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풀리자 '구제역 재앙' 현실로

얼어붙었던 땅이 녹고 생매장된 가축 사체의 부패가 시작되면서 구제역에 의한 2차 재앙이 현실화하고 있다.

가축 사체가 부패 과정에서 풍선처럼 팽창해 매몰지 밖으로 노출되는 사례가 잇따라 확인되고 있으며, 매몰지 인근의 지하수에서 악취가 난다는 신고가 속출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점차 기온이 상승하면서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 구제역 매몰지 사후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달 28일 돼지 2000마리를 매립한 경기도 이천시 호법면 주미리 한 농장 매몰지에서는 돼지 사체가 돌출해 지난 1일 확인되면서 4일 다시 매립했지만, 지난 10일에도 돼지 5~6마리가 매립지 밖으로 튀어나왔던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달 17일 돼지 4300마리를 매립한 모가면 소가리의 또 다른 농장 매몰지에서도 매립한 지 나흘 뒤인 21일 돼지 사체가 돌출되고 매몰지가 훼손된 것을 농장 주인이 발견해 이천시에 신고했다.

시는 다음날 사후처리반을 긴급 가동해 돼지 사체를 다시 매몰하고 침출수 배수관도 보강했다. 율면 월포리, 설성면 장능리 등 모두 6곳의 매몰지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이천시 관계자는 "매립지 융기로 돌출된 돼지를 보면 대부분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상태"라며 "소의 경우 살처분 때 위장을 절개해 매립했으나, 돼지는 대부분 생매장해 이런 일이 생기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백사면 모전리에서는 구제역 돼지 매몰지 인근의 관정에서 나오는 지하수에서 역한 냄새가 난다는 신고가 접수돼 경기도보건환경연구원이 수질검사를 진행 중이다.

이 관정은 지난 1월 중순 구제역 돼지 9016마리를 묻은 약 4000㎡의 매몰지에서 불과 수십 ｍ 떨어진 곳에 있다. 매몰지 주변 20여 개 시설채소단지(단지당 3000~1만3000㎡)에서는 이 관정을 포함해 모두 8개의 관정을 통해 농업용수와 식수를 얻고 있다.

이 마을 주민은 "가축을 매립한 지 15~20일 뒤부터 관정 지하수에서 가축 썩는 냄새가 나 마실 수 없는 것은 물론 상추 같은 채소에 물을 줄 수도 없는 지경"이라고 말했다.

앞서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갈산리의 가축 매몰지와 10ｍ가량 떨어진 플라스틱 공장 내 관정에서도 최근 악취가 난다는 신고가 들어와 시가 관정을 폐쇄하고 상수도를 공급하고 있다. 이 매몰지에는 구제역 감염이 우려된 소 53마리를 작년 12월 말 묻었다.

지난달 25일 구제역에 걸린 돼지 5700마리를 묻은 뒤 가축 핏물 등 침출수가 흘러나와 마을 하천으로 흘러든 경남 김해시 주촌면 원지리 대리마을에서는 침출수가 지하수로 흘러드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대대적인 공사를 벌이고 있다.

이 마을에는 공동식수원인 지하수 관정을 중심으로 9곳의 가축 매몰지가 있다.

한편 환경부는 이날 정부 합동조사단이 상수원 상류로 문제가 발생할 염려가 있다고 지적된 매몰지 99곳 가운데 83곳을 현장 조사한 결과 27곳(33%)이 침출수 유출이나 붕괴 가능성이 있어 정비가 필요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정부는 정비 대상 매몰지를 국고 보조사업으로 다음달 말까지 정비하고 이번 조사 대상 이외 매몰지에 대해서도 정밀조사를 벌일 계획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구제역 매몰지 인근에 있으면서 상수도가 보급되지 않아 지하수를 마시는 지역에 대해선 상수도 보급 사업을 지속적으로 벌여 매몰지 주민의 먹는 물 문제를 해소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배한철 기자 / 고재만 기자 / 박진주 기자 / 최승균 기자] ▶ [화보] 인형같은 여고생, '사람'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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