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왕건~근초고왕, 왜 자꾸 애꾸가 나올까

김정환 2010. 12. 28.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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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정환 기자 = 대하사극의 '애꾸눈' 컨셉트가 KBS 1TV '근초고왕'에서 또 재현됐다.

26일 '근초고왕' 제16회에는 훗날 근초고왕이 되는 부여구(감우성)가 자신을 요서까지 따라와 살해하려다 실패하고 오히려 쫓기는 신세가 된 부여산(김태훈)을 사로잡는 장면이 나왔다. 부여구는 부여산을 충분히 죽일 수 있었지만, 왼쪽 눈 하나를 빼앗아 애꾸로 만드는 것으로 복수를 대신한다. 이후 부여산은 백제로 가지 않고 해건(이지훈)과 요서에 남아 부여구를 죽일 계략을 꾸미게 된다.

대하사극 애꾸 컨셉트의 출발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0~2002년 KBS 1TV '태조 왕건'에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애꾸가 나온다. 태봉의 황제 궁예(김영철)다. 궁예는 원래 신라 47대 헌안왕(혹은 48대 경문왕)이 총애하던 궁녀가 낳은 왕자다. 하지만 젖먹이 시절 암살의 위기를 간신히 피해 궁을 탈출하던 중 궁녀의 부주의로 왼쪽 눈을 잃고 애꾸가 된 것으로 정사에 전해지는 인물이다.

이 드라마에는 애꾸가 한 사람 더 나왔다. 후백제 왕 견훤(서인석)의 넷째아들 금강(전현)이다. 태자인 그는 고려와의 전투를 지휘하던 중 고려군이 쏜 화살이 왼쪽 눈에 꽂힌다. 그러자 삼국지에 나오는 위나라 명장 하후돈의 고사를 이야기하며 "부모가 주신 눈을 버릴 수 없다"면서 눈을 뽑아 씹어 먹었다. 견훤은 비록 애꾸가 됐지만 효성과 용맹을 과시한 아들 금강을 대견해하며 총애한다.

2003~2004년 KBS 1TV '무인시대'에도 애꾸가 등장한다. 무신정권 시기에 일어난 조위총의 난을 진압하던 중 무신정권의 실력자 이의민(이덕화)의 심복인 이영진(유종근)이 화살에 맞아 오른쪽 눈을 잃었다.

2006~2007년 SBS TV '연개소문'에서는 고구려를 침공한 당 태종 이세민(서인석)이 고구려 연개소문(유동근)이 쏜 화살에 왼쪽 눈을 맞는 모습이 나온다. 이세민은 화살에 박힌 눈알을 뽑아낸 뒤 "하하하, 모지게 당했구먼…. 허나 짐의 분신을 어찌 이 고구려 땅에 버릴 수 있겠는가"하면서 역시 눈알을 씹어 삼켰다.

2006~2007년 KBS 1TV '대조영'에서 대조영(최수종)의 라이벌인 거란 장군 이해고(정보석)가 대조영에게 패한 뒤 복수를 하고자 당나라 장군 설인귀에게 항복한다. 이해고는 충성을 증명하려고 화살로 자신의 왼쪽 눈을 일부러 찔러 애꾸가 된다.

이들 중 정사에도 애꾸로 기록돼 있는 사람은 '태조왕건'의 궁예와 '연개소문'의 당 태종뿐이다. '근초고왕'의 부여산은 실존 인물이 아닌 극작가 정성희씨의 상상력의 소산이다. '태조왕건'의 금강은 실존인물이긴 하다. 그러나 전투 중 애꾸가 되고, 눈을 먹는다는 것은 극작가 이환경씨가 극적 효과를 위해 지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연개소문'의 당 태종도 드라마에서는 연개소문에 의해 애꾸가 되는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사실은 안시성 전투에서 고구려 장군 양만춘이 쏜 화살을 맞아 그렇게 됐다는 것이 정설처럼 여겨지고 있다. '무인시대'의 이진영에 대해서는 정사에는 이의민이 애꾸가 되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 드라마에서는 이영진이 애꾸가 되는 것으로 나온 점이 눈에 띈다.

애꾸 눈의 인물이 나오는 이들 대하사극에는 더 재미있는 사실이 감춰져 있다.

등장인물이 화살이 박힌 눈알을 뽑아 먹은 것을 그린 '태조왕건'과 '연개소문'을 집필한 작가가 모두 이환경씨라는 점과 '태조 왕건'과 '대조영'의 연출자가 김종선 KBS PD, '무인시대'와 '근초고왕'의 연출자가 같은 방송사 윤창범 PD라는 점 등이다. 결국, 대하사극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애꾸 컨셉트는 특정 작가와 특정 연출자들에 의해 되풀이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람의 신체에서 가장 중요한 눈이라는 부위를 경시하고, 희화화하는 것이 보기 안 좋다"는 시청자 의견도 있다.

ac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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