한 사람은 세상을 얻는다. 세상을 자신이 만든 생각으로 장악할 수 없다면, 상식을 이용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세상을 조정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다. 우둔한 사람은 힘으로 지배하지만, 교묘한 사람은 상식을 이용해 사람들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움직인다. 정치구호는 선거철에만 사람들의 판단에 영향을 주지만, 상식은 일년 365일에 걸쳐 일상의 모든 영역을 결정한다. 상식은 정당의 정치노선보다 강력하고, 학자들의 이론보다 방대한 영향력을 개인에게 행사한다. 평범한 사람들은 상식의 명령대로 살아간다.

지배적인 상식은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관용적 표현과 행동 속에 고스란히 숨어 있다. '불우이웃'이나 '이재민'을 사회복지 제도가 아니라 시민들의 성금으로 도와야 한다는 건 우리 시대의 상식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TV방송 리포터가 성금함 앞에 줄 서 있는 사람들에게 수재의연금을 내는 이유를 물으면 대개 "국민의 한 사람이니까"라고 답한다. 이 관용적 답변에도 상식이 도사리고 있다. 기름유출 사고를 낸 기업에 책임을 묻기도 전에 기름띠 제거에 나선 선량한 시민의 행동 뒤에도 당연히 상식이 있다. 불미스러운 일로 기자회견을 해야 하는 연예인은 "공인의 한 사람으로서"라는 표현을 쓰며 사과한다. 물론 사회과학적으로 공인이라는 표현은 적당하지 않다. 사회과학적으로 그 개념이 올바르게 사용되고 있는지의 여부에 대한 판단보다, 사람들이 관습적으로 어떤 단어를 사용하는지, 그리고 어떤 단어와 어떤 단어가 결합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상식은 언어의 관습 속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선한 앎' 양식이 상식과의 경쟁에서 늘 무력한 이유는 말투다

상식이 발휘하는 힘은 대단하다. 상식은 엄밀한 사회과학적 분석보다 힘이 세다. 봉건적 냄새를 풍기는 '서민'은 보다 더 정확한 표현인 빈민, 저소득층이라는 단어보다 더 빈번하게 사용된다. '서민'이라는 단어는 사람들의 상식을 자극한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빈민정책보다 "서민의 살림살이"를 언급하고, 새벽시장의 '서민'에게 목도리를 둘러주며 상식을 자극한 효과가 지지율 상승으로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상식이 바람직함을 갖추면 양식(良識)이 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상식은 양식보다 외려 힘이 세다. 권력자들은 상식의 뒤에 도사리고 앉아 그것을 이용하지만 양식의 근처에는 가지 않는다. 양식은 상식 앞에서 무력하다. 상식을 이용하는 세력과 상식을 교정하려는 세력이 싸움을 벌일 때 상식을 이용하는 편이 대개 승리한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슬로건으로 상식을 자극하는 보수당은 '서민'의 표를 얻지만, 경제정의를 외치는 진보정당은 빈민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한다. 상식을 이용하는 베스트셀러는 승승장구하고, 양식을 설파하는 추천도서는 서가의 구석에 처박힌다. 추천도서는 양식일 수 있지만 사람들이 잘 읽지 않기에 영향력이 없는 반면, 베스트셀러는 양식이 아니어도 사람들을 장악한다. 세계적 저널에 논문을 실은 학자는 대학 바깥에서 실어증에 빠지고, 대중도 그 사람 앞에서 귀머거리인 체하지만 상식의 편을 들어준다고 생각하는 TV 출연자 앞에서는 보청기라도 낄 태세를 보인다.

잘난 척을 버려 상식의 잘못을 지적하고 양식을 일깨워라 그러면 양식은 상식의 역설을 뛰어넘어 대중 속으로 파고든다

상식에는 없는 올바름을 갖추고도, 양식은 상식과의 경쟁에서 왜 늘 지고 마는 것일까? 이유는 상식과 양식의 '말투' 차이에 있다. 상식은 상냥하고 어루만져주는 어투를 사용하지만, 양식은 훈계적이고 공식적이고 엄격한 말투를 사용한다. 상식은 나를 이해해주는 연인 행세를 한다면 양식은 냉정한 심사위원과도 같다.

