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구름빵''달샤베트' 작가 백희나



신작 '어제저녁' 출간
"걸그룹 이름에 달샤베트 사용한것 용납 못해"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그림책이 왜 그렇게 좋으냐구요? 어디서든 펴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잖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 안에 이야기가 있지요. 그림과 이야기가 있는 종이를 묶어놓은 그림책이 저는 정말 좋습니다."
'구름빵'과 '달샤베트', 단 두 개의 작품으로 국내에서 가장 인기있는 그림책 작가로 발돋움한 백희나(40) 씨는 그림책의 매력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가 2004년 내놓은 첫 작품 '구름빵'은 현재까지 40만 부 넘게 팔리며 큰 인기를 끌었고 뮤지컬과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졌다. 이 작품으로 그는 2005년 볼로냐 국제 아동도서전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상을 받으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 8월 두 번째로 펴낸 책 '달샤베트'는 5개월여 만에 3만6천여부가 팔려나가며 그림책 부문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어 '달샤베트'의 강한 인상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는 또 신작 '어제저녁'을 출간했다.
14일 저녁 서울 용산구 동빙고동의 작업실 인근에서 만난 백 씨는 "이 책은 내가 작가이기 전에 독자로서 소장하고 싶어 책으로 빨리 만들고 싶을 만큼 만족스러운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제가 2002년 미국에 있을 때부터 만들어 온 작품이에요. 오랫동안 만들어온 것이라 더이상 묵혀두기가 싫었어요. 이미 만들어놓은 소품들을 모아서 작업하다 보니 생각보다 쉽게 완성할 수 있었죠."
이 작품은 백 씨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살 때 한국의 추운 겨울을 그리워하며 겨울옷을 입은 인형들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비롯됐다. 그는 자신이 만든 인형이 하나 둘씩 늘어가는 것을 보면서 여기에 이야기를 입혀 동화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손수 만든 봉제 인형들과 소품들을 이용해 이야기의 각 장면들을 연출하고 이를 사진으로 찍어 묶는 방식으로 그림책을 완성했다.
그는 전작 '달샤베트'에서도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아파트와 등장 인물들을 종이 모형으로 만들고 노란 백열 전구 조명으로 달빛을 연출한 뒤 이를 사진으로 찍어 책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만든 그림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마치 무대 위의 인형극이나 애니메이션을 보는 느낌을 갖게 한다.
이런 독특한 작업 방식은 애니메이션을 공부한 그의 이력과 무관치 않다. 이화여대 교육공학과를 나온 그는 미국으로 유학을 가 캘리포니아 예술학교(Cal Arts)에서 캐릭터 애니메이션을 공부했다.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그는 원래 동물 인형들 각각을 주인공으로 한 에피소드를 시리즈 형식으로 내놓으려고 했다. 하지만 책 속의 디자인을 도용한 인형이나 캐릭터 상품이 나올 것을 우려해 전체 캐릭터들을 모두 등장시킨 이야기를 먼저 구상하게 됐다.
이야기는 크리스마스를 즈음한 어느날 한 아파트에 사는 얼룩말과 개 부부, 참새, 양 아주머니, 여우, 오리 유모, 생쥐 부인, 흰토끼씨 등 각각의 등장 인물들에게 닥친 우연한 상황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과정을 그렸다.
"아파트에서는 이웃이 바로 옆에 벽을 두고 사는데, 서로 뭘 하는지 모르고 무관심하게 살아가잖아요. 하지만 또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고받는게 이웃이니까 서로를 조금이라도 의식하면서 살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만든 이야기예요."
그는 각각의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는 연속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 한 장의 긴 종이 위에 모든 장면들을 인쇄한 뒤 접어서 페이지를 나누는 '병풍' 구조로 책을 만들었다. 독자 입장에서는 책의 맨 뒤쪽을 잡고 펼치면 종이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길게 펼쳐지면서 이야기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이런 방식은 종이를 일일이 손으로 접어줘야 하기 때문에 제작비가 두 배 가까이 많이 든다. 제작비가 많이 들면 책 가격이 비싸지고 판매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일반적인 출판사들이라면 꺼렸겠지만, 이런 방식이 실제 가능했던 것은 그가 직접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4월 작업실을 내고 '스토리보울'이라는 자신만의 출판사를 만들었다. 그 첫 작품이 '달샤베트'이다. 어렵게 마련한 돈으로 처음에 3천부를 찍었다.
"재작년 봄에 작가로서 상당한 슬럼프를 겪었어요. 내가 원하는 작업을 하고 싶은데, 출판사와 기획사, 편집자, 디자이너 등 여러 사람들과 같이 일을 하다보면 내가 원하는 것을 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거든요. 게다가 '구름빵'의 성공 이후 뭘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이 제 작품에 대해 던지는 말들이 상처가 되면서 아무것도 못하겠더라고요. 그래도 그림책이 너무 좋으니까 그만두진 못하겠고, 그냥 인정 못 받아도 좋으니까 내가 하고 싶은 걸 하자는 생각으로 출판사를 만들었어요. 망해도 나 혼자 망하면 되니까 책임감을 느낄 필요도 없잖아요."
첫 작품 '구름빵'이 히트를 치면서 사람들은 그가 돈을 많이 벌었을 것으로 짐작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당시 신인이었던 그는 원고료만 받고 모든 지적재산권을 출판사 측에 넘기는 계약을 했다. 이 때문에 뮤지컬이나 애니메이션 등 2차 저작물이 아무리 제작돼도 백 씨에겐 아무런 경제적 이득이 돌아오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원작의 내용과 상관없이 제멋대로 각색돼 나오는 것들을 보는 게 더 힘들다고 했다.
그는 최근 다시 저작권 문제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한 연예기획사가 작년 말 '달샤베트'와 비슷한 '달샤벳'이란 이름으로 걸그룹을 데뷔시켰기 때문이다.
"그 기획사가 제 책의 제목이 좋다고 걸그룹 이름으로 쓰고 싶다고 연락을 해왔어요. 그래서 절대 안 된다고 했죠. 그 이름이 걸그룹에 어울리지도 않을 뿐더러 걸그룹이 그 이름을 쓰면 책이 갖고 있는 본래의 이미지가 죽어버린다고요. 하지만 그쪽은 기어이 '달샤벳'이라고 글자만 바꿔 이름을 붙였더군요. 제가 상표 출원을 먼저 했지만 등록되는 데 1년이 걸리고 그때 가서야 사용중지 신청을 할 수 있어요. 기획사 측은 협상안으로 2집 때부터 이름 앞에 '더'를 붙이고 한 달에 100만원을 주겠다고 하더군요. 1억을 준대도 내 자식같은 책을 죽이고 싶지 않은데,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강경하게 대처하기로 했습니다. 제대로 된 선례를 남기고 저작권과 관련한 토대를 닦아놓는다는 차원에서도 그렇게 할 생각이에요."
그는 무엇보다 그림책의 가치를 낮게 보고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속상하다고 했다.
"꼭 제가 몸담고 있는 영역이어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 아이들이 즐기는 문화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 없다는 점이 가장 가슴 아픕니다. 다행히 저를 지지해주는 분들이 포털사이트에서 서명운동도 벌이고 하면서 많이 알려졌어요. 유명세로는 걸그룹을 이길 수 없겠지만, 동화책을 사려는 사람들은 이런 사정을 알고 '달샤베트'를 아껴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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