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더블클릭!>한평 방서 취사·세수, 뒤엉킨 전선에 버너.. "火魔, 안고산다"

윤정아기자 jayoon@munhwa.com 2011. 1. 26.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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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추위속 '쪽방촌 안전' 비상

"라면 끓여 먹고 물 데워 세수하려면 방안에서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요. 불이라도 나면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다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알지만 어쩌겠습니까…."

수은주가 영하 10도를 넘나들던 지난 21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의 쪽방촌에서 만난 김용기(53)씨는 3.3㎡밖에 되지 않은 방에서 전기장판 하나로 추위를 견뎌내고 있었다. 사계절 옷가지와 추위를 이기기 위한 이불과 담요를 몸에 감고 있던 김씨는 막 라면을 끓여 먹은 듯 버너와 냄비를 한쪽으로 치우며 "환기도 되지 않은 방에서 이렇게 음식을 해먹는다는 게 위험한 것은 알지만 추운 날씨에 나가기도 어렵고 어쩔 수가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의 방바닥에는 전기선이 뒤엉켜 있었고, 빛바랜 신문지로 도배된 벽 안으로 전기선이 지나고 있었다. 하지만 방안은 공기가 빠져나갈 작은 창문도, 급한 상황을 모면할 수 있는 소화기 한대도 없었다.

맹추위가 연일 이어지면서 쪽방촌 안전에도 비상이 걸렸다. 영하의 날씨를 견뎌내야 하는 쪽방 거주자들이 전기장판 등 온열기를 하루 종일 사용하는데다 환기도 되지 않는 방에서 취사를 하면서 화재 위험성에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5일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로 5가 쪽방촌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 쪽방주민 한모(여·73)씨 등 8명이 연기를 마시고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서울시내의 5개지역 주요 쪽방촌 쪽방 가구수는 현재 3512개로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은 3230명에 달한다. 이들 대부분은 무직자나 독거노인, 장애인 등의 소외계층이어서 작은 화재라 할지라도 이들에게는 큰 피해로 다가갈 수밖에 없다.

서울시와 소방당국은 쪽방촌을 화재 취약지역으로 보고 소화기 설치, 안전점검 등 안전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쪽방 주민들에게는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태였다. 같은 날 찾은 중구 남대문로 5가 쪽방촌. 80여가구가 밀집해있는 이곳 쪽방촌에는 각 쪽방마다 열이 발생하면 자동적으로 분말 가루가 터져 나오는 비행접시 모양의 자동확산 소화기가 설치돼 있었다.

하지만 정작 쪽방 거주자들은 이 화재방지 도구가 무엇인지, 어떻게 쓰이는 것인지 알지 못했고 공간을 차지한다며 떼어버린 곳도 있었다. 이곳의 한 거주자는 "머리에 부딪히기만 하지 쓸데도 없어 떼어버렸다"며 "다들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잘 모른다"고 말했다. 또 다른 거주자 최모(63)씨에게 사용법을 묻자 "한 번도 사용해본 적이 없어 모른다"면서도 "고장 난 거 같은데 고쳐주는 사람도 없다"고 푸념했다. 복도에 놓인 소화기 또한 먼지가 쌓여 있을 뿐 방치되어 있었다. 이모(69)씨는 "있는 줄도 몰랐고 있어도 사용할 줄 모른다"며 "불나면 도망가야지 이런 거 쓸 시간이 어딨겠냐"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영등포 쪽방촌 등 대부분의 쪽방촌은 조그만 화재에도 속수무책일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건물의 본체는 대부분 시멘트나 벽돌로 돼 있었지만 연탄 보일러가 있는 곳, 짐을 넣어두는 수납공간, 쪽방과 쪽방을 이어주는 복도 등 내부는 거의 목재로 이뤄져 있었다. 겨울철 외풍을 막기 위해 작은 창문마다 씌운 비닐과 벽을 감싸고 있는 낡은 이불 가지들도 대형화재로 이어질 수 있는 요소들이었다.

영등포에서 만난 쪽방 거주자 이모(48)씨는 "겨울이면 수도가 얼어 방 안에서 버너로 물을 데우기도 하고 라면도 끓여 먹고, 위험한 건 알지만 다들 그렇게 추위를 견뎌낼 수밖에 없다"며 "만약 누구 방에서 조그마한 불이라도 나게 된다면 여기 쪽방에 사는 사람 모두 도미노식으로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실제 쪽방촌은 4~6개의 쪽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다 복도 또한 폭이 70~80㎝정도 밖에 되지 않아 성인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았다. 종로구 창신동 쪽방촌에서 만난 김모(여·57)씨는 "쪽방촌 사람들은 불안함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위험하고 냉골 같은 이 쪽방이 우리에겐 소중한 보금자리"라며 "한 사람의 실수로 쪽방촌 사람 모두의 목숨이 위험한 만큼 사회에서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소방서 관계자는 "자동확산소화기가 제대로 관리가 안 되는 것을 우리도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쪽방촌 사람들도 이를 너무 쉽게 부숴버리거나 재설치를 해줘도 차후에 일일이 관리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쪽방촌은 화재 경계지구로 수시로 점검도 나가고 1년에 4번 소방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면서 "쪽방 거주자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안전사고 예방에 동참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 측은 "이번 겨울철에는 지난 10월부터 12월 한국전기안전공사와 도시가스공사와 함께 누전, 가스 사고 등을 예방하기 위해 안전점검을 진행했다"며 "2008년 쪽방촌 안전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면서 매해 동절기 서울시내 주요 5개 쪽방촌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정아기자 jayoon@munhwa.com

"지속적 생활지원으로 안전사고 최소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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