자식의 잘못을 지적하는 듯한 부모의 말투를 사용하는 학자와 달리 광고는 야단치지 않고 속삭인다. 훈계의 말투로만 말하는 학자는 상식을 교정하지 못한다. 학자가 양식에 근거해 대중의 상식을 교정하려 할수록, 사람들은 모범적 인간이 아니라 상식적인 인간이 등장하는 텔레비전 드라마의 영향력 속으로 빨려든다. 지배적인 상식이 양식을 집어삼킨 사회는 그람시를 결국 감옥에 가두었다. 감옥 속에서 그람시는 양식을 선택한 진보주의가 실패한 원인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진보주의가 '가르치는 말투'를 유지하는 한, 상식을 이용하되 상식의 잘못된 점을 문제삼지 않는 대중문화와의 싸움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다. 상업주의와 보수주의자들은 대중의 상식을 기막히게 이용하는 능력을 갖추었지만, 지식인과 진보주의는 상식을 대체할 양식을 훈계의 어투로만 늘어놓을 뿐이다. 말투의 차이로 인한 설득력 때문에 올바른 내용일수록 대중에게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지독한 역설이 벌어진다. 그래서 감옥에 갇힌 그람시는 지식인의 한계에 대해 생각한다. "대중 출신의 지식인은 없다. 간혹 대중 출신이 있긴 하지만, 그들은 대중과의 연대감을 느끼지 않으며 대중을 모르고 대중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대중의 열망과 정서를 모른다. 그래서 지식인은 대중의 저편에 서 있는, 따로 떨어진 공중에 흩어진 어떤 것이다."( < 옥중수고 > 중)

대중의 상식과 유리된 지식인들은 양식이라는 '선한 앎'이 냉철한 이성과 분석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여긴다. 그래서 양식을 전달하는 필독서의 어투는 냉정하고 분석적이다. 결코 정서적이지 않다. 필독 리스트에 올라 있는 대부분의 책들은 훈련받은 전문적 학자들이나 읽을 수 있는 어투를 구사한다. 앎은 지식과 이해와 느낌의 결합체이다. 이해되지 않은 지식, 느낌을 전달하지 못하는 어투로 말하는 지식은 지식 그 자체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지식인의 오류는 이해나 심지어 느낌 및 열정 없이도 알 수 있다고 믿는 데 있다."( < 옥중수고 > 중)

양식을 말하는 진보주의와 지식인이 이런 태도를 유지하는 한 정당한 말을 하는 사람은 오히려 외면받는다. 에른스트 블로흐의 말처럼 "우익은 거짓을 말하고 있지만 인간에게 말하고 있고, 좌파는 진실을 말하고 있지만 사물"에 말하고 있기에.

거짓말은 올바른 말보다 달콤하다. 거짓말은 유혹적이다. 올바른 말의 말투가 바뀌지 않는 한, 감각을 자극하는 거짓말의 현혹에서 사람들은 벗어나지 못한다. 아쉽게도 < 옥중수고 > 는 지식인의 전형적 말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오히려 새로운 말투는 그람시가 감옥에서 세상 밖으로 보낸 편지에 담겨 있다. 단테나 캄파넬라의 옥중문학에서 발견되는 아름다움처럼, 감옥에 갇힌 그람시가 상식의 역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며 세상으로 보낸 메시지에는 통찰력과 친근함이 두루 담겼다. < 감옥에서 보낸 편지 > 속의 그람시는 사물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에게 말을 건네는 지식인이다. 사랑하는 아내와 친척들에게 말을 걸면서 그람시는 새로운 말투를 배웠다.

감옥 속에서 지식인들은 치밀해진다. 그리고 집요해진다. 하지만 그 치밀함과 집요함은 깃털처럼 가벼운 자세와 만난다. 집요함이 필요없는 무게를 던져버린 자세와 만나면 어떤 지식인의 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상식의 잘못을 지적하고 양식을 일깨우되 잘난 척의 흔적을 완벽하게 버린 아름다운 문장이 만들어진다. 신영복의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이 그러하듯이, 그람시의 < 감옥에서 보낸 편지 > 를 통해 우리는 세상에 말을 거는 다른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이상한 상식이 지배하고 있는 사회를 목이 쉬도록 저주하다가 집에 돌아갈 때, 가슴속에서 솟아나는 알 수 없는 공허함은 양식을 전달하는 새로운 말투를 익힐 때 비로소 해소된다. 그람시의 < 옥중수고 > 에서 상식의 공허함을 배웠다면, 그 공허함이 시니컬리즘으로 변하지 않는 방법을 < 감옥에서 보낸 편지 > 에서 찾을 수 있다. 이제는 < 감옥에서 보낸 편지 > 를 펼칠 때다.

노명우는

베를린 자유대학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아주대학교 사회학 교수로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서 연구의 소재와 동기를 찾는, 동시대적 현장의 사회학을 지향한다. 지은 책으로 < 계몽의 변증법을 넘어서 > < 계몽의 변증법, 야만으로 후퇴하는 현대 > < 텔레비전, 또 하나의 가족 > < 아방가르드, 도전과 역설 >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 벤야민과 메트로폴리스 > < 구경꾼의 탄생 > 등이 있다. 최근 < 호모 루덴스, 놀이하는 인간을 꿈꾸다 > (사계절출판사)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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