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육십 남자 팔뚝의 'ROKMC'
스포츠(Sports)라는 말은 라틴어가 어원(語源)이라고 한다. '물건을 운반한다'는 뜻인데 프랑스어와 영어에선 '엄하고 가혹한 작업이나 노동에서 잠시 벗어나 기분 전환을 한다'는 의미로 바뀌었다. 힘껏 몸을 써 땀 흘리면 기분이 바뀌지만 감동의 드라마가 없다면 스포츠가 아니다.
스포츠 기사 데스크를 맡으며 승패(勝敗)를 초월한 인간의 이야기를 충실히 전하고자 했다. 그렇게 182일을 지내며 딱 두 번 화가 난 적이 있다. 처음이 광저우아시안게임 직전 임달식 여자농구대표팀 감독이 한 말 때문이었다. 당시 그는 "지금이라도 대표팀 사퇴하고 싶다. 때려치우고 싶다"고 말했다.
그때 프로팀들은 선수를 내주지 않으려 했다. 훈련도 하지 못했다. 멤버 모두가 모인 게 대회가 열리기 11일 전이었으니 임감독이 화가 치밀지 않았으면 그게 더 이상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대표팀 때려치우고 싶다"고 공언하자 얘기가 달라졌다. 태극마크의 소중함을 모르는 것 같은 경박한 언사가 된 것이다.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은, 그래서 그 징표로 태극마크를 다는 사람들은 질 때도 당당해야 한다. 역경이 있어도 회피하지 말고 떳떳해야 한다. 그게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나설 첫 번째 자격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감동을 주는 게 스포츠다.
그런데 이번엔 스물세 살 먹은 축구선수가 아시안컵 대회가 열리고 있는 현장에서 감독이 경기 중에 자기를 교체했다는 이유로 "진짜 할 맛 안 난다"고 했다. 그 말이 문제가 되자 언론에 화풀이를 했다.
이런 철부지에게 따끔하게 한마디 했어야 할 대한축구협회장은 "진심으로 그런 것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한 술 더 뜬다. 그도 태극마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날 저녁 자리에서 우연히 '옻칠의 명인(名人)' 전용복씨를 만났다. 후배가 2년 전 지면에 소개한 인연으로 가끔 만나는 사이였다. 오랜 일본 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한 그는 "조국으로 돌아오니 왜 이리 좋은지 모르겠다"고 했다.
4월 6일부터 14일 동안 중국국무원 초청으로 베이징미술관에서 한국인으론 처음 개인전을 하고, 이화여대학부와 대학원생들에게 옻칠을 가르치는데 일본에서 일할 때와는 차원이 다르게 즐겁고 보람이 있다는 것이었다.
잔이 몇 차례 돌자 그가 "진짜 자랑할 건 다름이 아니고 말이야…"라고 하더니 갑자기 웃통을 훌렁 벗었다. 그리곤 팔뚝을 내미는 것이었다. 육십 남자의 팔뚝엔 ROKMC, 즉 대한민국 해병대(海兵隊)의 약자(略字)가 박혀 있었다.
"내 아들 말이야, 미국에서 공부하는데 얼마 전 한국에 왔어요. 그리곤 그러는 거야. 군대 갈 거면 해병대에 가겠다고. 북한이 연평도포격하는 걸 보고 그렇게 화가 났대. 연평도 가서 혼내주겠다는 거야." 해병 263기 전용복이 옷을 벗어젖히는 순간 칙칙하던 기분이 다 날아가 버렸다.
- ㆍ
박근혜, 김장수 전 국방장관에게 "군인정신 무엇이냐"
- ㆍ
YS "18년 장기독재한 박정희는 이 나라의 원흉"
- ㆍ
'원정 도박' 신정환, 9시간 조사받은 뒤 유치장에 입감
- ㆍ
"경춘선 타고 춘천역 갔다 민망한 분홍빛 거리에 놀라"
- ㆍ
이대호 연봉, 6억3000만원으로… 롯데 구단의 승리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심승섭 前 해참총장, 호주 대사에 내정
- “北 휴전선 설치중인 구조물, 대전차 장애물 비슷한 방벽”
- 뚝배기 라면에 ‘보헤미안 랩소디’ 연주… 중앙亞 3국, 尹 취향 저격
- 360만가구에 전기료 인상 1년 유예 추진
- ‘이재명 방탄’에 후순위로 밀 종부세·상속세
- 1주택만 종부세 폐지땐 ‘똘똘한 한채’에 몰려… 전월세 폭등 우려도
- “상속세는 이중과세… OECD 평균 수준으로 낮춰야”
- “중증·희소 질환 진료는 그대로… 그 외의 교수 55%가 휴진 참여”
- 존재감 커지는 ‘터닝포인트 USA’
- [팔면봉] 黨政, 취약계층·노인층 에너지지원금 상향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